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왕 정세권 - 집을 지어 나라를 지킨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
김경민 지음 / 와이즈맵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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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을 걸으며 우리는 무엇을 보나요? 인스타그램에 올릴 예쁜 사진?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핫플? 하지만 그 골목골목에는 일제의 칼날 아래서도 조선인의 터전을 지켜낸 한 사람의 처절한 신념이 새겨져 있습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과 김경민 교수가 쓴 『건축왕 정세권』은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소비해온 한옥마을의 진짜 이야기를 복원해냅니다. 부동산 시장 분석과 도시계획을 연구해온 저자는 빅데이터 기반 연구자답게 토지대장과 신문기사, 흩어진 역사 기록을 꼼꼼히 추적해 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되살려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정세권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뜨겁고도 선구적인 뜻을 지닌 인물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단순히 한옥마을을 만든 사람이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건축왕 정세권』을 통해 잊혔던 한 시대의 진정한 건축가이자 민족의 실천가를 알게 되어 마음 깊이 뜻깊은 만남을 한 듯합니다.


1920~30년대 경성은 전쟁터였습니다. 총성 없는 전쟁, 바로 토지 전쟁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남촌을 차지한 뒤 북촌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조선인들은 살 집을 구하지 못해 자신들의 터전에서조차 쫓겨날 처지였습니다.


"경성이 어찌 조선사람의 경성인가"라는 당대의 한탄은 그저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일제는 주택문제 해결이라는 명분 아래 일본인 주거지를 확장하는 전략을 펼쳤고, 이는 곧 조선인의 공간적 축출을 의미했습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정세권입니다. 그는 "사람 수가 힘이다. 일본인의 북진을 막아야 한다"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북촌의 넓은 대지를 매입해 조선인을 위한 한옥단지를 개발했습니다.





기어코 이 지역만큼은 일본인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공간적 저항입니다. 만약 정세권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북촌은 일본 적산가옥으로 가득 찬 거리였을 겁니다.


북촌과 익선동에서 다세대 한옥을 공급한 사업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도시주택 개발 방식이었습니다. 참신한 점은 단독 대지에 대형 한옥이 아니라 좁은 대지에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 가능한 소형 한옥이라는 설계 변화였습니다.


이런 방식은 현대 다세대주택, 연립주택의 원형처럼 보일 수 있고, 주거 수요가 폭발하던 도시화 초기 경성에서 주거불안을 완화하는 혁신이었습니다. 정세권은 단순히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시계획적 안목을 가진 디벨로퍼였고, 당시 조선 내부에서 보기 드문 유형이었습니다. 


한 예로, 북촌 가회동 31번지-익선동 166번지 개발에서 보듯 그는 여러 필지를 확보해 소형 한옥을 설계했고, 이를 분양하거나 임대하는 형태로 주택을 보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설계·시공·금융까지 복합적으로 기능하며, 주택 공급 기업으로서의 측면을 띠었습니다.


『건축왕 정세권』에서는 정세권의 등장배경과 그가 왜 최초의 디벨로퍼로 불리는지, 그리고 도시·주거·민족이라는 삼각축이 어떻게 그의 사업을 가능케 했는지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관광지로만 인식하는 북촌, 익선동이 사실은 절박한 필요에 의한 공간혁신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왕십리 일대에서 일본인 주거단지 계획과 맞서 토지매입 경쟁을 벌인 일은 단지 땅값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조선인의 공간적 자율성과 주거권을 지키려는 전략이었습니다.


1929년 세계대공황은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고, 부동산과 주택사업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정세권은 불황 속에서도 오히려 주택개량과 서민주택 공급을 확대했습니다. 사회적 책임과 민족적 소명이 결합된 판단으로 말입니다.


정세권을 기억해야 한다는 저자의 뜻은 인물 복원 그 이상입니다. 정세권은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이며 또한 민족운동가였습니다. 사업이 위축되는 와중에도 조선물산장려회에 어마어마한 거금을 투여하고 있었던 겁니다.


조선물산장려운동은 민족의 산업자립과 주체성 회복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정세권은 물산장려회관을 건축했고 별도 회사 장산사까지 운영하며 잡지를 발간하고 생필품 공급망을 갖추었습니다.


