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해방 사이
이다희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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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정한 표준에서 벗어난 적 없는 무색무취의 보통 여자로 살다 규격의 경계 너머로 기웃거리기 시작한 이다희 저자의 성장 에세이 <순종과 해방 사이>.


"나는 오늘도 조금 더 용감해진다." - 책 속에서


내 것이 아닌 삶을 살다 보니 결국 몸이 신호를 보내오더라고 합니다. 답답함에 숨이 막혔고, 숨을 쉬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형식으로 말이죠.


부치지 않는 편지글 속에는 원망, 분노, 자책, 자기 연민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다 기어코 엄마 앞에서 터집니다. 그런 자신을 묵묵히 안아주던 엄마의 손길. 이 세상에 나를 끌어안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한 줄기 빛이 되어줍니다.


그때 경험한 감정은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을 내디딜 수 있도록 용기가 되어줍니다. 순종에서 해방으로 향하는 여정. 그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처음으로 되돌아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방향을 잡아준 건 당시에 읽은 책이었습니다.


조남주의 『그녀 이름은』을 읽으며 고분고분한 여자의 역할을 하면 착한 사람이란 말은 듣겠지만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걸 확인하기도 합니다.  왜 내 결혼만 망했을까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읽은 브레네 브라운의 『수치심 권하는 사회』는 진흙탕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도록 도와줬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연대와 공감의 힘을 배우게 됩니다. 그 힘을 독자에게도 이어줍니다. 순종에서 해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며 나로 사는 법을 터득해가는 여정에 동참하도록 합니다.


가슴 답답한 불안함과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걸 어떻게 해소해나가는지 실천적 행동을 보여주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겪는 불안과 두려움은 책 속 문장이라는 약을 통해 조금씩 다스려나갑니다. 책에 적혀있는 이야기가 자신을 향하고 있을 때 이다희 작가는 얼른 손을 잡았습니다.


"수치심과 취약함을 감추느라 써온 에너지를 이제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쓸 수 있게 되었어." - p39





때로는 노력한 게 무용한 것처럼 끝나 버릴 것 같다는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 읽은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 쓰며 사는 삶』은 절망적인 날에도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 자체에 의미를 찾는 글쓰기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단정하고 선한 모습만 선별해서 보여주는 삶 대신, 아무런 보상이나 성과가 없어도 온 마음을 기울여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 시간입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거대한 현실도,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세상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 소명을 찾아가는 길,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스스로를 작게 만든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떠올랐어." - p269​


읽는 내내 여성 연대의 힘을 오롯이 받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아직은 더듬더듬 찾아가는 중이지만, 매일 조금씩 더 용감해지고 있는 중이라는 작가처럼 당신의 용감한 해방을 응원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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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벽 - 평화로운 일상을 가로막는 냉전의 유산
김려실 외 지음 / 호밀밭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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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7일은 정전 70주년입니다. 한국전쟁이 멈춘 지 무려 70년이 흘렀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줄어들고 있고, 역사로만 알고 있는 세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쟁 세대의 자녀로 태어나 반공을 외치던 냉전 시대에서 자란 세대라면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아이만 해도 한국전쟁은 그저 임진왜란과 같은 역사 속 기록일 뿐이거든요.


하지만 냉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냉전의 유산은 강력해졌고 신냉전이라는 용어에도 익숙해졌습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여 일상에 스며든 냉정의 유산들을 살펴본 <냉전의 벽>. 우리가 잊고 있었던 냉전의 산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시위나 전쟁은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냉전이지만 일상 깊숙이 스며든 냉전의 산물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무서운 건 이 냉전의 유산이 평화로운 일상을 가로막는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정부의 프레임에 갇혀 가치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만들어진 전쟁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다룬 김려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저도 이제서야 알게 된 진실이 많았습니다.


독재 정권의 정치 이벤트가 어떻게 한미동맹과 반공 사업과 연결되어 맥아더 신화를 낳았는지 짚어보는 글은 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승만으로부터 박정희에 걸친 맥아더 신화 만들기가 우리의 역사적 기억에 미친 영향은 무척 큽니다. 맥아더는 사후 한국에서 무당들의 신이 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핵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괴수 SF 영화에 담긴 의미를 재조명하는 이희원 저자의 글도 인상 깊었습니다. 일본의 고지라, 한국의 용가리 흥행에 드리워진 냉전의 서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김경숙 저자가 쓴 한국 전쟁으로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글도 의미 깊었습니다. 한국 전쟁 고아 구호의 두 얼굴, 혼혈 아동에 대한 냉담한 사회적 시선을 낱낱이 고발합니다. 최근에 읽은 그레이스 M. 조의 회고록 <전쟁 같은 맛>이 떠올라 가슴이 아릿해집니다.


