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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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전쟁의 잔해 위에 피어난 책과 사람의 이야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전 세계 75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이 소설은 넷플릭스 영화화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영화로는 담을 수 없는 편지 문학의 섬세한 매력은 여전히 책에서만 온전히 느낄 수 있으니 꼭 읽어보세요.


메리 앤 섀퍼 작가는 사실 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카 애니 배로스가 이어받아 완성한 작품이지만 두 작가의 목소리가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제목만으로는 도통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습니다. 건지(Guernsey)는 영국 채널제도에 위치한 외딴 섬의 지명이고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일하게 독일에 점령되었던 영국의 영토였습니다. 그곳 주민들이 만든 북클럽 이름이 감자껍질파이입니다.(조카 작가는 웬만하면 시도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46년 런던에서 시작합니다.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줄리엣 애슈턴은 다음 작품을 고민하던 중, 외딴 섬 건지에 사는 도시 애덤스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도시는 줄리엣이 중고서점에 판 찰스 램의 책에 적힌 주소를 보고 편지를 쓴 것입니다. 책을 통해 맺어진 이 인연은 점차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로 확장되며 건지섬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드러냅니다.


"제 책이 어쩌다 건지섬까지 갔을까요? 아마도 책들은 저마다 일종의 은밀한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모양이에요." - p20


문학회의 시작은 우습기까지 합니다. 독일군 점령 시기의 건지섬. 주민들이 몰래 돼지구이 파티를 벌이다 통금 시간을 어기고 검문에 걸립니다.


이를 모면하고자 엘리자베스가 문학회 모임이었다고 둘러댄 것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시초입니다. 감자껍질로 만든 파이라는 기괴한 요리는 당시의 기근을 상징하는 비유이자 결핍 속에서 피어난 삶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핑계가 진짜 문학회로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 소설은 수신자와 발신자가 시시각각 바뀌며 펼쳐지는 수십 통의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편지에는 저마다의 내면과 성격, 감정이 날것 그대로 드러납니다. 편지의 문체만으로도 캐릭터들의 성격을 엿보는 기분입니다.


줄리엣과 건지섬 주민들 간의 서신은 어느새 읽는 이에게도 감정의 파장이 전해집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전후 시대의 상처와 복원을 경험하게 합니다.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지기 위해 이들은 책을 도구로 삼았습니다. 술을 끊은 존,신앙을 회복한 윌, 이웃과 소통하게 된 도시 등 독서를 통해 변화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문학이 단지 사유의 수단을 넘어 삶을 회복시키는 치유제임을 보여줍니다.


상처와 결핍을 지닌 이들이 문학회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서로를 보듬는 모습은 마음을 울립니다. 전쟁 이후 공동체의 사랑과 책임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설에 등장하는 작품들 이야기도 매력만점입니다. 제인 오스틴, 찰스 램, 라이너 마리아 릴케, 세네카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전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단순히 언급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이들의 작품이 어떻게 건지섬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보여주면서 문학의 실질적 치유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부록에 리스트화한 작가의 배려가 멋집니다.


책을 매개로 한 정서적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준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일상의 소소한 연대와 따뜻한 인간관계에 목마른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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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서 만나는 서비스 심리학
손정필 외 지음 / 월넛그로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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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편의점만큼 동네에 많이 들어선 치과들. 최첨단 장비와 기술력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의료의 본질이 점점 관계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손정필, 조희송, 이수인, 윤득영, 박경아, 김상훈 여섯 명의 저자가 공동 집필한 <치과에서 만나는 서비스 심리학>은 치과 환경에 맞춰 심리학 이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적용한 실전 가이드북입니다.


특히 NLP(Neuro-Linguistic Programming)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기반으로 관계 중심의 진료 모델을 설계한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진료 부위를 정확히 치료하는 것은 기본이자 필수. 중요한 건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환자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말하는 만족도란, 그저 불만이 없는 말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불만이 없는 것과 만족한 것은 다르다"라며 많은 치과에서 착각하는 문제가 없으면 괜찮은 병원이라는 인식을 꼬집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환자의 만족은 무(無)불만이 아니라 적극적 감동에 가깝습니다.