집이 터전이라면, 말은 정체성입니다. 정세권은 자사의 수익을 민족운동에 투자했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선어학회 후원이었습니다. 학회 회관을 지어 기증하고, 표준어사정위원회를 후원하며 한글과 조선어연구의 물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그는 고문을 당했고, 일제는 그의 막대한 자산을 몰수했습니다. 그가 설립한 건양사는 결국 쇠락했고, 역사 속에서 잊혔습니다. 하지만 그가 조성한 북촌과 익선동 한옥마을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북촌과 익선동은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이지만, 그것이 단지 트렌드나 미관 때문만은 아니라 민족의 살 집을 지키려 했던 한 사람의 꿈의 산물임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도시재생, 젠트리피케이션, 주거불안 등으로 도시 공간을 둘러싼 갈등을 목도합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공공성과 수익성은 조화될 수 있는가?, 주거공간이 단순히 시장의 상품이 아니라 삶을 담는 그릇이라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정세권의 삶에서 건져올리게 됩니다.


정세권의 한옥은 남았지만 그의 이름은 지워졌습니다. 독립운동가로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근대 건축의 선구자로 기억되지도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북촌 골목을 걸을 때 혹은 익선동 카페골목을 찾는 순간, 그 공간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를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숨 쉬었던 사람들의 얼굴, 그 공간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신념을 상상하게 됩니다.


골목산책을 넘어 도시의 역사와 마주하는 시간. 『건축왕 정세권』은 역사가 지워버린 영웅을, 우리의 기억 속으로 되돌려놓은 값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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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전쟁 -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KBS 다큐인사이트 〈인재전쟁〉 제작팀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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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KBS 다큐인사이트 〈인재전쟁〉은 방영 직후 200만 조회 수를 돌파하며 방송 이후에도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의 성공을 넘어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인재전쟁: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책은 2025 최고의 문제작 <인재전쟁> 다큐의 확장판입니다. KBS 다큐 <인재전쟁> 방송 미공개 취재 내용 및 전문가 인터뷰가 수록되었습니다.


이 책의 중심에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불안이 경쟁을 낳고, 경쟁이 방향을 잃은 채 안정만을 좇게 된 현실. 『인재전쟁』은 그 불안을 해부하고, 국가가 지켜야 할 진짜 인재가 무엇인지 되묻습니다.


중국의 인재 전략은 교육을 넘어 국가의 생존 전략입니다. 딥시크 쇼크로 알려진 인공지능 기업의 등장은 그 상징이었습니다. 딥시크의 성공은 개인의 천재성을 극대화하는 인재 양성 교육과 창업 시스템이 길러낸 기술 인재 생태계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진단합니다.


중국은 인재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설계합니다. 중앙정부의 5개년 계획은 교육, 산업, 과학기술 전 분야에 직접적으로 투영됩니다. 『인재전쟁』은 딥시크 CEO 량원펑을 배출한 저장대학교부터 항저우의 창업 실험실, 중국의 대입 시험 가오카오 현장까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중국의 교육제도는 이미 시험을 잘 보는 아이를 뽑는 방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시험 성적이 뛰어난 학생만이 혁신 역량을 가진 것은 아니며, 창의성이 뛰어난 학생 중에는 성적이 평균 이하인 경우도 있다는 인식이 제도 설계에 반영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평균 이하의 창의성이 제도 속에서 평가받을 길이 없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중국의 과학자들이 영웅으로 대접받는 문화입니다.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온 그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소식은 정년 무렵 한국에서 들려온 R&D 예산 삭감 소식이었다."라는 문장은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국가의 방향성을 가름짓는다는 사실을 이 한 문장이 압축합니다.


중국의 젊은 인재들이 공대에 몰리는 이유는 단순한 성취 욕구가 아니라, 과학자로 사는 삶이 존중받는 사회적 신호 때문입니다. 중국의 공대 열풍은 산업적 계산이 아니라 존엄의 설계에 가깝습니다.


이제 카메라는 한국으로 향합니다. 다큐팀은 한국의 주요 학군지와 이공계 현장을 오가며 의대 쏠림 현상의 정체를 추적했습니다.


