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의 지혜 -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마음의 힘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진우기 옮김 / 김영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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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속에 드넓고 고요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허공처럼 걸림 없고 지극히 고요한 그곳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길을 헤맨다.

존재의 심연에 있는 나의 자아는 고요함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이름이나 형상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이다.  -p.13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저자가 쓴 두 번째 책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가 산문적이고, 설명적이라면 이 책은 시적이다. 의심이 없고, 마음이 맑은 사람이야 시를 읽어도 전율하겠지만 생각이 많은 사람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고요함이 뭐야? 자아라고? 더 깊은 차원이라니? 라는 글자를 따라 다니는 의문에서 어떻게 하면 고요함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알 수 있을까? 하는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궁금해질 수도 있으리라. 이런 물음표들을 조금 적게 하려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먼저 읽기를 권한다. 생각과 의심이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뤄진 책이고, 구체적인 방법 역시 제시되어 있다. 사람마다 그 방법이 구체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책을 읽고나면 이 책이 훨씬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 글의 나는 "물 위에 번지다가 사라지는 파문처럼 순간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p.37)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제외한 과거와 미래, 생각과 염려는 내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들일 뿐이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저자가 말하는 고요와 나의 실체는 과거와 미래로 가득찬 생각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각하는 순간, 사라진다.

작은 언니가 사라진 지 일년이 훨씬 지났지만 슬픔이 흥건했다. 그렇다고 우울한 건 아니었다. 그저 슬펐다. 허전하고 슬픈 것, 하루에 그저 잠깐 동안이지만 매일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어느날, 몸살이 나서 누워 있었다. 혼자 아파 누워 있는데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는 것이 인식되었다. 어, 슬픔들은 다 어디로 갔지? 하고 고개를 들었다. 구름처럼 몰려다니던 슬픔들이 나를 비껴갔다. 구름처럼 몰려다니는...이 표현은 기형도의 어느 시에서 인용해서 생각들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했었다. 슬픔은 그렇지 않은 줄 알았다. 내 몸 어디에서 꼬물거리며 차올라오는 줄 알았다. 심장을 짜서 즙을 내듯 가슴이 아프다가 눈물이 쏟아지는 줄 알았다. 그것들이 이렇게 밖에서 몰려다니다니...그렇게 왜 슬픔이 오지 않나 쳐다 보고 있으니 슬픔이 내게서 가 버렸다. 이 책에 비슷한 구절이 있다.

나는 '권태로운 사람'이 나의 본모습이 아님을 알게 된다. 권태는 다만 나의 내부 에너지가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분노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슬픈 사람은 내가 아니다. 두려운 사람은 내가 아니다. 권태.분노.슬픔.공포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지표이며, 늘 가고 오는 것이다. 가고 오는 것은 그 무엇도 내가 아니다. -p.29

자각만으로도 충분하다. 왜 이런 자각이 어려웠던 것일까? 악착같이 에고가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고의 특성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지만 에고는 문제를 일으킨다. 쟤는 나보다 키가 커, 그래서 속상해, 키를 키워야 겠어...키라는 문제를 일으킨다. 에고가 나타나서 쫑알거리지만 않으면 문제될 게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몸이 약하다'를 에고는 '몸이 약한 나'로 바꿔 놓는다. 겉으로는 몸이 약한 사실을 문제로 삼아 개선시키려고 하지만 실상은 몸이 약하다는 사실이 나의 일부이므로 이것을 놓칠 수 없게 한다. 이걸 놓치면 나를 잃게 되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에고는 이렇게 단정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딱딱하다. 선방에서조차 저 사람보다 방석에 더 오래 앉아 있어야지,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고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고만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을 그대로 두어라. 그것으로 충분하다.-p.75

에고...늘 고요 속에 있는 것은 아닌데도 붙잡고 있던 허깨비의 실체를 본 탓일까,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이 편안한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구나. 고요함 속에는 이렇게 기쁨이 넘실거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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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9-1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것보다는 때로는 듬성듬성 뛰어넘는 글들이 와닿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공백을 내 마음으로 내면적으로 넘는 과정을 만들어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언어적 인플레와 거품을 걷어내면
고요함과 이 순간 등등의 단어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모르는 그 마음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 고요함 그 자체가 된다는 말이 고요함의 표현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말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모든 책이 그러하듯...
내적인 과정이 글을 따라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 껍데기일 뿐이겠지요..
말과 글의 인플레에 익숙해진 제가 이 책이 주는 생략에 조금 마음을 더 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혜덕화 2006-09-1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때로 온 세상이 고요함을 온 몸으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삼천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이거나, 혹은 장을 봐오는 저녁 시간 쯤에 거리의 소음과는 전현 상관없이 느껴지는 고요함. 그 틈에서 찰나적이지만 존재의 고요함을 느낍니다. <틈>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아주 짧은 순간들, 1초도 되지않는 그 고요가 사실은 몇년, 몇십년의 분주함을 뛰어넘는 우주적인 진리의 얼굴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벌써 1년이 되었군요. 아마 이 세상 어딘가에서 다른 몸 받아 유복하게 건강하게 살고 있겠죠?^^

이누아 2006-09-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혜덕화님, 그 틈이 제게는 늘 서늘했었는데 요즘은 평온하게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