치과 진료는 결국 관계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말귀를 알아듣는 능력, 환자와의 감각 맞춤 등 구체적인 심리 기법들이 소개됩니다. 반복되는 진료 루틴 속에서 직원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환자의 감정 상태에 무관심할 때 훨씬 증폭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진 스스로를 위한 심리 안전 지대로도 기능합니다.


<치과에서 만나는 서비스 심리학>은 치과 경영의 성공이 구성원의 심리적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병원의 기술 수준과 진료 시간 단축도 중요하지만 결국 환자가 다시 찾게 되는 병원은 기분 좋은 기억을 준 병원입니다.


필요한 것은 일관된 조직 정책과 문화입니다. 구성원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조직문화는 업무 분위기를 넘어 환자에게 전이됩니다. 무엇보다 환자를 증상의 집합체가 아닌 경험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환자가 불편해하는 것은 단지 통증만이 아닙니다. 진료실의 낯섦, 불친절한 응대, 설명 없는 치료 등이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입니다.


이 책은 채용부터 동기부여, 스트레스 관리, 목표 설정까지 조직 운영의 전 과정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치과 운영의 실무적 측면을 꼼꼼히 짚어줍니다. 이러한 관점은 치과의 실천 사례들을 다룬 후반부와 연결됩니다. 조앤이치과, 인연합치과, 언제나이든치과, 알프스치과, 화평치과 원장님들이 어떻게 공감과 치유 중심 문화를 구축했는지 보여줍니다.


<치과에서 만나는 서비스 심리학>에서는 진료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언어 전략과 감성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하나씩 짚어줍니다. 단순한 화법이 아닙니다. 환자의 감정을 읽고 반응하는 고차원적인 의사소통 기법입니다.


환자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는 기법, 치료 설명에 감정을 덧입혀 공감을 이끌어내는 기법 등 치과뿐만 아니라 고객 응대 직군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만한 전략들이 소개됩니다. 특히 환자의 존재 인식하기, 심정 알아주기, 성격 파악하기, 칭찬과 인정하기 등 NLP 기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짚어줍니다.


심리학 이론을 경영 실무에 자연스럽게 접목한 <치과에서 만나는 서비스 심리학>. 기술적 우수성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운 현실에서 환자와의 관계를 통한 심리적 치유라는 새로운 가치 창출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치과에 몸담은 실무자뿐만 아니라 상담심리학적 접근에 관심 있는 예비 의료인에게도 유용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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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 - 폭력의 시대, 불가능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W. G. 제발트 지음, 린 섀런 슈워츠 엮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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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천재 작가의 마지막 증언, 제발트가 남긴 문학적 유산을 탐구한 <기억의 유령>. 2001년 12월 14일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독일 작가 W. G. 제발트가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발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기억의 유령>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까지의 심층 인터뷰와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모은 책입니다. 문학적 거장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제발트의 문학 세계는 마치 사냥꾼과 같습니다. 역사의 잿더미 속에서 잊혀진 이야기들을 발굴해내는 집요한 탐정이었습니다. 1944년 독일 알고이의 베르타흐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알프스 고산 지대에서 꽁꽁 언 시신과 함께 지내곤 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의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와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제발트는 스물두 살에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나치가 아닌 체하는 교수들과 과거를 회피하는 독일 사회에 대한 깊은 실망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으로 건너가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3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브리티시 문학번역원의 초대 원장을 역임했습니다.