"재수생 C군은 공과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공대는 안 된다, 가서 뭐 먹고 살 거냐’는 말이 결정적이었다."라는 한 문장에 한국의 현실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불안이라는 정서를 구조적으로 내면화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선택이 의대라는 하나의 안전망으로 집중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 기억상으로도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공대가 바로 그 안전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인재전쟁』은 이를 사회적 인식의 진화가 아닌 불안의 변주로 해석합니다. 이 불안은 제도와 문화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실패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두려움의 정서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그 결과 산업은 기술 인력을 잃고, 사회는 창의적 모험을 잃습니다. 의대 쏠림은 단지 교육 문제가 아니라 미래를 상상할 용기가 사라진 징후입니다.


『인재전쟁』 이를 두고 불안을 질서로 삼은 사회의 비극이라고 표현합니다. 경쟁은 늘 존재하지만, 방향을 잃은 경쟁은 결국 체념의 반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대 대신 의대를 택하는 학생들, 연구 대신 자격증을 택하는 청년들, 창업 대신 공무원을 택하는 인재들. 이 모든 선택의 배경에는 위험을 최소화하라는 사회적 명령이 깔려 있습니다.


『인재전쟁』은 이 문제를 단순히 교육의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기술 패권 전쟁터라는 개념으로 논의를 확장합니다. 핵심은 결국 사람. 곧 인재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런 인재를 길러낼 제도적·문화적 토대가 부족하다고 말입니다.


국가의 미래는 기술력보다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이 공대를 통해 인재의 기반을 키우는 동안, 한국은 불안을 통해 인재의 날개를 접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공계 위기는 결국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산업 등의 산업 정체로 이어집니다. 한국의 무역특화지수는 하락세를, 중국은 그 반대의 궤적을 그렸습니다. 이제 기술은 총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되었고, 인재는 그 전쟁의 병기입니다. 총칼 없는 전쟁터에서 한국이 점점 후방으로 밀려나는 이유는 단 하나. 불안이 창의성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인재전쟁』은 단순히 중국은 이렇고, 한국은 저렇다 식의 비교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더 이상 과학자를 꿈꾸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배경에 깔린 정서 구조를 파헤칩니다. 결국 사회가 불안을 통제하지 못하면, 인재는 체제의 도구로만 존재할 뿐 창의의 주체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물음은 곧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한국의 인재는 지금, 의대 입시 원서 앞에 서 있습니다. 반면 중국의 인재는 창업 실험실에서 실패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한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쪽이 더 멀리 보는가의 문제입니다.


과학자들이 존중받는 사회, 실패가 허용되는 교육, 불안이 아닌 호기심이 경쟁의 원동력이 되는 환경. 한국이 다시 서야 할 자리입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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止觀 : 멈춰서 바라보기 IPKU 4
마인드랩 편집부 지음 / (사)마인드랩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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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인문 철학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IPKU Magazine 4호 『지관 止觀: 멈춰서 바라보기』. 속도의 시대에 선 우리에게 진정한 변화는 어디서 오는지 16명의 필자들과 함께 풀어냅니다. 무의식적으로 쌓아올린 선택과 관계, 감정의 지층을 한 겹씩 벗겨내며 '진짜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사유의 보고와도 같습니다.


평온과 행복을 위한 삶의 기술로서의 지관止觀. 멈출 지(止)와 볼 관(觀). 불교의 고전적 수행법에서 빌려온 멈추고 바라본다는 개념을 현대인의 삶 속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펼쳐보입니다.


여유로운 관찰이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뻗어 나온 16개의 에세이는 속도 강박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순간,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마치 파도처럼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1부 생각 멈추기 편에서 필자들이 들려주는 것은 '자동 조종 상태의 깨달음'입니다.





양영순 필자의 「의식, 그리고 알아차림」은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주 진정한 의도 없이 반응하고 있는지를 진단합니다. 눈을 떴을 때부터 잠들 때까지 수없이 많은 순간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통과합니다. 신문을 읽다가도, 누군가와 대화하다가도, 그 모든 순간이 기계적 반응의 연속입니다.


관념의 힘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하현주 필자의「관념과 실재를 구분하는 힘」,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자기기만적인지를 보여주는 이준용 필자의 「'망상' in 버드맨」, 자연은 멈춤의 철학적 입문서라고 말하는 최은영 필자의 「자연에서 배우는 수행의 평등성」등 사유가 펼쳐집니다.


