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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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소수의견"을 재미있게 읽었더래서, 손아람 작가의 문체가 좋아서 다른 작품을 찾다가 고른 책이었다.

꽤 두꺼웠지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저자처럼 주인공은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래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닌가 궁금했는데 마지막 작가의 말에 아니라고 못박아뒀다.

너무 현실처럼 써놔서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궁금해서 신문기사를 뒤적거려보기도 했다.

우와~ 사실이잖아?



긴 글을 읽고 나서 마지막에 "잃어버린 10년"의 연표가 나온다.

책속 주인공이 겪은 일들의 실제 사건들이다. 진즉 봤다면 더 찾아보기 쉬웠을텐데...^^;;

동시대에 살고 있었는데 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도대체 이런 일들이 언제 있었던거야?

너무 무지했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편협한 시야를 조금 넓혀준 책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났을때의 느낌을 작가의 말이 대신해준 것 같아 옮겨왔다.


1.

역사 애호가들은 언제나 자신의 탄생 이전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 스스로는 역사적이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대의 역사 애호가들이 관심 갖는 역사 속에는 역사 애호가들의 일화가 몽땅 빠지곤 한다.


2.

한 청춘이자 한 시대의 일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한 인간이자 한 세계의 모형을 창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 하나에 대한민국을 다 담으려는 탐욕을 부렸다.

느슨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결코 소설이 아니다.


3.

이것은 나의 자전적인 회고록이 아니다.

한 세계의 성격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깝되 바깥인 곳에서 바라보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여러 차례 속였다.

공은 그들의 것, 허물은 나의 것이다.

그들이 만들고자 꿈꿨던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그럼 제목을 왜 D- (디 마이너스)라고 붙였을까?

디 마이너스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 후반부쯤 나온다.

원칙주의자 교수와 학사경고를 받은 윤구.

구민용 교수가 F에서 D-로만 정정해 준다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순간이었으나

교수는 "한번도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학생에게 D-를 줄 순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멋지고나.

그러나 윤구는 훗날 국회의원이 되었다.


디 마이너스는 윤구가 원하던 학점이 아니라 잃어버린 10년이자 현실에 대한 평가이지 않을까

그 잃어버린 시대를 전혀 모르고 살았던 나는 F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p. 352

마르크스는 상품의 진정한 도량 화폐는 노동시간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책장을 만들어내는 데 쓰인 노동시간은 책장의 사용가치를 자명하게 함축한다.

책장의 사용가치에 비해 노동시간이 크게 소요된다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로 줄곧 평가된다.

바로 가격이다.

책장의 경우에는 4만원이다.

이때, 책장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은 구체성과 특수성과 질적 차별성을 잃고

입에 넣어 우물거리는 한우 스테이크 한 점과 동등한 것으로 전락한다.

수상적 숫자가 상품 가치의 척도가 되는 순간, 우리 세계에서 노동과 노동하는 인간의 주인성은 박탈된다.

그들은 마르크스의 역사적 저작물을 아름답게 전시해놓을 의미 있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딱 한우 스테이크 한 접시만큼의 일을 하는 것이 된다.

하루 열다섯 시간. 먼지처럼 날리는 톱밥. 유독한 휘발성 가스. 전기톱날이 앗아간 손가락. 그 모든 것이.

한우 스테이크 한 접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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