류영욱 저자의 글에서는 놀이 문화에 스며든 냉전의 산물을, 양정은 저자의 글에서는 과거 반공 교육과 현재 통일 교육을 비판적으로 살펴봅니다. 그러고 보니 고무줄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 불러댔던 노래 가사가 지금 생각해 보면 뜨악스럽습니다. 무찌르자 공산당,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같은 진중가요 가사를 자연스럽게 불렀으니까요.


냉전의 잔재는 교육 분야에서도 끈덕지게 발견됩니다. 반공주의 교육계를 장악하고 있었던 시대에는 적, 괴수, 멸공, 승공, 북진 등의 용어가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과서의 통일 교육 역시 실상은 북진 통일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었습니다. 맹목적인 반공정신의 유산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 속 남의 땅이었던 용산 기지가 우리에게 온전히 되돌아오기까지 남은 숙제들을 짚어주는 백동현 저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외에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미군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수희 저자, 한국인의 식문화를 바꾼 전시 식량 스팸을 통해 냉전의 유산을 들려주는 이시성 저자까지 냉전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한국 전쟁을 기억하고자 해마다 기념식을 열지만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냉전의 벽>은 정전 이후 70년 동안 우리 정신의 벽처럼 세워진 냉전의 유산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가치관이 오늘날까지도 다방면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지만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시민들을 일깨우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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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잠들지 않는다 - 일상화된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줄리엣 카이엠 지음, 김효석.이승배.류종기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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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폭우와 폭염 등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를 실감하는 재난의 시대에 꼭 필요한 생존 매뉴얼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 위기관리, 재난 대응, 국토 안보 분야 전문가 줄리엣 카이엠은 실용적인 접근 방식으로 심각한 위기에 대처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오래된 집에 갇혀 있어야 했을 때 우연히 발견하게 된 비밀의 공간. 그곳에는 과거 1900년대 초 이 집에서 살았던 맥큐 가족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검색을 통해 가족의 스토리를 알게 되었을 때 긴 세월을 뛰어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딸 러티샤가 19세 나이로 사망했고 원인은 당시의 인플루엔자 대유행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을 감염시켰던 스페인 독감이라 불렀던 팬데믹 시대였던 겁니다. 결국 악마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과거와 현대가 연결되는 아이러니한 순간입니다.


재난과 위기는 일회성, 우연한 사건,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악마는 절대 잠들지 않습니다. 언제든 옵니다. 침수 사건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죽지 않아도 되었을 인명 피해가 나왔습니다. 내년엔 어떨까요.


재난 발생 시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등한시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세상을 재난 발생 전과 후로 나눴을 때 한 쪽에만 치중하는 셈입니다. 그러면서 '뜻밖에', '기대하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같은 말로 변명합니다.


현실은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난은 도래한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재난 피해를 최소화할 가능성이 더 높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부족한 겁니다.


악마가 도래했을 때 대응 역량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를 이제는 고민해야 합니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재난 관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다. 재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모든 재난에는 역사가 있다고 합니다.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는 자연재해, 참사, 사이버 공격, 팬데믹 등 반복되는 혼란에 대비하는 데 필요한 단계를 제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 재난이 남긴 것을 평가하고 오늘의 교훈을 탐구합니다.


2014년 심각한 눈 폭풍을 맞은 미 남동부 애틀랜타는 일기예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음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눈보라 대응 프로토콜에 실패해 열여덟 시간 동안이나 도로에 갇혀 사람들이 오도 가도 못한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중국이 세계보건기구를 불러들이며 우려의 분위기를 풍겼던 코로나19 역시 미국 정부는 준비하기를 꺼려 했습니다. 반면 저자는 2020년 3월 초 이미 셧다운 조치를 주장했습니다. 결과 최소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미국 정부는 결국 75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게 합니다. 





재난은 위기가 적절히 해결되지 않고 끔찍한 결과가 발생할 때 옵니다. 대형 산불은 작은 불길에서 시작되었지만 통제 불능 수준으로 커진 결과입니다. 미숙하게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재난은 재앙이 됩니다. 허리케인 발생 직후 안전하다고 믿었던 지하실에 있다가 폭우와 홍수가 덮쳐 익사한 상황처럼 말입니다. 모두 악마가 도착한 이후의 세계입니다.


2018년 새크라멘토의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마을 주민 85명이 사망한 일이 있습니다. 편도 1차선 도로에서 자기 차에 탄 채 사망했습니다.


화재 후 그곳을 방문한 저자는 놀라운 일을 목격합니다. 다음 화재와 그 이후의 모든 화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사회는 불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화재 발생 시 거주자가 안전하게 내부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등 산불 결과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준비한 겁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목소리 높이는 지점은 재난에 대한 준비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겁니다. 지난번의 재난을 처리하기에 대응이 충분했다고 해서 다음 재난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짚어줍니다. 우리는 완전히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사건에 적응해야 한다고 합니다.