"그토록 우연의 일치가 많은 글을 읽고 그 배경이 심란하게도 자신의 삶과 같은 곳임을 알면 기분이 묘하다"라는 평론가의 말처럼, 제발트의 작품은 기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문학적 사냥은 과거와 현재, 개인사와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의 그물망으로 엮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한강의 문학적 질문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와 닮아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과거는 침묵 속에 묻어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윤리의 기반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제발트와 한강이 나란히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과거의 고통 앞에 어떻게 서야 하는지를 묻는 일이자, 그 질문에 스스로를 담보로 삼겠다는 결단입니다. 이 둘의 문학은 모두 죽은 자의 목소리를 복원함으로써 산 자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거대한 가능성에 대한 문학적 사유이자 실험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말함으로써 가능한 일들, 그 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이들이 추구하는 문학의 윤리적 심연이며, 제발트와 한강이라는 작가를 시대 너머로 연결 짓는 가장 깊은 지점입니다.


제발트가 유령 사냥꾼이라고 불렸던 이유는 그의 독특한 문학적 시도 때문입니다. 그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과 그 일의 불가능성을 다루는 데 헌신했습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목소리들이 현재에 어떻게 메아리치는지를 탐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특히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그의 작품들은 독일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민자들』과 『아우스터리츠』는 "유럽의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그의 이해도가 여느 독일 작가들보다 독보적"임을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비평가 루스 프랭클린은 "제발트처럼 도덕적 지위가 있는 작가만이 이런 책을 쓸 엄두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제발트가 문학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그가 창안한 산문 픽션(prose fiction)이라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 때문입니다. 현대 소설에서 독일의 산문 전통을 부활시켜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구체화한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입니다.


제발트는 자신의 창작 방법을 개를 관찰하면서 터득했다고 고백합니다. "원래 체계적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말하자면 개가 들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꼴과 같은 방식입니다. 코가 이끄는 대로 다니는 개를 보면 좌표를 설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들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면 개는 찾던 걸 반드시 찾아요."라고 말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소설과 에세이, 역사서와 회고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독특한 미로 같은 구조의 자유로운 접근법 덕분에 제발트의 문장을 따라가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제발트의 문학적 탐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시적 접근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에 대해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사실은 해방 이후의 사진들이었고, 실제 홀로코스트의 현장은 "그 이전에 안 보이는 데서 신속히 처리되었던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예리합니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흐릿한 흑백사진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사진은 기억을 보존하는 매체이지만, 동시에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할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발트의 문학은 서늘한 사치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의 문학이 지닌 유혹적 요소들은 과거를 회복하고 삼키고 대체합니다. 이 과정에서 극도로 파괴적인 혼란 상태는 더없이 정확하고 절제된 말로 표현됩니다. 마치 아름다운 선율로 포장된 절망의 노래와 같습니다.


<기억의 유령>에서는 작가의 내밀한 고백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발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되는 힌트도 가득합니다. 『이민자들』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전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나온 존트호펜의 학교 선생님이 자살했다는 전화였다고 말이죠. 그의 작품이 어떻게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사건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제발트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것은 독일 사회의 집단 기억상실과 모의된 침묵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대한 부모의 침묵, 대학 시절 과거를 회피하고 '나치가 아닌 체하는' 교수들에 대한 좌절감"을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침묵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제발트는 스스로 기억 상실을 유도한 독일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기억하는 일을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여겼습니다. 그의 문학은 이러한 침묵에 대한 치열한 반박이었습니다.





개정증보판 <기억의 유령> 부록에는 제발트의 소설에 영감을 준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과 프란츠 카프카의 「사냥꾼 그라쿠스」, 그리고 문학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제발트의 어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방의 죽음」과 「사냥꾼 그라쿠스」 모두 상징이자 은유로서 사용됩니다. 각각 ‘무력하지만 지속적인 생명’, ‘끝나지 않는 죽음 이후의 여정’을 상기시킵니다. 제발트는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얽히는가, 죽음을 지나치고도 과거는 여전히 우리를 떠도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역사와 기억, 트라우마와 치유라는 주제에 관심있다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문학적 문지기 제발트의 문학 세계로 들어서보세요. <기억의 유령>은 그의 세계를 향한 입문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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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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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좀먹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회피하려는 태도라는 걸 일깨워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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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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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에서 편안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 이 정도의 편안함은 언젠가부터 기본값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전 인류 역사상 가장 편안한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안함의 습격>은 이 편안함이야말로 우리 삶을 좀먹는 가장 교묘한 위협이라고 말합니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이스터는 수년간 불편함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추적하며 현대인이 잃어버린 생존 본능과 불편함의 가치를 들여다봅니다.