2부는 명상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직업 현장, 어둠 속, 신체 감각 영역으로 끌어내립니다. 앤드류 올렌츠의 「사무공간에서의 마음챙김」은 일터라는 가장 각박한 공간에서 명상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흩어진 주의력을 한 점으로 모으는 것, 이메일을 읽을 때도, 회의를 할 때도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적 명상의 형태입니다.


마음챙김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우동필 필자의 「마음챙김 혁명과 그 이면, 진정한 탐진치 뿌리 뽑기」, 편안함과 안정의 권태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 김윤화 필자의 「명상이 삶을 깨우는 '독'이 되려면」, 감각 박탈의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에 접근한 손수빈 필자의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은 명상은 산꼭대기 수도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 책상 앞에서도,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3부는 명상의 궁극의 현장으로 관계에 대해 보여줍니다. 혼자 눈을 감고 호흡하는 것만이 명상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는 것도 명상이라는 겁니다.


현대 관계의 가장 흔한 병폐인 과도한 질문에 대한 회의를 담은 배태랑 필자의 「우리 사이를 굳이 묻지 않아도」, 종교의 외형을 걷어내고 순수한 염원의 맛을 복원한 유희 필자의 「종교 없는 기도」, 영화 '해피엔드'를 통해 환상에 대한 분석을 펼치는 유슬기 필자의 「'해피엔드', '이대로 시간이 멈추지 않는 이유」, 종교 공동체의 리듬에서 삶의 거룩함을 발견한 정경일 필자의 「수도원에서 배우는 일상의 성화」까지 존재의 리듬에 대한 다양한 글을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 4부는 개인의 선택, 감정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근본적 재점토의 시간입니다. 편상범 필자의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합니다」는 일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박수빈 필자의 「삼킨 감정, 소리치는 몸, 이제는 들어야 할 때」는 신체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이상민 필자의 「무아와 기억」은 불교의 핵심 교리인 무아(無我)와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기억이라는 개념의 충돌을 다룹니다.


이세준 필자의 「그림 동화책에 빠진 어른의 자기 변명」은 어른이 아이의 것에 이끌리는 것을 나름 정당화합니다. 성인이 동화에 매몰될 때, 그것은 때로 현실도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내면의 어린 자아와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이 양가성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입니다.


『지관 止觀: 멈춰서 바라보기』는 가속의 시대에 멈춤을, 생산성의 시대에 사유를, 자아의 강화의 시대에 자아의 해체를 제안합니다. 현실도피가 아닙니다. 멈추어 바라보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그 속에서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멈춤이 약함이 아니라 가장 큰 힘이며, 관찰이 수동이 아니라 가장 능동적 참여이며, 현재의 순간에 충실한 것이 미래의 포기가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관 止觀: 멈춰서 바라보기』. 익숙함을 의심하고 마음을 새로이 읽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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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따위 넣어둬 - 365일 퇴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
장정희 지음 / 꿈의지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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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40년을 몸담아오면서 문학과 교직을 병행하셨던 장정희 선생님. 교권 침해라는 단어가 뉴스의 상투어가 된 시대에 오랜 세월 교단을 지켜온 한 교사의 존재는 그 자체로 놀라운 일입니다.


마치 무너져가는 성벽 앞에서 끝까지 분필을 들고 선 사람처럼 장정희 선생님은 교직의 품위를 현장에서 증명해 보인 셈입니다. 『존경 따위 넣어둬』는 교직을 마친 한 사람의 회고록 그 이상입니다. 교사로서 감내해온 감정노동 속에서 교단에 서야만 했던 이유들이 담백하고도 단단하게 담겨 있습니다.


한평생 교사로 살아온 교직 생활 40년. 교직을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형식으로 경험해 온 선생님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숨구멍을 찾아야 했음을 고백합니다. 나라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보여줍니다. 단지 교사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그 역할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존재로서의 자신의 삶을 성찰합니다.





365일 사표를 품고 다녔다는 고백은 유머 섞인 자조가 아닙니다. 교직 생활이라는 극한 감정노동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야 했던 생존 기록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교육 현장에서 마주한 고통과 책임감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교사로서의 무력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제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혼자서는 빛나지 않는다며 하나의 교사, 하나의 아이만으로 존재할 수 없는 함께의 자리로서 교실 공동체를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제자라는 표현 대신 도반이라는 호칭을 꺼냅니다. 가르치는 자와 피배움의 관계를 넘어서 함께 글을 쓰고 삶을 나누는 공감의 관계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존경 따위 넣어둬』에서는 지쳐가는 교사, 지쳐가는 아이, 지쳐가는 관계 속에서 지탱해 온 힘들이 무엇인지를 조명합니다. 따뜻하고도 현실적인 교실 풍경들로 채워진 이야기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놓이다가도, 마음의 내리막을 붙잡으려 애쓴 흔적이 느껴져 애절하기도 합니다.