2021년 텍사스에 닥친 얼음 폭풍은 이미 충분한 대비 계획이 있었지만, 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얼음 폭풍으로 인한 대규모 정전 사태는 계획에 있던 비상사태가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믿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안전한가? 아니다. 더 안전할 수 있을까? 확실히 가능하다. 우리는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 책 속에서


재난은 사회에서 이미 잘못된 모든 것을 드러내는 거라고 합니다. "비행기가 추락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침착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슬로건은 맞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재난에 대한 준비를 개선해 더 성공적으로 이겨내는 데 있습니다. 더불어 재난 전후에 대한 초점 외에도 지금, 여기에 대해서 더 충실히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를 짚어준 책입니다.


피할 수 없는 악마를 대비하도록 우리 모두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 일상적 표준이 된 재난 시대에서 우리가 승리할 시간을 벌어주는 실용적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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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 - 나도 몰랐던 내면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언어의 심리학
가바사와 시온 지음, 이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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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만 터득해도 상처의 90%가 치유된다." - 책 속에서


저마다 크고 작은 고민들이 있을 겁니다. 괴로움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그 고민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하는 사람은 애초에 심각한 고민은 없다고 생각하며 산다고 합니다.


얼른 해결하는 사람은 자기 성장을 하는 반면 고민이 있는데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아가지 못한 채 정체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여기에 외부 스트레스까지 겹치면 정신 건강까지 위협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중적으로 활동하는 정신과 의사 가바사와 시온은 <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에서 30여 년의 임상 경험과 약 9년 동안 고민 상담에 답한 4000개의 유튜브 영상 내용을 집대성했습니다. 이 책으로 내 고민을 이해하는 과정과 고민 해소의 구체적인 방법을 배워보세요.


저자는 "고민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해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애초에 해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고민이 된 것이기에 원인 제거는 불가능한 미션인 겁니다.


<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는 고민 해결이 아니라 고민 해소를 목표로 합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고민을 들여다보는 게 먼저라고 합니다.


고민이 있는 사람의 공통점은 고민의 해소 포인트를 잘못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회사 생활이 고통스러운 사람이라면 상사를 바꾸거나 자신이 퇴사하는 길밖에 없다는 이분법적인 선택에 갇히진 않았는지 짚어줍니다.





과거와 타인은 바꿀 수 없지만 상황은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예시를 통해 고민을 분석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관점 전환, 언어화, 행동화라는 3가지 카드를 쥐여줍니다.


고민을 재설정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고민이 해소된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키가 작아서 여자 친구가 안 생겨요, ADHD가 의심되어 걱정입니다, 오늘 중으로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지만 도저히 마감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등 저마다의 고민을 살짝만 바꿔도 고민 해소의 포인트가 생긴다는 걸 보여줍니다.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서 시야가 좁아지는 심리적 시야협착 상태가 되고, 극단적인 사고에 빠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최근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묻지마 살인 사건처럼 '왜 나만 힘들지?', '왜 하필이면 나만 이렇게 불행한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만사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선택지는 극단적인 두 가지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저자의 지침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시야가 좁아지면 하지 않는 게 바로 '검색'이라고 합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나 전문가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관점을 빌리게 되어 관점에 변화를 줄 수 있는데 말입니다. "혼자서 노력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저자의 일침이 와닿습니다.


불안, 긴장으로 뇌 피로도가 심해 더 이생 생각을 진전시킬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말로 하기만 해도 무의식이 의식으로 바뀌는 언어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생각이 말로 되는 것, 생각을 말로 하는 것이 언어화입니다. 쓰고 말하면 뇌가 가벼워진다고 합니다. 머리로만 고민하지 말고 고민을 노트에 손으로 직접 써보라고 합니다. 


중요한 건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쌓는 경우가 있거든요. 역효과를 일으키는 험담, 부정적인 경험의 반복, 자기 비하가 터져 나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관점의 전환과 언어화를 통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행동하면 고민은 사라진다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바꾸고 싶다고 해서 잘 바뀌지 않는 것이 생각과 습관이고, 실천하는데 인색하니까요. 저자는 행동화를 위해 해야 할 것과 그만둘 것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내 감정과 생각을 언어화한다는 것. 그까짓 거 뭐 어려운 일이겠어... 쉽게 생각했다가 생각 외로 그 능력을 갖추지 않은 채 고민의 굴레에 허덕였다는 걸 깨달았던 시간입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 <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언어화의 마력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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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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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 2021년 아시아 태평양 미국인 도서상 수상작 <전쟁 같은 맛>. 기지촌 생활을 했던 이민 1세대에게 씌워진 사회적 죽음을 고찰한 의미 있는 책입니다. 소설 같은 제목이지만 어머니 군자와 딸 그레이스를 중심으로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이 펼쳐지는 실화 에세이입니다.​


