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유니버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전기는 물과 공기처럼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우리의 현대적 삶의 경이는 대부분 전기 및 전자공학 기술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전기라는 것의 정체를 조금씩 알아내고 길들이게 된 것은 길고 긴 인류 역사 중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성과이다. 그리고 역시 놀랍게도 그 짧은 기간 동안 발전한 기술은 순식간에 대중의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 난해하고 복잡한 세계로 질주해버렸다. 눈부신 속도로 발달하는 이 기술의 근간에 대해 늘 궁금증을 가져왔으나 요령부득이었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보더니스의 쉽고 즐거운 안내는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전기의 역사에 대한 이 책은 전보, 전화, 전구, 전동기, 무선통신과 레이더, 컴퓨터로 이어지는 전기와 관련된 물건의 발명을 차례로 다루고 (물론 중간에 순수과학적 발견에 대한 언급도 들어있다.) 마지막으로 인체의 통신수단인 신경계 역시 전기의 원리를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더니스의 전작인 <E=mc2>을 통해서 인물 중심으로 과학사를 펼쳐내는 그의 솜씨를 익히 접했지만 이 책에서 그는 더욱 대담하고 노골적으로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나 전기의 역사의 각 국면마다 ‘순수한 열정으로 독창적인 성과를 내놓은 과학자들 vs. 공명심이나 이기심, 아집과 파렴치함으로 남의 성과를 훔치거나 망친 사기꾼들’을 등장시켜 선명한 흑백, 선악 구도로 인물들의 대결을 펼쳐나간다.

맨 처음, 전신(전보)의 탄생에서는 열정적인 실험가이자 원만하고 존경받는 인격의 소유자인 조지프 헨리와 그의 발견을 가로채 특허를 내고 큰 돈을 벌지만 평생 편집증과 소송에 시달렸던 새뮤얼 모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화의 발명에서도, 청각장애자인 미래의 아내 메이블에 대한 사랑이 동인이 되어 전화기를 발명하는 알렉산더 벨과 웨스턴 유니온의 후원으로 벨의 발명품을 살짝 개선해 업적을 가로채려고 했던, 기술용병에 지나지 않던 토마스 에디슨을 대비시킨다.

하지만 에디슨은 시작은 미천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예언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그는 불굴의 투지로 전구를 발명해냄으로서 그의 독창적인 발명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역사 속에서 정당하게 제 자리를 찾았다. 보더니스는 전신, 전화가 정보를 빠르게 보낼 수 있게 되자 지구가 축소되었고, 전구의 발명으로 밤이 축소되었다고 멋지게 표현한다.

그에 이어 모든 움직이는 기계에 들어가는 전동기의 발명도 설명한다. 전동기의 원리에 대한 여러 설명을 접해봤지만 보더니스의 ‘가짜 토끼를 쫒는 그레이하운드’라는 비유만큼 알기 쉽고 명쾌한 설명은 처음이었다. 전동기는 엘리베이터의 발명을 낳아 오늘날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창조해냈고 가전제품이 주부와 하인의 일손을 덜어 만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적인 세상으로 나가는데 기여했다.

이처럼 전기 관련 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며 세상을 바꾸어놓는 와중에 한편에서는 전기의 정체와 원리에 대한 과학적 발견도 조금씩 진보해나갔다. J. J. 톰슨이 전자를 발견했고 그에 앞서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기의 파동성에 일찍이 눈을 떴다.

기술과 과학이 맞물려 빚어낸 흥미로운 사건 중 하나가 대서양 바다 밑으로 구대륙과 신대륙을 연결하는 전선을 놓는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의 사업이었다. 여기서 또 한 번 선악대결이 벌어진다. 패러데이의 ‘역장’의 존재를 믿고 설계의 잘못을 지적했던 윌리엄 톰슨 vs. 아집과 자존심으로 원래의 설계를 밀고 나갔던 에드워드 화이트하우스의 대결이다. 물론 처음에는 화이트하우스의 안 대로 밀고나가다가 말아먹고 결국 톰슨의 제안대로 다시 추진한 끝에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선악구도까지는 아니지만, 보더니스는 가정에 공급되는 전기의 단위, 즉 전압에 볼타의 이름을 따 볼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에 못내 아쉬워한다. 그의 패러데이 사랑은 <E=mc2>에 이어서 이 책에서도 절절히 이어진다.

