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아주 천천히 절을 했다. 절은 1배, 1배만이 존재하는데 마음은 묶어서 100배, 200배 하면서 자꾸 세게 된다. 헤아림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도 계속되는구나.

절을 했다. "했다"는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질기고 질긴 아상이여...

그래도 묵은 때를 벗기는 목욕을 한 느낌이다.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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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4-1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주여, 저에게 건강을 주시되

필요한 때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그 건강을 잘 보전케 하여 주소서.

 

저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시고

선하고 맑은 것을 알아보게 해 주소서.

악에 굴복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게 해 주시며

사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지루함을 모르고

원망과 탄식과 부르짖음을 모르는 영을 주소서.

나 자신에 너무 집착하지 말게 해 주시며

너무 걱정하지 않게 해 주소서.

 

행복하게 살며 그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도록

저에게 유머를 이해하는 친절과

풍자를 포용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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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경 신부의 장자 읽기
정호경 지음 / 햇빛출판사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장자라...처음 [장자]를 만난 것은 학민문화사에서 나온 검고 두꺼운 책 속이었다. 한자도 어렵고, 해석은 더 어려웠다. 한 구절을 두고 이게 무슨 말인가? 해석이 안 되어 며칠 후에 다시 펼쳐보고..그러다 그게 이 말이구나 싶으면 참 기뻤했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도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는데, 정호경 신부의 장자는 아무래도 간단해 보이는 것이 읽기는 다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책이 다소 얇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장자 내편만을 다루고 있다. 장자는 내편 7장, 외편 15장, 잡편 11장으로 모두 33장이다. 나도 전에 내편까지만 읽었는데 또다시 내편만 읽게 되었다. 조금 여유가 생겨 다른 편들을 끙끙거리며 원문으로 읽고나면 다시 이 책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되리라. 장자가 지은 책의 본래 제목은 [남화진경]이다. 장자를 남화진인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대로 장자로 되어 있다.

어떤 책은 집중해서 목돈처럼 목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가방에 넣어두고 사람을 기다리거나 지하철 안에서 한 구절만 읽고 가만히 생각해보고, 또 정호경 신부님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하는 식으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책상에 앉아 읽으면 몇 시간에 다 읽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만-히, 문득 읽는 것이 더 맛있을 것 같다.

장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한 예를 보자. 혜자가 말하기를 위왕이 큰 박의 씨앗을 주어 심었더니 다섯 섬이나 들어갈 정도의 큰 박이 달렸는데, 물을 담았더니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고, 갈라서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기울어져서 뭘 담을 수가 없어 크기만 했지 어디 쓸 데가 없어 깨뜨려 버렸다고 하였다. 이에 장자는 "그대가 시방 다섯 섬들이 박이 있으면, 큰 술통을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 즐기려는 생각은 않고 어째서 기울어져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다고 걱정만 하는가"라고 대답했다. 술통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내가 글을 읽을 때는 배로 해석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안"에 물을 담아 쓸 것만 생각하지 "밖"에 물을 담아 쓸 것을 생각할 줄 모르는 고정된 생각에 유연함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다.

정호경 신부님은 이야기 단락단락마다 신부님의 생각을 적어 두셨다. "도"를 "하느님"으로 파악하면서. 신부님의 이야기는 어떨 때는 유익하지만 어떨 때는 사족이 되어 읽는 맛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가만히 홀로 명상할 시간에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 말이다.

가볍게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요즘은 이런 책이 참 많다. 복받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르는 글자 찾아가며 끙끙거리며 읽는 그 깊은 맛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기쁨이다. 어느 경우이든 [장자]는 두고두고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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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옹 스님 연의, [임제스님 말씀 차별없는 참사람], 2002, 차별없는참사람 

 

 

알리딘에 리뷰를 쓰려고 보니 이 책이 없다. 그래서 여기에 쓴다.

선문답으로 가득찬 답답한 책은 아닐까 염려했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다소 편집의 힘이었을까? 커다란 글씨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중에게 보여 말씀하시는 "시중"(示衆)과 선객이 서로 깨달음에 참과 거짓, 체험의 깊고 얕음을 감정하여 분별하기 위한 문답인 "감변"(勘辨), 임제스님의 "행록"으로 나누어 정리가 되어 있다. 대중에게 보이신 말씀이라 그런지 시중편은 내게 와 닿고, 책장이 쉽게 넘어 갔지만 감변과 행록은 그 자체가 모두 선문답이다. 알 수 없지만 그 긴장과 순간순간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이해가 간다고 말하자마자 임제스님의 몽둥이가 내려앉는다.

