소공녀 펭귄클래식 5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곽명단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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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오래 전 다락방에 기어올라 읽던, 그 시절 소중한 시간들을 선사해준 동화책을 떠올리며.

 

에일리가 [불후의 명곡]에 나와 노래하는 내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었지만 이 한 곡 때문에(에일리가 부르는 스타일은 여전히 맘에 안든다, 그저 곡이 좋아서) 간혹 에일리가 노래하던 무대가 생각나곤 한다. 이승환 편에서도 (곡이 좋으니까) 좋았는데 거기서 하차했다. 그렇잖아도 그만나올 때 됐다 싶던 참이었다. 모름지기 연예인이 오래가려면 한창 주목받을 때야말로 치고빠지기를 잘 해야 한다. 오래된 감성과 옛날 노래의 감각을 잃기 싫어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은 어느새 습관처럼 내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래봐야 원곡의 감동을 따라갈 수 없지만 나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그들은 아날로그를 노래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가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에일리가 더 별로였던 이유는 가만히 불러도 잘 하는 노래실력을 감성을 실으려 기교를 부림으로서 상쇄시키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어린 나이의 풋풋함 보다는 어서 어른이 되어 장렬하게 전시되고픈 야심이 느껴져서였다. 그녀가 그날 불렀던 노래는 가사도 멜로디도 딱 그때 그 시절을 내 앞으로 불러올 만큼 아련하면서도 명료했다. 강변가요제 시대를 청춘으로 보내진 않았어도 80년대 후반의 서정적 멜로디는 엄마의 영향 탓인지 늘 앓을만큼 좋.았.다. 이 노래는 스물 세 살 되던 해, 콩알만 하게 태어나 걱정시키면서 드디어 엄마 인생의 절반을 살고있다며 세상 다 가진 듯 좋아라하던 때를 헤엄치게 한다. 모든 것을 탄생시키고 또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하룻밤의 꿈 [가사]

 

이쯤에서 돌아가려해
변함없는 이 세상 변한 건 그저 내 마음

다가서면 멀어지고 떠나기엔 가까운
너의 눈빛은 여전히 고운데

지금까지 널 사랑하며
흘린 내 눈물만큼 너와의 거릴 느끼고

너의 그 모든 마음을 갖기엔
아직도 어린 나를 알고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되는 건 없는지
사랑에 버려진 세월의 슬픔을 아는지

알 수 없는 너를 하룻밤 꿈같은 너를
언제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

나만의 기대도 한겨울 바람 같은 네 맘도
모두다 하룻밤의 꿈
잊혀져 버릴 꿈

지금까지 널 사랑하며
흘린 내 눈물만큼 너와의 거릴 느끼고

너의 그 모든 마음을 갖기엔
아직도 어린 나를 알고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되는 건 없는지
사랑에 버려진 세월의 슬픔을 아는지

알 수 없는 너를 하룻밤 꿈같은 너를
언제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

나만의 기대도 한겨울 바람 같은 네 맘도
모두다 하룻밤의 꿈
잊혀져 버릴 꿈

(알 수 없는 너를 하룻밤 꿈같은 너를)
언제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

나만의 기대도 한겨울 바람 같은 네 맘도
모두다 하룻밤의 꿈 ~

밤보다 짧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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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버넷의 가장 완벽한 동화 <소공녀>는 살아온 모든 순간을 밤보다 짧은 꿈으로 인식시킨다. 반드시 지나쳐야 했을, 결코 피할 수는 없었을 많은 순간순간의 선택과 시간,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을.

 

아홉 살부터 열한 살, 1년 하고도 몇 달 더 살았을 그 집에서는 이십년 후가 아니라 사십년 후에 떠올려도 미소 지어질 그런 일들이 아주 많았다. 동네 아이들(언니오빠친구동생) 모두 모여 생일파티를 했고, 최고 인기선물은 연필과 수첩과 노트와 지우개 등이 가득 든 문구세트와 저금통이었다. 옆집 오빠가 좋아서 새침데기처럼 굴었고, 주차장에 주차하고 골목을 한참 걸어와야 대문에 닿았고, 마을 근처에 꽈배기 과자 공장이 있어 날마다 고소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아직도 그곳을 생각하면 꽈배기 공장을 떠올리고 그러면 그 당시 동네 곳곳에 살던 친구들과 밤마다 하던 숨바꼭질이 떠오른다. 엄마가 얼른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 아이들끼리 마음이 어긋나는 바람에 편먹고 싸우던 일까지(지금으로 치면 패싸움), 두 편으로 나뉘어 이어달리기, 술래잡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고무줄 놀이 같은 구식에 목숨걸던 시절.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놀이들. 훗날 잔세스칸스에서의 강렬한 코코아 향이 맡아지고, 그러다보면 아- 추억은 향기로 맡아지는 구나, 하며 향수에 젖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타임머신이 제멋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건 첫사랑이나 파리, 학창시절, 어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가능하다. 이 시간들을 겪지 않았다면 많은 향수를 모른 채 어른이 되었을 듯한 불안한 예감 같은 것에 다름 아니다.

