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체코민속인형극단의 내한공연 <돈 지오바니>를 봤다. 

http://www.hoamarthall.org/ticket/ticket.aspx?cType=view&cId=267&ltype=month&tY=&tM=

진눈깨비 오는 추운 저녁 남편과 애들은 집에 놔두고 나 혼자서 보고 왔다.  꼭 보고싶은 공연이었는데 남편이 시큰둥하길래 애들이나 봐달라고 부탁하고 한 자리만 예매했었다.

공연은........기대했던것 만큼 만족스러웠다.
 

모차르트의 <돈 지오바니> 공연은 접해본 일이 없고 전곡을 들어본 일도 없던 터라.....내용도 재미있고, 음악도 아름답고, 인형극 특유의 맛도 특별했다.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세련되고, 완벽하고, 놀랍고, 현란하고, 압도적인.....그런 쇼가 아니라...
정말 오래고 오랜 옛것의 느낌이 배어있는...전통과 정통에 충실한....
썰렁한 유머, 어설픈 동작, 낡은 의상이나 배경 마저도 genuine한 멋으로 느껴지는...
그런 공연이었다. 

지난주, 이 공연에 대한 정보를 어디선가 접하고....꼭 봐야겠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나에게 무척 매혹적이고...개인적으로 호소해오는 두 가지 키워드가 들어있는 공연이니까. 

그 두 키워드는 바로 "체코"와 "인형극"이다. 

먼저 체코.........
 
쿤데라는 과거에도 지금에도 그리고 아마도 미래에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다.

나의 20대...쿤데라의 소설들 중 좋아하는 작품들(<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웃음과 망각의 책>, <불멸>, <생은 다른 곳에> 등)은 권당 열번에서 스무번씩은 읽었을 것이다.

쿤데라 할아버지가 체코의 전통 인형극을 좋아했는지, 특별한 감정을 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아닐지도....그의 많은 작품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으니^^;;;
쿤데라와 체코 인형극은 나와 안동 하회탈 공연만큼이나 아무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사비나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프란츠가.....사실은 사비나와 반목했던 스위스의 체코 망명자들 모임에 열심히 참석해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던 것처럼..........나는 그저 "체코"에서 온 공연단이 쿤데라 할아버지의 한 조각이라도 되듯 반갑고 특별했다.


그 다음 인형극.........

줄을 움직여 조종하는 인형, 마리오네트에 나는 오랜 옛날부터 매혹되었다.

아마 대개....영화에서 본 이미지였을 것이다.

먼저 <사운드 오브 뮤직>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퍼펫을 조종하여 보여준 <The Lonely Goatherd>

사랑스러운 멜로디의 요들송과 더불어 잊을수 없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그 다음............오래고 오랜 기억의 바닥을 박박 긁어 실마리를 찾아내고....구글의 도움을 받아 재구성한 영화 <Lili> 



 

 

 

 

 

 

 

 



이 유명하지도 않은 오래된 영화를 아는 분, 기억하는 분이 있을까???
 

내가 아이적...(초딩? 중딩?) TV 명화극장 류의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영화였는데....
멜 파라(오드리 헵번의 남편으로 그나마 기억되는.....)가 우수 쩌는 남자주인공 puppeteer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원숭이 같기도 하고 멸치 같기도 한 좀 못생긴 배우인 Mel Ferrer를 한 동안 무척 사랑했다.  

90%는 까먹은 영화 줄거리를 구글을 통해 확인해보니...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된 여주인공 릴리가 어찌어찌하여 carnival (곡마단?)과 엮이게 되는데, 그녀가 순수하게 인형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곡마단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puppet show의 일부로 참여하게 된다.....

그녀는 매력적인,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마술사를 짝사랑하며 상처를 입고...

멜 파라는 그런 그녀를 줄곧 말없이 사랑하며 지켜보며 스스로를 괴롭히는.......(원래 유명한 발레리노였는데 전쟁으로 다리를 다쳐 puppeteer로 전락하엿고, 자신이 조종하는 인형들 뒤로 완전히 숨어버린....컴플렉스 덩어리에 메저키즘의 극치를 달리는.........)

으아.........나으 보호본능 완전 자극하는 캐릭터  ㅡ,.ㅡ

그가 조종하는 인형들은 그의 분신이고 그의 몸이고 그의 영혼이고 그가 내밀 수 없는 손, 달릴 수 없는 다리...그의 육신이었다.......

이 영화가 어린 시절 나에게 그토록 깊은 인상을 주었고, 모든걸 다 까먹어버리는 블랙홀 같은 나의 뇌세포 속에서도 survive할 수 있었던 것은................그 지독하게 우수어린 멜 파라의 캐릭터, 그리고.......puppet, marionette의 매력 때문이었으리라.......

 

그 다음....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3편 중 하나에 드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
다른 두 편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토토의 천국>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따로 한 바닥을 써도 모자를 판이지만........

암튼 영화에서 비밀로 가득한 puppeteer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인형극 공연자는 발레리나가 춤을 추다 쓰러진 후.............번데기에서 나비가 태어나듯...껍데기(육신)를 벗어던지고 날아오르는 천사(영혼)의 이야기가 담긴 공연을 선보이고.........그는 이후에도 줄곧 베로니카에게 접근하고, 신호를 보내고, 치고 빠지며(?) 그녀 주위를 맴돈다. 이 남자와 어떻게 되었는지....영화의 결말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DVD를 갖고 있으니 언제 한 번 다시 봐야겠다.)

암튼.........

Puppet과 Puppeteer는........
인간과 인간의 운명을 조종하는 절대자의 관계에 대한..........진부하리만큼 뻔한 은유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 진부함이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키에슬롭스키 감독이 이 영화에서 하고싶었던 말들이 무엇이었을까....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내가 푸펫...마리오네트에 매혹되는 이유도.............어쩌면.............베로니카, 아니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존재론적 욕구와 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

공연이 끝나고 걸려있는 인형들은...........무섭다. 
 

마치 생명과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처럼..............

 
막이 오르면...........죽어있던 인형들에 또 다시 생명과 영혼과 활기를 불어넣는 pupeteer들의 삶은...........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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