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꼽아 기다려왔던 금요일이 왔다. 허접하게 보낸 한 주였지만...일도 많이 밀려 맘이 무거웠지만...만사 제쳐놓고 TV 앞에 앉았다. 수첩과 볼펜까지 들고...(그렇다! 나는 어제 필기를 하면서 TV를 봤다. 학창시절  강의 들을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지함과 열정으로 무장하고...^^;;)

 

맨 처음 narrator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줄리 앤드류스였다.

 

뮤지컬 나라의 여왕과도 같은 그녀....난 그녀를 볼 때마다 "똑똑한" 아름다움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식견이나 지혜를 갖춘 사람에게서 보이는 지성미와 또 다르다.....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라. 쇼팽이 건반을 다루듯.... 펠레가 축구공을 다루듯....주어진 노래를 완벽하게 요리해내는 대가의 솜씨를....매력적인 미성에 근사한 영국식 발음, 그 또렷또렷한 articulation, 자신감 넘치고 밝고  힘차고 자연스러운 연주를....노래뿐만 아니라 거동, 몸가짐, 표정, 연기 역시 자로 잰 듯 똑 떨어지고 우아함과 활력이 넘친다. 비록 남자의 마음을 뒤흔들 정도의 미모는 분명 아니지만...그녀의 혀끝에서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웬지...그녀의 뇌를 열어보면 유난히 멋지게 주름잡혀있는 두 개의 반구가 반짝반짝 빛날것 같은 착각마저도....^^

 

역시 똑똑한 미녀답게...나이가 들어도 우아함이 넘치는 줄리 앤드류스가 해설을 맡고...배경 음악으로 거쉬인의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I've got plenty or nothing"의 멜로디가 깔렸다.

 

아....포기와 베스...

이 놀랍고 아름다운 작품에 대한 애정을....천재 작곡가 거쉬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리...

"Summertime", "I loves you Porgy", "Bess you is my woman now" “I got plenty or nuttin" "It aint necessarily so." "There's a boat that's leavin' soon for New York." 등 모든 노래들이 불후의 명곡이다. 그리고 거쉬인 특유의 음색과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어제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어진 내용에 따르면 거쉬인은 이 ”오페라“를 작곡하기 위해 흑인들의 고유 음악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흑인 마을을 찾았다고 한다. 그 곳에서 흑인영가 등 그들의 노래를 들은 거쉬인은 자신의 방문이 ”expedition"이 아니라 “home-coming"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자신의 음악....재즈의 뿌리를 그 곳에서 발견한 것이다.

 

조지 거쉬인은 가난한 유태계 러시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다. 부모가 형에게 가르치려고 사다놓은 피아노를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나중에 작곡가로 이름을 떨친 후에 클래식 음악가들로부터 정식으로 사사받긴 했지만) 한편 피아노 치기를 싫어했던 형인 아이라는 문재를 발휘해 동생의 곡에 멋진 가사를 쓰게 된다.

 

어제 본 프로그램에서 조지 거쉬인이 38세에 뇌종양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쉽고 슬펐다. 더 오래오래 살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계속 만들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공황 이후 살기 힘들었던 1930년대와 2차대전에 휩쓸린 40년대에 브로드웨이가 미국인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었다. 노동, 실업, 빈곤 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오손 웰즈 제작의 <The Cradle will Rock>나 2차대전 무렵 병사들이 직접 출연한 어빙 벌린 작곡의 <This is the Army>와 같은 나에겐 생소한 작품들도 소개되었다.

 

사회성 짙은 작품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리차드 로저스와 로렌츠 하트의 사랑 노래들은 여전히 사랑 받았다고 한다. <Babes in arms>에 나온 “Where or when"이라는 노래와 (아,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에서 배경으로 깔렸던 이 곡을 잊을 수 없다....) <Pal Joey>라는 작품과 거기에 나오는 <Bewitched, Botheres, and Bewildered>라는 노래가 소개되었다. 로저스와 하트 컴비의 아름다운 노래들은 어제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비중이 적게 다루어졌던 것 같다. 뮤지컬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져서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뮤지컬에는 정말 훌륭한 곡들이 많이 나온다. 어제 프로그램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Babes in arms>만해도 그 유명한 ”My funny Valentine" "The lady is a Tramp" 같은 명곡이 삽입되어 있고 <Pal Joey>에 나오는 “I could write a book"도 너무 좋다. (역시 해리 샐리에서 처음 접한 노래.) 비정상적인 주인공들의 퇴폐적인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Pal Joey>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고 연인들이 제 갈 길을 간다고 설명하며...로저스와 하트 역시 제 갈 길을 갔다고 한다. 래리 하트는 빛을 잃은 별처럼 서서히 쇠락해 간 듯 하다. 그런데 리처드 로저스는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자신의 커리어의 제2막을 연다.

 

그의 전환점은 브로드웨이의 전환점, 뮤지컬의 역사의 새로운 2막이기도 했다. 그와 손잡은 파트너는 바로 오스카 해머슈타인 2세이다. 지난주 방영분에서 말쑥한 미남으로 잠깐 얼굴을 비쳤던 해머슈타인은 20년쯤 시간이 흐른 어제 방영분에서는 등치 좋고 인상 좋은 중년 아저씨가 되어 되돌아왔다.