 

어린아이의 키와 눈높이에 딱 어울릴 다락방이 딸린 방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커서는 절대로 읽은 책을 다시 보는 일이 없지만(확 줄었지만) 아홉 살 크리스마스, 엄마로부터 이 책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세라의 다락방이 마치 지도 위 어느 나라들 보다 넓고 크게 느껴졌다. 그곳은 갖가지 보물로 반짝거리는, 없는 것이 없고 있을 것만 있는, 해와 달과 별처럼 손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거대한 상상력으로 빚어진 멋진 세상이었다. 그때부터였을 지도 모른다. 내가 종종 혼자, 외롭게, 쓸쓸히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한 것이. 세라는 에밀리(인형)를 친구로 삼아 인도장교인 아빠와 떨어져 영국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지내게 된다. 슬픔을 감출 줄 알고, 기다릴 줄도 알며, 무엇보다 인사와 감탄과 예의를 잊지 않는, 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베풀 줄 아는 소녀다. 당시 세라보다 두 살이 더 많던 나는 세라와 닮기를 소망했다. 책이 지금보다 훨씬 귀하던 시절, 온종일 읽고는 다시 또 다시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발랄하고 성실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책상 위에 올려두신 빨간장화(플라스틱)에 든 종합과자선물셋트와 동화책 한 권. 그때 우린 좁은 방에 살고 있어서 책이 많지 않았는데 좋아하기 시작한 유일한 책 속 주인공이 세라였다. 유일해서가 아니라 처음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홉 살의 여자아이에게 세라는 모든 것을 다시 쓰게 하고, 예뻐지고 착해지고 싶게 만든 주범이다. 동생은 파란장화 속 종합과자선물셋트와 <톰 소여의 모험>을 받았고, 아마도 그애는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책을 정리할 때마다 고개를 내미는 동화책은 손때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낡고 더러워졌다. 하지만 제자리에 꽂힌다. 다시 펼치지도 못한 채 그저 다시 꽂아놓는다. 그 책은 남아있음으로서 제 할 일을 다한다.

 

어릴 때, 학창시절에도 기숙학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하루 이상 떨어져 지낸 적이 없고, 어릴 때는 언제나 엄마가 곁에 있었는데, 가족과 떨어지거나 집을 떠나 생활할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성인이 되면 독립할 거라 맹신했다. 진심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조금 더 낯선 세계를 동경했을 뿐이다. 엄마 없이 일곱 살에 아빠 말동무가 될 정도로 철이 들어버린 아이, 아빠의 경제력과 지위로 인해 부유하게 자랐지만 예의범절과 성실과 밝음을 잃지 않은 아이, 어른스러움과 천진난만함이 세라를 더욱 빛나는 화려한 숙녀로 만들지만, <소공녀>에는 소녀시절 꿈꿨던 모든 여자아이들의 로망과 미래가 흘러넘칠 뿐 아니라, 배경묘사 또한 절절하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아빠와 떨어져 홀로 생활하며 친구와 자아, 꿈을 확립해가는 아직 어린 세라의 찬란한 성장담으로도 볼 수 있고, 그런 점에서는 <빨강머리 앤>과도 어느정도 상통하는 면이 많은 여자아이들의 필독서다. 하지만 '있는 집 자식'이라서 기숙학교 원장으로부터 은근히 당하는 핍박과 괄시, 조롱어린 멸시나 기득권 경쟁처럼 친구들과의 다툼에서 오는 외로움과 쓸쓸함은 둘째로 치더라도,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두고 어른들이 하는 '줄대기', '잘보이기' 같은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썩 좋지만은 않다.

 

앤이나 주디, 캔디가 가난한 고아소녀들이라면 세라는 부유한 아빠를 뒀지만 나중에 아빠를 잃고 그들과 같아진다는 점에서 현대가 말하는 신데렐라 혹은 캔디 캐릭터는 그다지 진화되지 못했다. 꿋꿋하게 웃으며 제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고 가다가 동화 속에서 걸어나온 근사한 왕자님 하나 물면, 이 시대 브라운관을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치는 로맨스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여전히 슬픈 대목에서 슬프고, 우울한 대목에서 우울하고, 분노하는 대목에서 분노한다. 달라지지 않았다. 방이 한 칸 뿐이었으므로 늘 다락방에 책상을 놔달라고 조르던, 날마다 창고로 쓰는 다락방 계단을 기어오르던 아홉 살의 여자아이는 이제 없다. 세라는 여전히 풋풋한 상상력과 통통튀는 발랄함과 순하면서도 강단있는 어여쁜 여자아이로 남아있는데, 옆집 오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그의 손을 쥐고 싶었던, 작은 나만 없어졌다. 억울하진 않지만 되찾고 싶어지는 밤.

