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족들과 에버랜드에 갔다.

찜통 더위에 많은 사람들......놀러 온건지 고행 내지는 극기훈련하러 온건지 모를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정문 쪽으로 나가는 순간 남편이 "우리 저거 보고 가자!" 하고 가리킨 것...

"인체의 신비전"이었다.

얼마전 코엑스에서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돌다돌다 에버랜드까지 왔나보다.

길 여기저기에 깝데기 벗겨놓은 사람의 뛰어가는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나붙었을때부터 혐오스러워서 시선을 피했건만....나로서는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고 볼 일도 없을거라 생각했던 전시회였다.

남편은 해부학 실습의 추억이 그리워서인지....애들 앞에서 멋지게 자신의 전문 지식을 늘어놓을 기회라고 생각해서인지...그 전시회를 보고 가자고 종용했다.  "애들에게도 유익한 전시회일 것"이라며....(세상에...7살 5살난 아이들이다...)

결국 "에버랜드"에 전시된 내용이니 뭐 심하기야 하겠어?.......하는 믿음으로 따라나섰다.

1층에서는 과연 나의 기대대로였다. 거대한 풍선으로 만든 입이나 소화기간의 모형에 아가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해볼 수 있고...어린이 백과사전의 인체 부분을 크게 확대시킨 포스터들...물론 시시했지만...그냥 시시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진짜 본격적인 전시물은 2층에 놓여 있었다.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휙휙 지나가긴 했지만 암튼 맨 처음 설명을 얼핏 보니 세포액 대신 무슨 플라스틱 용액을 주입했다나 어쨌다나 하는 구절이 있었다. 그러니까....진짜 인체 표본이 맞기는 맞다는 얘기다.

표본들은....훌륭했다. 

각 부위별로...각 계통별로...신체 조직들을 그대로 되살려놓았다. 이를테면 순환계에는 사람 몸의 혈관만 사람 형체 그대로 복원해놓은 표본이 있다.  자잘한 미세혈관까지 모두 그대로 살려냈다.  신경도 마찬가지이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무척 공들여 제대로 만든 표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살난 딸내미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호기심을 보이며 아빠손을 잡고 잘 따라다니는데..

7살난 아들녀석은 내내 경악과 혐오의 도가니였다. 처음부터 아들내미랑 나는 전시회 보고싶지 않다고 했건만 남편이 "사내녀석이" 운운하며 데리고 들어간 거였다. 난 사실 혼자 빠지고도 싶었지만 아들녀석 때문에 들어간 면도 없지 않다.

수형이는 무슨무슨 전집 중에서 징그러운 해부도가 표지에 달린 "인체" 관련 부분 책들을 따로 빼서 안방에 가져다놓는 (자기가 자는 방에 놔두면 무섭다고) 아이이다. 굉장히 외향적이고 밝고 호기심많고 씩씩하지만 이런 쪽에는 약하다.....아...또...벌레도 무서워한다...

nature vs nurture(유전자 vs 환경, 선천 vs 후천)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 중에서 새끼 원숭이가 뱀을 무서워하는건 의식적인 학습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거의 본능적인(유전자에, 뇌에 각인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본능이 발현하기 위해서는 어미 원숭이(양육자)의 cue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미 원숭이가 뱀을 보고 놀라거나 도망치는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보아야 새끼 윈숭이도 뱀을 무서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번역한 책에서 나왔던 사례이다.)

그런 의미에서...내가 벌레라든가 피부속에 감취진 세계 (그것이 인간이든 닭이든 생선이든 ㅡ,.ㅡ)에 대한 유난한 혐오감을 너무 자주, 너무 심하게 아이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형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하지만 소민이는 이상할 정도로 겁도 내지 않고 혐오감도 보이지 않는다. 욘석은 할머니 MRI 찍으시러 방사선과 병원에 따라갔을때 바로 옆에 놓은 TV 스크린 대신 컴퓨터 모니터에 떠오르는 뼈사진만 두어시간 내내 바라보던 녀석이다. 남편은 소민인 아마 자신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될 거라며 좋아서 난리다....

다시 인체의 신비전으로 되돌아가서.

모든 표본들은 끔찍했다.

손과 발만 잘라놓은 뼈 모형을 보면 나는 왜...토막살인사건이 생각날까...

사람의 토르소 부분을 딱 중앙에서 반으로 갈라 두개골에서 엉치뼈까지 둘로 갈라놓은 뼈 덩어리를 보고는...왜 예전 푸줏간에 걸려있는 돼지의 사체가 생각날까...

머리부터 발끝까지...모든 뼈들을 4-5cm 간격으로 토막토막 잘라서 몸 그대로 늘어놓은 표본을 보고서...김수형이 말하길..."엄마, 이거 꼭 국에 들어있는 뼈 같아요."  아....역시 이심전심!!! 바로 그 순간 나도 사골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기억이 바랠때까지 사골 곰국은 못끓여먹을거 같다...

소화기의 내장 역시...음식점 문앞에 진열해놓은 플라스틱 모형의 곱창과 똑같이 생겼다. 곱창전골도 당분간 빠이빠이...

