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더들에게 칼손절은 숙명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꼭 트레이더만 손절 원칙을 지켜야 하는 걸까? 가치투자자나 펀더멘털리스트들은 손절에 좋은 감정을 갖고있지 않은 듯하다.
내가 손절을 못(안)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른바 가치투자자나 펀더멘털리스트들은 매수 종목을 고르기 까지 자기 나름 깊은 공부를 한다. 사업보고서를 최대한 끙끙대며 읽어보고, 시중에 나온 리포트를 다 읽고, 뉴스를 검색하고, 다른 블로거들의 의견도 수집한다. 이 과정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작업이고, 이런 작업을 통해 매수를 결정한 종목과 사랑에 빠지지 않기는 힘들다. 영어 표현 중 'brain child'라는 말이 있는데, 공들여 매수한 종목은 정말 나의 공부, 나의 판단, 나의 두뇌로 낳은 내새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종목을 냉정하게 다루는 것은 뱃속에 열 달을 넣고 다니고 진통을 겪어 나은 내 아이에게 모성을 느끼지 않는 엄마처럼 사이코패스적이거나, 모든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은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하지 않을까?
심리적으로, 일단 내가 팔았는데 주가가 더 올라가버리는 고통은 계속 들고 있다가 수익을 다 반납하는 고통보다 더 큰 것 같다. 팔고 오르면, 익절을 해도 고통스러운 판에, 손절 한 후에 주가가 올라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데미지를 입을 것이고 그것이 두려워 손절을 못하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팔았다가 재매수하면 되지 않은가? 스스로 반문해보지만, MTS의 계좌만을 유일한 관리 도구로 삼고 대충 투자하는 쌩 아마추어 투자자인 나로서는 평단가가 높아지는 걸 보는 것도 기부니가 좋지 아니하다.
결국 이런저런 심리적인 이유로 손절을 못하는데 마크 미너비니는 그것이야말로 성공의 걸림돌이자 아마츄어리즘이라고 꾸짖는다.
그래서, 조금씩 나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손절을 연습해보려고 한다. 그것으로 계좌를 방어해낼 수 있다면, 비록 내가 챠트와 수급을 읽어내고 달리는 말에 용감하게 올라타는 뛰어난 트레이더가 되지 못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사실 이 분의 SEPA 전략이나 트렌드 템플릿, 코드 33과 같은 구체적인 원칙들이 "국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누군가 백테스트를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 미국은 뭐든 큰 나라니 주도주의 추세도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길게 지속되지만 우리나라에서 영업이익 "증가율"이 몇 분기에서 몇 년씩 증가하는 종목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싶은 냉소적인 마음도 살짝 들기도 한다. 쿠키 커터와 같은 모델도 내수 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 없지 않을까 싶기도...
그럼에도, 미너비니의 원칙들을 우리 시장에 "글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지 모르지만, 그의 투자 철학과 추세 추종 투자의 장점을 각자의 투자에 적용하는 것은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두고두고 다시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