 

좁지만 북적거리던 다세대주택이 늘어선 작은 골목 안의 집 안에 들어찬 사람들.

옆집 찌개 끓이는 냄새가 집안에서도 마당에서도 맡아지던 따닥따닥 붙어있던 한 대문 안에 살던 이웃들.

더럽지만 포근하고 따스하면서 정감있던 다락방을 혼자서만 기어오르고 싶은 순수.

 

내 안의 세라와 함께 안녕.

이 세상에 나를 꼭 닮은, 나만 꼭 닮은 소녀와 다시 찾아갈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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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2-09-2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공녀>는 만화로만 잠깐 본 기억이 있고, 책으로는 읽지 않았나 봐요. 과정도 결말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어린 시절 공기, 고무줄 놀이를 제일 많이 했어요. 한데 동네서 나는 항상 깍두기였어요. 같은 성씨를 가진 아이들(그러니까 또래의 고모와 조카였어요. 그 때는 그 관계를 이해 못했는데..) 사이에서 성도 다른 나는 왼손잡이에 공기도 어설프게 보이기도 했고 잘 하지도 못했어요.

불후의 명곡을 볼 때마다, 잊었던 노래들을 만나서 그 시절에 빠져요. 최호섭이나 양홍섭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목련 2012-09-20 21:41   좋아요 0 | URL
ㅎㅎ 이 글에는 제가 1등!!

아이리시스 2012-09-20 21:57   좋아요 0 | URL
또래의 고모와 조카.. 지금도 이해가 안가요ㅎㅎ 오홋, 자목련님 왼손잡이예요? 저는 왼손잡이가 되고 싶었어요. 왼손으로 젓가락질 하는 거랑 글씨 쓰는 게 부러웠어요. 저는 왼손잡이들을 예술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로 인식했거든요. 제가 왼손으로 하는 게 하나 있긴한데 이건 담에 어떻게 비밀로..... 별 거 아니지만 되게 중요한 거예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차마 말이 안나올 것 같네ㅎㅎㅎ

에일리 어때요? 싫죠? 싫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지난주엔 최성수 아저씨가 나오셔서 엄마가 좋아하셨어요. 이 프로그램은 항상 엄마랑 함께 보거든요!

이 글에는 제가 2등!!

Shining 2012-09-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어릴적에 너무 심심하게 자랐나봐요_- 전 공기도, 고무줄놀이도 못해요; 제가 살던 동네에선(그러니까 그런 놀이를 할 때 나이쯤에 살던 동네) 밖에서 노는 애들이 없었거든요; 배울 기회를 놓쳐서 지금도 못해요_- 게다가 책에 매진하는 꼬마아이도 아니어서 소공녀, 톰 소여의 모험 등등과 인연이 없네요; 읽고 엄청 울었던 건 <플란더스의 개>에요, 그건 지금도 눈물 나-_ㅠ 어릴적엔 한국동화만 있었어요, 집에_- 쥘 베른도 스무살 넘어서 읽은것에 저는 이상한 콤플렉스가 있는데; 아이님 여러가지로 부럽군요!

아이리시스 2012-09-23 01:28   좋아요 0 | URL
보통 아파트에 살았으니까 학교 다녀오면 또래와 뛰어놀 일이 드문 것 같아요. 저때 2학년에서 4학년 정도였는데 저도 원래 아파트 살다가 좀 더 큰 집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아파트 완공과 이사에 틈이 생겨 다세대주택으로 간 거예요. 다세대주택을 멸시하는 발언은 아니지만 거기로 들어가는 게 썩 좋은 기억은 아닐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저런 추억을 몇 개 가지고 있어 참 좋은 것 같아요.

갑자기 옆집 오빠가 보고싶네요 :)

저는 앤과 주디와 캔디 이 모든 애들이 세라 뒤에 놓여요. 그리고 샤이닝님은 어릴 때부터도 저보다 훨씬 더 문학소녀였는 걸요! 쥘 베른은 당연히 스무살 넘어서 읽는 거죠! (저도 해저 2만 리 완역본 정독한 적이 있죠, 몇 년 전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