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읽은 책 중에서는 로베르트 발저의 산문들과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인상 깊었다. 발저의 산문을 읽으면서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생각했다. 이런 산문들을 읽는 걸 나는 좋아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발저와 아자르의 글이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최근에 읽어서 그런 건지 모른다. 한 달 동안 읽은 책인데도 뭘 읽었나 돌아보니 아득하다. 읽은 지 몇 년은 된 듯한 책도 있다.쌍떼의 그림과 글은 만평 같은 느낌이라 읽으면서 몇 번이고 웃었다. 한 달에 한 권씩은 이렇게 웃게 하는는 책을 읽으면 좋겠다. 리어왕과 이원하의 책은 다시 읽은 책이다. 다시 읽으면 새롭게 보인다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 큰 차이는 없었다. 이원하의 시는 내가 끌리는 류는 아니지만 읽으면서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지인들의 서재에서 본 책도 몇 권 읽었다. 내가 모르는 작가와 글을 만날 수 있었고, 모두 흥미로웠다.
이달에는 사경과 명상을 비교적 규칙적으로 했다. 정성 들여 쓰지도 않고, 앉아서 꼬박꼬박 졸아도 이런 걸 하면 생활에 무게 중심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2월이 되자마자 아이들이 감기로 결석했다. 그러니 제일 먼저 사경과 명상이 밀린다. 나도 좀 일찍 일어나서 새벽을 활용하면 좋을 텐데 잘 안 된다. 되는 대로 계속할 생각이다. 책이 재미있지만 명상이 더 끌린다.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무수한 생각을 일으키는 몸짓이 마음에 든다. 이런 마음에 비해 명상 시간은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