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보아야 할 전시인데...그동안 벼르고 미뤘다가...

고마우신 분의 티켓 선물에...큰 아이 학교 숙제 (놀토 현장학습 보고서쓰기..주제는 자유..)를 핑계로...하던 일도 미뤄놓고 애들 양손에 잡고 길을 나섰다. 눈오고 비오고 바람 엄청 부는 궃은 날씨에 우산 들고, 애들 우비까지 가방에 넣어서....내심 날씨가 이모냥이니 관람객이 좀 적겠지...하는 기대를 가지고 미술관을 향했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나의 기대는 곧 무너졌지만.....전시회 내용 자체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번도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도 꽤 있었고...그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이 전혀 질적으로 떨어지거나 그저그런 것이 아니라....오히려 새롭고 참신하게 느껴졌다는 점......

그동안 화보나 각종 매체를 통해 접했던 그림들도 실물을 보니............새삼.........감동스럽고 더 큰 호소력을 느꼈다는 점.....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마그리트의 삶의 역사...작품 경향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1940년대 초의 외도....에 가까운 화풍의 실험이 재미있었다.  마그리트는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도 썩 잘 그려냈고 약간 냉소적으로 그린 야수파적 그림들도 선보였고...연도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큐비즘의 공식대로 그려낸 작품도 하나 있었다- 그 어느 것이든..참...잘~ 그렸다. 마치 나는 맘먹으면 이런 식의 그림도 저런 식의 그림도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듯.............)

그런 것들이 전시회 관람에서 나의 기대를 뛰어넘은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사실 나는 르네 마그리트라는 화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나 애정은 없었다. 그냥...그림을 참...잘 그리는 화가구나...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고......사람들에게 작은 충격을 선물해주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고....자신의 작품세계...테마를 집요하게 가꾸어나가고 완성해나가는 의지와 노련함을 가진 화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과연 그는 거장이고...오늘 전시회를 보면서...나는 그를 "천재"였다고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마그리트의 세계로 안내해준 또 하나의 "천재"가 자꾸만 마음에 떠올랐다. 그 사람은 "살바도르 달리"이다. 내가 초현실주의 미술에 어마어마한 관심과 애정을 느낀 것도.....미술 전반에 관심과 애정을 느낀 것도...따지고보면 모두 달리와의 첫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달리와의 첫 만남.......중학교 1학년 미술책에 실린 손바닥 반의 반만한 "기억의 고착"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 느낀 충격......홀린 듯한 느낌....갑자기 그동안 알지 못했고 상상도 못했던 신비한 세계의 문이 잠깐 열렸다 닫혀서 짧은 순간 그 너머를 흘낏 바라볼 기회를 얻은 듯한 느낌........일단 그런 느낌을 맛보고 난 후......그 문 너머 세계에 대해 느끼는 엄청난 갈증...욕구......

왜? 왜 그토록 달리의 그림에 매혹되었을까...........나 자신에게 묻는다면...그냥....뭔가...그와 나 사이에 주파수가 맞았기 때문이라고밖에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 무렵 (그리고 그 후 내내) 나는 꿈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꿈의 세계...무의식의 세계를 포착해서 현실의 화폭에 표현해내는데 있어서 달리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가의 솜씨를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다...(달리가 그토록 꿈의 세계를 잘 표현해낼 수 있었던 것은...그의 천재성이 물론 더 큰 몫을 했겠지만...그가 말 그대로 "꿈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어느 책에선가...달리가 잠이 들 무렵 어지럽고 기괴하며 생생한 꿈이 시작될 때-hypnagogic hallucination- 스스로 잠을 깨워서 꿈에서 본 이미지를 그렸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초현실주의의 중심적 기법인 automatism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달리에게 마치 번개라도 맞은것 같은 사랑을 느낀 것은........

어쩌면 그냥 내 인생에서 참으로 적절할 때 그를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참 감수성 예민한 13살 무렵....예술적, 심미적 자극이라고는 거~~~의 전~~~혀 받아본 일이 없는 순백의 설원과 같은 경험의 빈곤상태..........그 때 만난 "아름다운 것들"은............이를테면 비틀즈의 음악, 카뮈의 소설과 에세이, 심금을 울린 영화들은...........얼마나...얼마나...상상을 초월할만큼 아름다웠던가................

그런 의미에서...콩알만한 녀석들을 데리고 이런 미술관에 다니는게 잘 하는건지 어떤지 모르겠다.

미적 감각이 좀 더 발달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문화적 지식이야 좀 더 풍부해지겠지만......아주 어릴때부터 이런 자극에...이런 귀하디 귀한 보물에 서슴없이 노출되다보면...모든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되지는 않을지...무뎌지지는 않을지...귀한줄 모르게 되지는 않을지....뭐가 진정 나와 주파수가 맞는지.....헷갈리게 되지는 않을지...

하다못해.....13살의 엄마가 느꼈던...번개처럼 찌릿찌릿한 그런 충격을 맛볼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건 아닐지...................................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 번개맞는 것같은 경험...심미적 epiphany의 경험은.........그 이전의 모든 빈곤과 결핍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멋진 것이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