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 따위 넣어둬 - 365일 퇴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
장정희 지음 / 꿈의지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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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40년을 몸담아오면서 문학과 교직을 병행하셨던 장정희 선생님. 교권 침해라는 단어가 뉴스의 상투어가 된 시대에 오랜 세월 교단을 지켜온 한 교사의 존재는 그 자체로 놀라운 일입니다.


마치 무너져가는 성벽 앞에서 끝까지 분필을 들고 선 사람처럼 장정희 선생님은 교직의 품위를 현장에서 증명해 보인 셈입니다. 『존경 따위 넣어둬』는 교직을 마친 한 사람의 회고록 그 이상입니다. 교사로서 감내해온 감정노동 속에서 교단에 서야만 했던 이유들이 담백하고도 단단하게 담겨 있습니다.


한평생 교사로 살아온 교직 생활 40년. 교직을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형식으로 경험해 온 선생님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숨구멍을 찾아야 했음을 고백합니다. 나라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보여줍니다. 단지 교사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그 역할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존재로서의 자신의 삶을 성찰합니다.





365일 사표를 품고 다녔다는 고백은 유머 섞인 자조가 아닙니다. 교직 생활이라는 극한 감정노동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야 했던 생존 기록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교육 현장에서 마주한 고통과 책임감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교사로서의 무력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제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혼자서는 빛나지 않는다며 하나의 교사, 하나의 아이만으로 존재할 수 없는 함께의 자리로서 교실 공동체를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제자라는 표현 대신 도반이라는 호칭을 꺼냅니다. 가르치는 자와 피배움의 관계를 넘어서 함께 글을 쓰고 삶을 나누는 공감의 관계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존경 따위 넣어둬』에서는 지쳐가는 교사, 지쳐가는 아이, 지쳐가는 관계 속에서 지탱해 온 힘들이 무엇인지를 조명합니다. 따뜻하고도 현실적인 교실 풍경들로 채워진 이야기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놓이다가도, 마음의 내리막을 붙잡으려 애쓴 흔적이 느껴져 애절하기도 합니다.


문예반을 이끌며 상처 많고 사연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저자는 어느새 문제 학생들의 대모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드러나는 제도, 제도 밖 아이들의 관계, 교사의 위치가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교사도, 아이도, 함께 걸어가는 길 위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고, 다독이고, 한 걸음씩 내딛는 여정이 얼마나 값진 지 느끼게 됩니다.


작가의 글쓰기 철학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와닿습니다. 교사이자 작가인 그가 어떻게 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해석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글쓰기가 갖는 치유적, 공명적 힘을 말합니다.


글쓰기란 그저 기록이나 표현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이었습니다. 늘 교단을 떠나고 싶어 했지만 자신을 지킨 건 결국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글쓰기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글쓰기의 힘이 내면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과 아이들을 향한 것이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문학, 영화, 에세이 목록과 함께 배움과 나눔의 맥락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부모와 거리 두기, 가난의 대물림, 청년 노동자, 어린 장발장 등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교육은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사회의 문턱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존경 따위 넣어둬』는 제목 그대로 존경이라는 거창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응원과 연대라는 덤덤한 태도로 교사의 일상을 그려냅니다. 교직이라는 자리를 영광이나 희생으로만 형상화하지 않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야 하는 현실로서 직시합니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글쓰기라는 숨구멍을 스스로 설치하고, 아이들과 함께 쓰고 배우고 자라나려 했던 시간을 진솔하게 풀어냅니다.


존경이 아니라 존중을, 찬사가 아니라 연대를 구하는 절박한 외침으로 들립니다. 『존경 따위 넣어둬』는 교사만을 위한 메모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겪을 수 있는 상처와 희망, 연결과 단절을 공유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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