밖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머리 위에 또 머리를 얹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요, 깨달음은 잠오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는 그런 평상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신다. 평상 가운데 있으니 참선도 말고, 경도 읽지 않고 하루하루 보내는 될 일이 아닌가? 이미 다 갖춘 부처가 부처되는 일로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귀중한 금가루를 눈에 넣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도 하신다. 우주의 진리를 뉴턴이나 아이슈타인이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저 발견할 뿐이다. 우주에 대해 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이미 가진 것도 있는 줄 모르면 쓸 수가 없다. 이미 진리가 온전하여도 순리를 모르는 이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간절함이 해결할 것 없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밖으로 구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누가 안을 들여다 본다면 그 어리석음은 앞의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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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배우는 여러분이여, 불법은 공을 써서 힘써 조작할 것이 없다. 다만 평상대로 해야 아무 일이 없다. 대변을 보고 소변을 보며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서 쉽다.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고 비웃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잘 안다. 옛사람도 이르기를 '밖을 향하여 공부하는 것은 다 크게 어리석은 놈이다'고 했다.

눈먼 사람아, 머리 위에 또 머리를 얹으려고 하는구나. 그대 무엇이 모자라는 것이 있느냐? 내 눈앞에서 작용하는 그대 자신이 조사인 부처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왜 믿지 않고 바로 밖으로만 구하느냐? 잘못해서는 안 된다. 밖에도 법이 없고 안에도 얻을 게 하나도 없다.

그대들이 아는 것이 있으면 바로 다른 사람을 경멸히 여겨서 승부를 다투는 아수라가 된다. 그래서 나다, 너다 하는 깜깜한 마음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악업을 더욱 더욱 짓는다.

여러분, 우물쭈물 날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나도 옛날에 깨닫지 못했을 때에 깜깜해서 아득해었다. 광음을 헛되이 보낼 수가 없어서 뱃속은 불이 나고 마음은 바빠서 부산하게 도를 찾아 물었다. 그러한 후에 훌륭한 선지식의 법력을 입어서 비로소 오늘 여러분과 이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게끔 된 것이다. 도 배우는 여러분에게 권하노라. 의식을 위해서 살지 말라.

왕사시는 말했다. "경도 안 보고 참선도 하지 않으면 필경 무엇을 합니까?" 임제스님이 말했다. "모두 저 사람들을 부처로 되게 하고 조사로 되게 하느니라" 왕상시는 말했다. "금가루는 귀중하지만 눈에 들어가면 눈병이 된다고 하는데 , 이것은 어떠합니까?임제스님이 말했다. "그대를 속인이라고만 생각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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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선방의 해제일이다. 일요일이라 당겨서 오늘 해제를 했다. 한달 반 동안 발우공양을 한번도 안 하다가 오늘 하니 익숙하지 않다.

선방 청소도 하고, 좌복도 닦고, 털고, 화장실도 청소했다. 함께 신는 고무신도 빨고, 걸레와 행주도 모두 삶아 빨았다. 깨끗하니 기분이 좋았다.

나와 제일 가까이 앉아 수행하시던 보살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선방에서 좌선하시고, 집에 돌아가셔서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다시 좌선을 하신다고. 어려운 공부라고. 선업이든 악업이든 업이라 생사를 떠날 수 없어, 기도를 그만두고 참선을 시작하셨다고. 좌선 때 내 자세의 문제점도 지적해 주셨다.

놀라운 정진력이다. 이 보살님 앞에서 출가하지 않아서 공부할 수 없다거나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다. 듣고 있으니 내 게으름과 안이함이 저절로 반성이 된다. 하안거를 기다릴 일이 아니다. 숨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자신이 정진하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보살님의 전화번호를 적어 왔다. 혼자 하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여쭙기 위해서다. 도처에 이렇게 스승들이 많구나...   

해제를 한다고 다 같이 삼배를 한 후 나를 위해 모두들 다시 삼배를 하셨다. 정말 의외였다. 부지런히 하지도 못했는데, 나를 위해 따로이 기도를 해주시다니...

링 린포체를 친견했을 때 내 안으로부터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는데, 오늘은 따뜻해졌다.

손자손녀가 없는 분이 한분도 안 계신 선방에서, 손녀가 나와 동갑이라는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초학자를 위해 머리를 땅에 닿으시다니...

잊지 못할 날이다. 정진함으로써 보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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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해도 그 뿌듯한 마음이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