 

가사뿐만 아니라 대본도 썼던 해머슈타인은 노래와 춤 중심에 스토리는 부수적이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탄탄한 스토리를 불어넣었다. 이들 컴비가 처음 만든 작품이 <오클라호마>로 새로운 전환점에 선 기념비적 작품이었다고 한다. 어제 프로그램에서도 길게 다루어졌다. <오클라호마>나 <Carousel>은 보지 못했지만 로저스와 해머슈타인 콤비의 작품은 영화로도 많이 접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남태평양> <왕과 나> 등...가<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모든 노래들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다, 다, 다 아름답다. 래리 하트와 함께 나른하고 도시적인 사랑 노래를 잔뜩 만들어냈던 로저스는 해머슈타인과 함께 서정적이고 순수한 노래들을 만들어냈다. 어느 쪽이든 잊혀지지 않는 뛰어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재주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lyric이나 대본의 분위기에 맞추어 백가지 천가지 분위기로 변신할 수 있는 로저스의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어제 내용 중 재미있던 것은 <남태평양>에서 종군 간호사가 섬의 프랑스인 농장주의 청혼을 받고 그를 사랑하지만 그의 혼혈인 자녀들 때문에 망설이는 대목이다. 그녀가 혼혈이나 다른 인종간의 결혼에 대해 “타고난” 거부감을 보이자 (노래 가사가 “왜냐고는 묻지 마세요. 원래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뭐 그런 식이었다.) 원주민 소녀와 사랑에 빠진 연합군 장교인 남주인공 청년이 그건 타고난게 아니라 가르침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주입한 잘못된 편견이다...라는 요지의 노래를 부른다. 아...50년쯤 전에 나온 뮤지컬에서 오늘날 까지 과학자들간에 뜨겁게 벌어지는 “nature vs. nurture" 논쟁이 등장하다니....^^ 실제로 유색인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내지는 공포감이 (caucasian 입장에서겠지만)이 선천적인건지 후천적인건지 본능적인건지 학습에 의한건지 하는 연구도 수행되었고 그에 대한 내용을 읽은 기억도 난다....

 

이 영화는 중학생일 무렵 TV에서 본 것 같은데.....주제가인 “Some Enchanted Evening"보다도 뚱뚱한 원주민 아줌마가 엄청난 성량으로 뿜어낸 “발리 하이”라는 노래와....예쁜 원주민 소녀(아줌마의 딸)이 계곡에서 춤을 추며 영국 장교인 남주인공을 뿅가게 만드는 장면에서 역시 그 아줌마가 노래 부른 “Happy Talk"라는 노래가 인상깊었다. (요즘 이마트 주제가로 차용되고 있는 바로 그 노래....ㅡ,.ㅡ)

 

<왕과 나>에서도 “Shall We Dance" 말고 괜찮은 노래들이 꽤 나온다. “Whistle a happy tune", "My cup of Tea" 등....

 

어제 프로그램의 마지막 부분은 <My Fair Lady>의 브로드웨이 공연과 영화화된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주연을 맡은 줄리 앤드류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아 그 전에 콜 포터의 <Kiss me Kate>가 잠깐 소개되었고 또 역시 two-thumbs-up이 아깝지 않은 뮤지컬 <Guys and Dolls>가 소개되었다. 배경으로 깔린 “Luck be a lady tonight"은 내 맘을 두근두근하게 했다. 아, 이 너무나 재미있고 코믹하고 멋지고 사랑스러우며 훌륭한 뮤지컬.....이 뮤지컬은 국내판도 너무 재미있게 본 것으로 기억한다. 무대에서 세 번쯤 보았고 영화 역시 DVD를 소장하고 있다. (스카이 매스터슨을 연기한 말론 브란도의 카리스마와 남성적 매력이라니.....프랭크 시내트라도 네이산 역에 딱이었다.) 무대 배경서부터 플롯, 대사, 안무까지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노래가 강조되지 않는 면이 있지만 곡들도 무척 훌륭하다.

 

빼먹을뻔 했는데 번스타인의 <On the Town>이라는 뮤지컬도 소개되었다. 이건 첨들어보는 작품인데 번스타인이 곡을 쓰고 제롬 로빈스가 안무를 맡았다. 정통 발레 출신이지만 발레에 유머감각을 가미할 줄 알았던 안무가....라고 평가되는 제롬 로빈스...설명이 필요없는 번스타인...이 두 사람의 멋진 작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다음주에 소개되지 않을지?


*뱀꼬리*

interviewee로 반복해서 나오는 사람 중에 <필립 퓨리아>라는 아저씨가 있었다. 이름이 낯이 익어서 혹시나 하고 아마존을 검색해보니 오래전부터 사려고 찜해놓은 <The Poets of Tin Pan Alley>의 저자이다. 생각난 김에....지를까?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사재놓고 안읽은 책들 때문에 양심의 가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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