그 다음 전기의 파동성이 더욱 확장되어 무선통신 기술을 낳는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부분의 처음인 6장은 다른 장과 다른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발전시켜 파동 현상을 실험으로 확인한 과학자 헤르쯔의 굵고 짧은 삶을 그의 일기와 편지, 연설과 그의 사후 추도사를 교차로 엮어 넣어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묘사했다. 숙연한 감동이 밀려오는 이 부분을 읽고서 보더니스의 문학적 기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mc2>에서 박진감 넘치는 원자폭탄 개발 전쟁이 펼쳐졌다면 이 책에서는 레이더 전쟁 이야기가 등장한다. 근대와 현대의 과학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테마일수밖에 없는 듯 하다. 독일이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영국해를 건너 영국마저 함락시키기 일보직전, 로버트 왓슨 와트와 윌킨스가 개발한 레이더(체인 홈 레이더)가 영국 공군인 RAF에 큰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흐르고 독일이 한 수 위의 단파장 소형 레이더 기술을 개발해냈다. 여기에서 찰스 콕스를 비롯한 영국 공수부대 대원들이 프랑스 브루네발 기지의 독일군의 레이더(뷔르츠부르크라고 불리는)를 빼앗아 오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무용담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들이 훔쳐온 레이더를 조사해서 장단점을 분석해낸 결과는 연합군 측의 가장 악랄한 사령관 아서 해리스에 의해 함부르크 민간인 대공습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이야기의 흐름이 -연합군과 독일의 첨단 무기 개발 경쟁, 연합군 측 특수부대원들이 적진을 뚫고 들어가 큰 공을 세우는, 아슬아슬 스릴 넘치는 무용담, 그에 의해 연합군측이 승기를 잡게 되지만 결국 연합군측의 한 방이 엄청난 규모의 비극적인 민간인의 희생을 낳는 결과……- E=mc2의 원자폭탄 이야기와 놀라울 정도로 대칭을 이룬다.)

제2차 세계대전을 분수령으로 인간의 역사 역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듯 전기의 역사 역시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전자의 비물질성이라는 현대적인 물리학의 관점이 도입되게 되고 그것은 컴퓨터, 트랜지스터, 마이크로칩과 같은 도구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 부분에서부터는 그 기술과 이론의 원리를 이해하며 따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더니스도 난해한 과학적 원리보다는 역사와 인물 위주로 소개해나가고 있다.

범용 기계, 즉 컴퓨터의 원리를 고안해낸 앨런 튜링의 짧고 애잔한 삶에 한 장(9장)을 할애하고 있고, 그 다음 10장에서는 튜링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발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선악구도가 펼쳐지는데 실리콘의 전자 흐름을 조절하는데 성공해서 트랜지스터를 만들어낸 월터 브래튼과 존 바딘 vs. 그들의 상관으로 그들의 공을 가로채 자신의 것으로 포장한 윌리엄 쇼클리의 대결이다. 그들은 모두 벨연구소에 몸담고 있었는데 쇼클리의 횡포로 브래튼과 바딘 모두 연구소를 나가고, 쇼클리 자신도 벨 연구소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자신의 연구소를 차렸다. “쇼클리는 거대한 원심분리기가 되었으며,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혁신을 퍼뜨리는 기계가 되었다. 그의 명성에 끌렸던 똑똑한 이들은 그가 얼마나 끔찍한 사람인지 깨닫고 나자 서로 뭉치기 시작했고, 그 유대를 바탕으로 쇼클리의 회사를 빠져나와 근처에 자신들의 회사를 세웠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실리콘 밸리인 것이다. 그리고 마이크로칩을 발명한 로버트 노이스나 인텔의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도 쇼클리에게 이끌렸다 떨어져나간 인재들에 포함된다.

마지막 11장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우리의 삶에 작용한 전기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몸 안의 전기의 작용, 뇌와 신경계의 신호전달에 대해 설명한다. 전신, 전화에서 오늘날 무선통신에 이르기까지 전기가 통신의 수단으로 위력을 발휘했듯 우리의 신경계 역시 전기적 원리로 신호를 전달한다. 이 경우 직접적인 전자의 흐름이 아니라 전기력을 띈 분자, 즉 이온의 전위차를 이용해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오징어의 신경세포를 연구해 이 원리를 발견한 앨런 호지킨과 앤드류 헉슬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신경세포 말단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건너뛰는 부분의 신호전달을 맡은 신경전달물질을 발견한 오토 뢰비의 업적을 다루고 있다.


전반적으로 멋진 구성과 뛰어난 서술, 무엇보다 재미있고 재치 넘치는 유쾌한 책이다. 후반부의 무선기술, 컴퓨터, 실리콘 등의 원리에 대해서는 수박 겉핡기 식으로 너무 간략하게 다루고 넘어가서 조금 아쉬웠지만, 책의 분량과 의도를 고려할 때 그 정도로 다룰 수 박에 없는 내용이지 싶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책의 부록에 실려있는 “더 읽을거리”가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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