알래스카 오지에서 33일간 순록 사냥이라는 극한 체험을 감행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이 책은 그의 체험을 중심축으로 하되 진화심리학, 뇌과학, 운동생리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며 너무 편한 삶의 불편한 진실을 전합니다.


목차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나타납니다. 죽지 않을 정도의 고생을 해봐야 한다, 따분함을 즐겨라, 배고픔을 느껴라, 매일 죽음을 생각하라, 짐을 날라라. 


산업화 이후 인간은 편리함이라는 목표 아래 각종 기술과 제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점점 불편을 회피하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그런데 <편안함의 습격>은 우리가 피하려 하는 불편함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뇌는 본래 환경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면서 발달해왔으며 약간의 불편함은 오히려 창의력, 인지능력, 회복탄력성을 자극한다는 것이 신경과학계의 중론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편안함은 오히려 뇌를 과소동원 상태로 몰아넣고 있으며 집중력 저하와 무기력, 만성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이 책의 백미는 알래스카에서의 체험기입니다. 인터넷도 일정도 인공조명도 없는 야생에서의 삶은 저자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습니다. 매 순간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식량 확보와 생존에 신경 써야 하는 시간 속에서 그는 잊고 지냈던 감각들을 되찾게 됩니다. 불편함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입니다.


알래스카의 33일은 우리 모두가 지닌 생존 본능을 깨우는 의식 같은 장면입니다. 저자는 원시적 활동이 인간의 DNA에 새겨진 감각을 되살리더라고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육체적 한계를 느낀 게 언제인지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끔찍할 정도로 두려워한다. '편안함에 의한 잠식'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채는 것을." - 책 속에서


현대인의 정신적 허약함은 실패와 불확실성에 무감각해진 데 있다고 합니다. 매년 한 번은 확실히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극한 도전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같은 도전은 뇌와 몸에 새로운 자극을 줍니다. 실패가 허용되는 공간에서 오히려 자존감을 높이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되찾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가 됩니다.


편안함은 단지 정신적 문제만 유발하지 않습니다. 신체에도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칩니다. 하루 8시간 이상 앉아 있는 현대인은 단축된 수명, 각종 대사 질환, 만성 통증에 직면해 있습니다.


알래스카에서의 사냥 여정 동안 저자는 하루 종일 걷고, 무거운 것을 들고, 실제로 생존을 위해 신체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의 몸이 지속적인 움직임을 위해 설계되었음을 깨닫습니다. 결국 일상 속 작은 불편함은 오히려 삶의 감각을 깨우게 됩니다.


지루함에 대한 회피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이 항상 손에 들려 있는 시대, 우리는 단 몇 분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견디지 못합니다.


정보를 계속 소비하는 뇌는 단기 보상에만 반응하고 깊은 사고나 통찰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명상, 산책, 사색은 그래서 더욱 절실합니다. 약간의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이 결국 창의성과 정신적 안정성의 관건입니다.


저자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은 고통에 대한 내성, 불편함을 통제하는 힘 그리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정서적 내구력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불편함이라는 낯선 영역에서만 다시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작은 불편이 삶을 회복시키는 강력한 전략임을 깨닫게 됩니다. 편안함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단지 무디게 할 뿐입니다.


현대인의 끝없는 편안함 추구가 우리를 망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필요한 건 의도적 불편함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편안함의 습격>.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실천 가능한 조언과 함께 알래스카 오지에서의 모험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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