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
달라이 라마 지음, 제프리 홉킨스 편저, 이종복 옮김 / 북로드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모든 것을 남겨놓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나는 친구를 위해, 적을 향해 온갖 나쁜 짓을 했었다        - -붓다

이 말씀은 반대로도 여전히 적용된다. 내 친구와 적이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남겨놓고 떠날 것임을 알지 못한 채 나는 그들에게 온갖 나쁜 짓을 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죽고 싶었다".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이유를 3장이나 써서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의 답장은 "그래도 오죽하면"이라는 한 구절이었다. 그 친구는 내가 스스로 죽은 어떤 사람을 비난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죽고 싶었으나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바로 다음 해, 나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한 선생님을 찾아가 "죽음이 두렵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은 "죽음은 네 그림자와 같다. 네 손을 보렴, 죽음과 이미 손을 잡고 있단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렇게 내게 죽음은 갈망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후 나는 나 스스로가 사고로 두 번이나 죽을 뻔했고,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 봤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으나 죽음이 수행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내 손을 쳐다본다. 그러면 죽음이 정말 손을 잡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하다. 여전히 가족과 이웃의 죽음 앞에서 그것은 멀리 보내버리고 싶은, 혹은 잊어버리고 싶은 무엇이다. 그래도 그것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모든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내게 죽음에 대해 그렇게 설명했던 선생님은 늘 학교에서 "죽음학" 같은 과목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누구나 알아야 하고, 누구나 겪게 될 그런 일인데 말이다. 이 책은 죽음학 과목에 교재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판첸라마의 시를 달라이라마께서 설명해 주시는 형태로 씌어진 이 책은 죽음 바로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수행에 관한 책이다. 죽음의 순간에 혼란과 공포 때문에 가장 중요한 시간을 우왕좌왕하며 보내지 않도록 돕는 책이다. 실제로 나는 여러 스님들께 죽음의 순간이나 죽음 후 일정 시간 동안 영가들이 아주 예민하고, 맑은 정신상태를 가질 수 있어서 그 시기에 어려운 법문이나 경전을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천도재 때 법문이나 독경을 한다. 어쨌든 이런 중요한 시기에 수행할 수 있으며, 그것이 환생이든, 윤회든, 극락왕생이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한 죽음의 명상은 내게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명상이 뭐 재미있는 것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내게 명상은 재미있는 것이다. 이 명상은 빨리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자기 전에 판첸라마의 시를 읽는 것으로 명상을 대신했다. 아무래도 이 책은 죽음 전반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죽음, 그 순간에 관한 것이다. 사실, 죽음은 순간이지만,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햇살과 물과 토양에 의존해서 잎이 자라고 열매가 맺은 뒤에 떨어지고,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거나 다시 흙에 묻혀 태어난다. 이 책은 전 과정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자극을 주지만 그것들을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 때문에 죽음의 "순간"이 익숙하지 않은 내게 이 명상이 확 끌리는 무엇이 아니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의 순간은 너무나 중요해서 달라이라마는 그 순간에 이 명상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는 못하지만 그 순간을 그냥 놓쳐버릴까 지금도 매일 수행하신다고 하셨다. 나나 내 이웃 역시 그분처럼 그 순간, 수행의 가장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런 명상이나 시에 관심을 놓치 않게 된다.

비록 명상에 익숙해지지는 못했지만 이 책 덕에 죽음이 철학이나 사고의 대상이 아닌 체험이며, 수행의 대상임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더 가까이, 더 전체적으로, 더 내 삶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소걀 린포체의 "티베트의 지혜"를 읽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삶을 회피하거나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죽음에 대해 담담할 때 삶에 담대해진다. 그런 면에서 이런 책은 삶을 도와주는 책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런 "觀" 혹은 명상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이 참선수행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삶에서의 모든 수행은 죽음의 수행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가족과 이웃의 죽음 앞에 울부짖음으로 대응하는 전도된 나의 행위가 나와 그들 모두를 바른 견해와 바른 체험으로 이끌 수 있는 행위로 변화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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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9-0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에 대한 생각이 일단 정리되고 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살면서 중요한 문제는 밀쳐두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어리석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장단에서 못 벗어나지요.
가끔 이렇게 자세를 가다듬을 뿐......

비로그인 2005-09-0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일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편안히 생을 마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어요.
제가 늘 이누아님께 감사드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누아님 만나뵙기 전에는 죽음이 마냥 두렵고 허무했거든요. 그런데, 삶과 죽음이 하나, 라는 사실을 님께 가르침받곤 현재에 보다 충실하고 더욱 즐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충실한다고 해서 담박에 개과천선한 건 아니지만요. 그냥 걸러 들으시압! 헤.^^
이런 리뷰는 신문지면 같은 곳에 실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어요.

이누아 2005-09-0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에 관해 생각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했지만 지금처럼 죽음이 "현실적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습니다. 가족의 죽음이 처음이 아닌데도 이런 걸 보면, 끝까지 수행자로서 살고 싶어했던 언니가 준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드무비님, 우리 모두 아직은 잘 안 되지만 끊임없는 관심으로 사소하고, 불필요한 근심과 염려를 밀쳐 내고, 중요한 것들을 우선 순위로 끌어 당겨요!
복돌님, 님에게 그런 여유가 분명 생기실 거라는 믿음이 일어요. 그리고 가르침이라뇨?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저 스승들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지요. 저야말로 님에게서 어떤 따뜻함을 느낍니다.

혜덕화 2005-09-0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변에서 거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글을 읽어도 그것은 내게 <관념>이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끔, 내가 죽을때는 거추장스런 옷을 벗듯이 내 몸을 벗어나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행하는 이유가 옷을 벗듯 내 몸을 벗는 것, 나뿐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이가 그렇게 되는 것이 내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누아 2005-09-0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님의 댓글에 대해 잔뜩 대답을 했는데 어쩌다 갑자기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저도 님처럼 제 자신과 제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이웃과 세계가 피하고 싶어하는 고통과 죽음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알아차리게 되기를 발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무도 안 읽었지만 했던 말 또 하는 게 민망하군요. ^^

2005-10-12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