생식기는 아예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정말...

가장 충격적이었던 표본은 5살 아이의 신경계 모형......그 유난히 작은 size는....충격을 배가시켰다. 그리고 어디선가 슬픔이 밀려왔다....

유리 안에 들어있는 이 모든 조각들이...누군가의 사랑받았던 "몸뚱아리"라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던 곳도 이 곳이었을 것이다.

슬픔은 욕지기로...욕지기는 분노로 변해갔던 것도 이 곳이었을 것이다.

전시회 출구에는 "이 모든 어쩌구저쩌구를 가능하게 해주신 시신을 기증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였다.

말로 천냥빛을 값는다지만...그건 옛날얘기...감사하다는 말...죄송하다는 말...유감스럽다는 말....그 말이 한 줌 공기보다, 담배연기보다 가벼운 것이 되었다는 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누구나 아는 얘기다.

"감사하다고 말하면 다냐구" 남편에게 따져물었다. 나는 전시회를 기획한 사람, 허락한 사람, 유치한 사람, "에듀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부추기고 즐기고 나누고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화가났지만, 심지어 시신을 이런 용도로 사용할 것을 허락한 시신의 가족 내지는  그 누군가에게 조차 화가났지만 그냥 이 전시회를 보자고 한 남편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장기기증, 시신기증, 의과대학의 해부나 실습용으로 사용하는 시신 기증은 100% 찬성하고 숭고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사람의 몸은, 시신은 신성한 것이기에...마치 예전 사회에서 성직자가 가졌던 "특권"과 "의무"처럼 꼭 필요한 전문가 집단(이를테면 의사들)만이 입회해서 비밀스럽고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꼭 필요한 행위를 하는게 옳지 않을까?"

"사람의 시신을.....이렇게  곤충 표본이나 야생화 전시하듯...어린이들이 드글거리고 누구나 "놀러"오는 장소에서 아무런 경고의 말 없이 -적어도 임산부나 심장 약한 사람은 보지 말라는 경고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casual하게 전시해놓느다는게.....말이 되냐고."

"무슨 득이 있는데? 모든 아이들이 의대에 들어가  해부실습때 받을 충격을 미리 완화시켜주자는 건가? 우주의 신비처럼 인체의 신비는 자연계의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현상이기에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음미하고, 즐겨야 마땅하다는 건가?"

"진짜로 궁금한데....시신을 기증한 사람들이...이런 용도라는걸 정말 알고 있었을까? 알고도 동의했을까? 아니면 심청이가 제 아버지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제 몸을 팔 듯...남겨진 가족을 위해 거금을 받고 자신의 시신을 팔았을까? 젊은 여배우들 누드 화보집 팔아 평생 먹을 양식 장만하듯...자...내 몸 보시오~~ 돈만 내신다면 못 보여드릴게 무엇 있으오리까?.......뭐 그런 식이었을까?"

남편에게 다다다다 쏟아부은 말들이다.

어쩌면 전시회의 좋은 의도대로 순수하게 인체의 신비에 감탄하고 많은걸 배우고 인체의 정교함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지막 "감사합니다." 부분에서 역시 머리숙에 우리의 "에듀테인먼트"를 위해 희생하시고 노력해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느끼며 발걸음 가볍게 나와서 집에가는 사람들보다 혼자서 이상한 의혹과 상상과 답도없는 문제들을 끄집어내며 이리 꼬고 저리 비트는 나같은 인간이야말로 악랄한-적어도 재수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맞다. 인정한다. 솔직히 전시회에서 긍정적, 유쾌한 정서(지적 고양감, 호기심의 충족, 감탄, 경이...기타등등 기타등등)보다 부정적 불쾌한 정서(혐오감, 욕지기, 징그러움 기타등등 기타등등)을 더 많이 얻었기에.....그냥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싶었고...그러다보니 그 "화"가 꼬리를 물고 가지를 쳐서 뭔가 대단한 도덕적 분개 비슷한걸로 진화되어간 건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상하게 쿤데라에 가서 닿는다.

<불멸>의 주인공 중 한 하나인 루벤스가 나체해변에서 벌거벗은 여자들을 보고 놀라움과 충격에 휩싸인다. 젖가슴을 덜렁대며 당당하게 그와 마주하는 여자들(이를테면 친구의 부인)을 대면하고 시선을 어찌둘지 몰라 주저하는 자신이 오히려 괴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알아챘다. 유럽의 문자반 위에서 시간이 울렸고 "수줍음"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사라져도 그냥 사라져버린게 아니라 너무나 쉽게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버려 그런게 언제 존재하기라도 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루벤스는 수줍음이 여자에 대해 남자들이 꾸며낸 것에 불과한게 아닐까 생각했다. 남자들의 신기루...성적 꿈...말이다.

인체의 신비전에 선 나는 나체 해변에 선 루벤스와 같은 번개에 맞은 기분이다.

인체에 대한 금기와 두려움...그런게 과연 존재하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내가.....너무....늙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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