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
오늘 신미나 시인의 『싱고, 라고 불렀다』(창비, 2014)를 읽다 ‘안식일’이라는 시에서 휴거 생각이 났어. 휴거가 뭔지 알지? 예수 재림 때 믿음 있는 자들이 예수와 함께 하늘로 들려지는 거, 다시 말하면 믿음 없는 자들이 이 땅에 남겨져 고통받는 것.
중학교 3학년 때는 책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봤는데 그때 『휴거』라는 책을 봤어. 너무 오래돼서 작가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휴거의 날을 그린 소설이었어. 휴거라는 말을 처음 봤는데, 그 책을 다 읽었을 때는 다음날 눈을 뜨면 나만 남겨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엄청난 충격이었어. 나는 그 책의 내용을 8절지 두 장에 요약 정리해서 복사했어. 새벽에 학교에 가서 한 반에 한 부씩 아무 책상에나 그 종이를 넣었어. 내가 휴거가 안 되더라도 이 내용을 알려야겠다 싶었거든.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했어. 천국과 지옥이라는 게. 뭐가 이상한 건지 정확히 집어낼 수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성 프란치스코』를 읽고 좀 선명해지는 부분이 있었어. 소설 속 프란치스코는 궁금해해.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가족이, 이웃이, 친구가 지옥에 가 있는데 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런 연민과 사랑이 없다면 천국에 가 있을 자격이 있는 걸까?, 하고 말이야. 이 책도 너무 오래전에 읽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
한때 몇 월 며칠에 휴거라 있을 거라고 했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적이 있었지. 모르겠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날짜를 정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는지. 그런 주장을 했던 목사 부부가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는데 자신들이 주장했던 그 날짜가 달라졌을 뿐이라며 그때도 역시 휴거를 기다리고 있었어. 글쎄...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후회와 두려움으로 과거나 미래에 마음 쓰는 것보다 현재에, 지금 여기 발을 딛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적절한 기다림이 아닐까 싶어.
안식일
_신미나
여름 성경학교가 시작되었다
옷장을 열었다가 그냥 닫고
교복 치맛단을 접어 입었다
매미 껍데기가 나무에 붙어 있었다
칼로 가른 듯
등이 반으로 갈라져 있다
서울에서 온 목사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 했다
그것이 믿음이라 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리는 날
신도들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은
아름답고 무서웠다
엄마한테 얘기했지만
쪼그려 앉아 마늘만 깠다
물에 불린 마늘 껍질이 쏙 빠졌다
우리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이곳에서 천국은 얼마나 멉니까
동생이 혀를 동그랗게 말아
침방울을 날리는 사이
여름이 갔다
-신미나, 『싱고, 라고 불렀다』(창비, 2014),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