문예반을 이끌며 상처 많고 사연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저자는 어느새 문제 학생들의 대모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드러나는 제도, 제도 밖 아이들의 관계, 교사의 위치가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교사도, 아이도, 함께 걸어가는 길 위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고, 다독이고, 한 걸음씩 내딛는 여정이 얼마나 값진 지 느끼게 됩니다.


작가의 글쓰기 철학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와닿습니다. 교사이자 작가인 그가 어떻게 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해석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글쓰기가 갖는 치유적, 공명적 힘을 말합니다.


글쓰기란 그저 기록이나 표현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이었습니다. 늘 교단을 떠나고 싶어 했지만 자신을 지킨 건 결국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글쓰기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글쓰기의 힘이 내면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과 아이들을 향한 것이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문학, 영화, 에세이 목록과 함께 배움과 나눔의 맥락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부모와 거리 두기, 가난의 대물림, 청년 노동자, 어린 장발장 등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교육은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사회의 문턱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존경 따위 넣어둬』는 제목 그대로 존경이라는 거창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응원과 연대라는 덤덤한 태도로 교사의 일상을 그려냅니다. 교직이라는 자리를 영광이나 희생으로만 형상화하지 않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야 하는 현실로서 직시합니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글쓰기라는 숨구멍을 스스로 설치하고, 아이들과 함께 쓰고 배우고 자라나려 했던 시간을 진솔하게 풀어냅니다.


존경이 아니라 존중을, 찬사가 아니라 연대를 구하는 절박한 외침으로 들립니다. 『존경 따위 넣어둬』는 교사만을 위한 메모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겪을 수 있는 상처와 희망, 연결과 단절을 공유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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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훈의 랫시티 - 완벽한 세계 유니버스25가 보여준 디스토피아
에드먼드 램스던 외 지음, 최지현 외 옮김 / 씨브레인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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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존 칼훈의 랫 시티』는 그저 과학 실험 보고서가 아닙니다. 미국의 행동학자 존 칼훈(John B. Calhoun)이 수행한 쥐 사회 실험 유니버스25(Universe 25)를 토대로 인류의 도시화와 사회적 붕괴, 나아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현대적 우화입니다.


저자 존 애덤스와 에드먼드 램스던은 과학사와 문화사를 넘나드는 폭넓은 시각으로 칼훈의 연구를 다시 읽으며 그 안에 숨은 인간 문명의 자화상을 드러냅니다.


존 칼훈은 실험쥐들에게 먹이, 물, 청결, 안전까지 완벽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히 주어진 세계에서 생명체는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한 연구입니다.


쥐들은 처음엔 질서정연했습니다. 각자의 둥지를 만들고 번식하며 사회적 질서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자 미묘한 균열이 시작됐습니다. 수컷은 보호 본능을 잃었고, 암컷은 공격적으로 변했습니다. 교미는 줄었고, 새끼는 방치됐습니다.


결국 쥐들은 서로를 해치거나 고립되었고, '아름다운 자들(Beautiful Ones)'만이 남았습니다. 이들은 상처가 없었습니다. 싸우지 않았고, 욕망도 없었습니다. 그저 먹고, 자고, 털을 다듬었습니다. 외형은 완벽했지만, 종은 서서히 멸망했습니다.


존 칼훈은 이 과정을 행동의 붕괴(behavioral sink)라 불렀습니다. 사회적 접촉의 구조가 망가질 때 일어나는 병리적 변화를 뜻합니다. 이 실험은 단순히 동물 실험의 결과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거울이었습니다.


완벽한 환경이 결국 생존 의지를 잠식해버린 겁니다. 욕망의 균형이 깨지며 사회를 파괴하는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라는 존 칼훈의 경고는 1960년대보다 오히려 지금, 출산율 0.7의 한국 사회에서 더 날카롭게 들립니다.