2008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상실의 슬픔을 글쓰기로 달래보려 시작한 여정. 그저 한 사람의 개인적 죽음을 넘어 꼬리표를 단 채 사회적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의 삶을 애도하기 위한 한미 사회에 대한 정의 회복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2022년 대법원 원고 승소 판결난 의미 있는 사안이 있습니다. 기지촌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한 겁니다. 8년의 소송 끝에 대법원은 미군 기지촌 운영에 국가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소송이 있던 8년 동안 세상을 떠난 이들만 24명이었다고 합니다.


타락한 여자, 정신병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어머니 군자의 삶에 딸 그레이스도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합니다.​


상선 선원이었던 백인 아버지는 기지촌에서 만난 군자와 제2의 인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백인 노동계층 중심 공동체로 엄마와 아들, 딸이 이민을 갑니다. 혼혈아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엄마는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지촌 생활을 하던 엄마의 젊은 시절을 그레이스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인 작은 마을에서 매력적이고 유능하고 생산적으로 활동했던 엄마의 모습만 떠오릅니다. 하지만 엄마와의 대화에서 드문드문 과거의 아픔이 파편처럼 튀어나왔다는 걸 기억해 냅니다.​


"엄마의 삶은 추방의 연속이었다." - 책 속에서


말년에 식욕이 없어진 엄마를 위해 오빠와 올케가 분유를 챙겨주자 엄마는 "전쟁 같은 맛이야."라며 진절머리를 칩니다. 한국전쟁 시절 기대했던 쌀, 보리가 아닌 분유만 끝없이 쏟아진 원조 때문입니다. 처음엔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얼마나 큰 고통이 담긴 말인지 이제서야 이해됩니다. 전쟁 생존자들의 고통은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때 어머니 군자는 남매들을 잃었습니다. 딸 그레이스는 학교 숙제로 가계도를 작성하다가 엄마의 외가에 대해 그제야 알게 됩니다. 사라진 외사촌들의 행방도 알 수 없습니다. 당시 국가적 입양 정책으로 서구 국가로 끊임없이 아이들을 공급했으니까요. 아버지의 고향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혼혈아인 그레이스도 그렇게 한국에서 추방당하듯 어디론가 입양되었을지 모릅니다.


빵 부스러기처럼 엄마가 몇 가지 정보를 흘리면 그레이스는 이것을 모아 이야기를 구성해냅니다. 그렇게 엄마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인구 5천 명의 작은 마을에서 그레이스네 가족은 마을의 스캔들처럼 여겨졌습니다. 인종차별적 정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레이스가 고등학생일 때는 "너희 엄마 전쟁 신부였어?"라는 조롱 섞인 말을 듣기도 합니다.​


남편의 고향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치열하게 적응했던 엄마. 그 세월 동안 정신은 더 피폐해졌고 결국 조현병이 발병합니다. 어째서 엄마는 세상의 문을 결국 닫아버렸을까요. 그 활동적이고 활기찼던 엄마를 경계 너머로 밀어낸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딸 그레이스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대답하지 않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스스로 전시 민간인들의 경험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겪었을지도 모를 일을 알아내기 위해, 아이들을 돌보며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했던 엄마를 침묵하며 살아가게 만든 사회에 대해서 말입니다.


젊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라곤 공장 아니면 미군 기지였다고 합니다. 당국은 기지촌 성산업을 외화벌이의 일환으로 적극 홍보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선 양공주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당신 삶이 쓸모없다는 메시지에 둘러싸이게 됩니다.


어린 시절엔 엄마의 활기 위에 드리워진 어둠을 미쳐 보지 못했지만,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며 엄마의 삶을 뒤늦게나마 이해하는 그레이스입니다. 엄마에게 김치는 생존의 상징과도 같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전쟁 통에 김치 항아리 덕분에 몇 주를 버텼다는 엄마는 낯선 나라에서도 김치에 대한 갈망을 드러냅니다. 김치는 무엇이든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생존의 음식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딸 그레이스에게도 알게 모르게 엄마의 감정적 응어리가 전해집니다. 이민 1세대의 고통이 그다음 세대에게로 이어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을 살아 숨 쉬게 함으로써 자신의 유산을 찾고 싶었다는 그레이스. 12년 동안 애도하며 쓴 글은 <전쟁 같은 맛>으로 탄생했습니다. 내밀한 가족사이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사회 문제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정전 70주년인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전쟁 생존자와 전후 세대의 삶을 점점 잊고 있는 공동체 차원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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