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止觀 : 멈춰서 바라보기 ㅣ IPKU 4
마인드랩 편집부 지음 / (사)마인드랩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인문 철학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IPKU Magazine 4호 『지관 止觀: 멈춰서 바라보기』. 속도의 시대에 선 우리에게 진정한 변화는 어디서 오는지 16명의 필자들과 함께 풀어냅니다. 무의식적으로 쌓아올린 선택과 관계, 감정의 지층을 한 겹씩 벗겨내며 '진짜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사유의 보고와도 같습니다.
평온과 행복을 위한 삶의 기술로서의 지관止觀. 멈출 지(止)와 볼 관(觀). 불교의 고전적 수행법에서 빌려온 멈추고 바라본다는 개념을 현대인의 삶 속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펼쳐보입니다.
여유로운 관찰이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뻗어 나온 16개의 에세이는 속도 강박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순간,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마치 파도처럼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1부 생각 멈추기 편에서 필자들이 들려주는 것은 '자동 조종 상태의 깨달음'입니다.

양영순 필자의 「의식, 그리고 알아차림」은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주 진정한 의도 없이 반응하고 있는지를 진단합니다. 눈을 떴을 때부터 잠들 때까지 수없이 많은 순간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통과합니다. 신문을 읽다가도, 누군가와 대화하다가도, 그 모든 순간이 기계적 반응의 연속입니다.
관념의 힘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하현주 필자의「관념과 실재를 구분하는 힘」,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자기기만적인지를 보여주는 이준용 필자의 「'망상' in 버드맨」, 자연은 멈춤의 철학적 입문서라고 말하는 최은영 필자의 「자연에서 배우는 수행의 평등성」등 사유가 펼쳐집니다.
2부는 명상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직업 현장, 어둠 속, 신체 감각 영역으로 끌어내립니다. 앤드류 올렌츠의 「사무공간에서의 마음챙김」은 일터라는 가장 각박한 공간에서 명상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흩어진 주의력을 한 점으로 모으는 것, 이메일을 읽을 때도, 회의를 할 때도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적 명상의 형태입니다.
마음챙김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우동필 필자의 「마음챙김 혁명과 그 이면, 진정한 탐진치 뿌리 뽑기」, 편안함과 안정의 권태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 김윤화 필자의 「명상이 삶을 깨우는 '독'이 되려면」, 감각 박탈의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에 접근한 손수빈 필자의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은 명상은 산꼭대기 수도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 책상 앞에서도,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3부는 명상의 궁극의 현장으로 관계에 대해 보여줍니다. 혼자 눈을 감고 호흡하는 것만이 명상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는 것도 명상이라는 겁니다.
현대 관계의 가장 흔한 병폐인 과도한 질문에 대한 회의를 담은 배태랑 필자의 「우리 사이를 굳이 묻지 않아도」, 종교의 외형을 걷어내고 순수한 염원의 맛을 복원한 유희 필자의 「종교 없는 기도」, 영화 '해피엔드'를 통해 환상에 대한 분석을 펼치는 유슬기 필자의 「'해피엔드', '이대로 시간이 멈추지 않는 이유」, 종교 공동체의 리듬에서 삶의 거룩함을 발견한 정경일 필자의 「수도원에서 배우는 일상의 성화」까지 존재의 리듬에 대한 다양한 글을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 4부는 개인의 선택, 감정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근본적 재점토의 시간입니다. 편상범 필자의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합니다」는 일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박수빈 필자의 「삼킨 감정, 소리치는 몸, 이제는 들어야 할 때」는 신체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이상민 필자의 「무아와 기억」은 불교의 핵심 교리인 무아(無我)와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기억이라는 개념의 충돌을 다룹니다.
이세준 필자의 「그림 동화책에 빠진 어른의 자기 변명」은 어른이 아이의 것에 이끌리는 것을 나름 정당화합니다. 성인이 동화에 매몰될 때, 그것은 때로 현실도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내면의 어린 자아와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이 양가성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입니다.
『지관 止觀: 멈춰서 바라보기』는 가속의 시대에 멈춤을, 생산성의 시대에 사유를, 자아의 강화의 시대에 자아의 해체를 제안합니다. 현실도피가 아닙니다. 멈추어 바라보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그 속에서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멈춤이 약함이 아니라 가장 큰 힘이며, 관찰이 수동이 아니라 가장 능동적 참여이며, 현재의 순간에 충실한 것이 미래의 포기가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관 止觀: 멈춰서 바라보기』. 익숙함을 의심하고 마음을 새로이 읽는 시간을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