저자는 행동주의 심리학자 존 왓슨의 학문적 맥락에서 칼훈의 연구를 해석합니다. 왓슨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 선을 긋지 않는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인간의 심리도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만 해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존 칼훈의 쥐 실험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 됩니다.


존 칼훈은 쥐의 개체수를 줄이는 게 어렵다면, 반대로 늘릴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쥐를 더 많이 투입하자 전체 개체수는 오히려 급감했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쥐 사회 전체가 붕괴한 겁니다.


1950년대 미국은 급속히 도시화되었습니다. 전후의 번영과 함께 교외 주택단지가 늘어났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고립이 자라났습니다. 존 칼훈은 고층 건물, 공장, 교외 주택을 하나의 연속된 사회적 실험 상자로 봤습니다. 결국 도시의 번영은 곧 인간의 분리였습니다. 개인 공간의 확보는 관계의 붕괴였습니다.





썩어가는 식물과 고인 물이 질병을 퍼뜨리듯, 행동의 붕괴는 사회적 병리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밀도가 문제였습니다. 쥐들은 먹이가 충분했음에도 사회적 관계의 과열로 인해 붕괴했습니다.


공격성, 교미 의식 붕괴, 모성 방치, 동종 포식. 이 모든 것은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전기 자극이나 독성 물질이 아니라 단지 과밀한 사회적 접촉만이 실험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쥐들은 자멸했습니다.


인간 사회 역시 비슷한 궤적을 보입니다. SNS의 과잉 연결, 도시의 과밀 그리고 관계 피로.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있지만, 동시에 고립돼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의 문제입니다.


이른바 '아름다운 자들' 욕망이 사라진 세대는 우리 사회의 신인류일지도 모릅니다. 경쟁과 고통을 회피한 채, 자기 관리에만 몰두하는 세대. 이들은 상처가 없지만, 의미도 없습니다.


『존 칼훈의 랫 시티』에서는 존 칼훈의 연구가 도시계획과 건축, 정신의학에 미친 영향을 조명합니다. 연구자들은 동물원이나 교도소, 정신병원에서의 공간 설계가 인간의 불안을 줄일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존 칼훈은 사회적 온도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인간이 최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집단 규모는 8~16명, 이상적 크기는 12명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 구조를 무시합니다. 그 결과 개인은 자신의 사회적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과열되거나 냉각됩니다.


존 칼훈의 통찰은 행동학을 넘어섭니다.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니버스25는 도시 인프라가 아니라, 관계의 생태계가 어떻게 붕괴하는지를 보여준 실험이었습니다. 인간은 더 많은 자원을 요구하지만, 더 깊은 관계를 잃어버렸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처럼요.





가장 충격적인 점은 유니버스25의 개체 곡선과 대한민국의 인구 통계 곡선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급속한 성장, 완만한 정체, 그리고 추락하는 하강선. 존 칼훈의 실험에 따르면 C단계(정체기)에 들어서면 되돌릴 수 없다고 합니다. 사회적 붕괴는 행동학적으로 고착됩니다. 지금 한국은 어느 단계에 있을까요.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책 설계자들의 뇌를 다시 세팅하라고 말하듯 저출산의 원인은 심리적 냉각입니다. 관계가 피로하고, 미래가 불안한 사회에서 번식은 더 이상 본능이 아닙니다.


존 칼훈의 쥐 사회에서 '아름다운 자들'은 번식하지 않았습니다. 욕망보다 안정을, 관계보다 거리두기를 택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은 불완전한 관계 위에서 성장해왔습니다.


도시는 인간의 정신적 실험실입니다. 이 실험실에서 우리는 쥐처럼 행동합니다. 공간을 차지하고, 타인을 피하며, 의미 없는 반복 속에 스스로를 갉아먹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쥐와 다릅니다. 인간은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존 칼훈의 랫 시티』는 한 과학자의 전기이면서 동시에 현대 사회에 대한 경고장입니다. 존 칼훈이 실험의 마지막에서 남긴 새로운 제안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완벽한 물리적 환경을 갖춘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존 칼훈이 마지막으로 수행하려던 것은 과밀한 행성의 축소판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유니버스 실험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이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경제지표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칼훈의 쥐들이 겪었던 것과 동일한 운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존 칼훈이 놓친 답이 여기에 있을 수도, 우리가 찾아야 할 과제로 남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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