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기 앉아 있다. 사람들은 어디로 저리 바삐 가는 걸까. 나는 갈 곳이 없어. 앉아 너를 생각한다. 한 웅큼 소음이 지나간다. 마음이 소리를 따라 움직이다 금세 지쳐 주저 앉는다. 이곳은 비었고 나만이 앉아 있다. 오르고 내리지도 않는다. 비상한 상황이 되면 비상한 문을 따라 사람들이 쏟아지겠지. 내일은 비가 내릴지 모른다. 모르는 것들 틈에 앉아서 편안한 무책임을 마신다. 조금 취하면 좋으련만. 눈이 감기고 지구를 뚫고 오른다. 우주면 대수겠는가. 어디를 가도 그곳엔 겁에 질린 내가 먼저 가 있다. 그 사이 네 생각이 대기권을 지났다. 잃어버리는 신발과 옷가지, 금이 간 건물, 가스폭발로 불타버린 집, 이런 것들이 떠다닌다. 닿지 않는다. 누가 사라졌는가, 긴장한 채 주위를 돌아본다. 어둡고 고요하다. 조금만 더 따뜻했으면. 서늘함 사이로 잠이 쏟아지고, 잠 사이로 별이 쏟아지고, 쏟아지는 사이로 꽃들이 피어난다. 계절이 가만히 앉아 있다 조용히 피어난다.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꺼져가는 그림자. 빛깔도 없어라. 흑백으로 울리는 노래. 눈이 감기고, 잠이 쏟아지고, 꽃들이 눈처럼 날린다. 좀더 자라고? 깨어나라고? 울지는 않는다. 소음 속에서도 사람들이 오가고, 별들이 피어나고, 꽃들이 쏟아진다. 여전히 서늘한 아무도 없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