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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온다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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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초월한 단 하나의 사랑을 그려낸 《셰이프 오브 워터 (The Shape od Water)》. 제90회 아카데미 13개 부문 노미네이트되며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은 영화입니다.
괴생명체와의 사랑을 그린 소재라 해서 헉~했는데,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 있는 스토리였어요. 원작소설 출간으로 다시 한번 감동을 만끽해봅니다.
영화에서는 건너뛰어버렸지만 원작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데다가, 익히 알고 있는 음성 언어의 틀을 넘어선 기호와 상징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 숨어 있기에 영화의 감동과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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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소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초반은 리처드 스트릭랜드의 자아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보여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아가미의 신이라 불리는 데우스 브랑퀴아를 찾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데 원작소설에서는 이 부분이 꽤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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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내내 악역의 진수를 보여준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이 가혹하고 냉정함을 넘어 왜 그토록 미치광이 같은 눈빛을 내비치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1년 반 동안 아마존 밀림에서 괴생명체를 찾아 헤매고 포획하는 과정에서 원주민 학살, 굶주림과 질병으로 인한 짐승 같은 생활 등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정은 처참했습니다.
언어장애를 지닌 연구소 청소부 엘라이자. 현실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감 없는 인간상의 전형을 그려냈습니다. 그녀는 꿈속에서만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낍니다.
현실에서는 그녀가 아니라 세상이 그녀를 지배했다.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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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소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엘라이자의 어린 시절과 보육원을 나온 후 극장 위 아파트에 살게 된 과정을 보여줍니다. 낡은 아파트에 살고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에게 날렵하고 예쁜 하이힐은 희망을 상징합니다. 독립적이고 용감한 여성이 신을만한 하이힐을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연구소 실험실 청소를 담당하게 되면서 맞닥뜨린 괴생명체. 탱크 안에서 처음 본 황금빛 동전 같은 눈을 본 후 괴생명체와 엘라이자는 서로에게 이끌립니다. 미지의 두려움과 두근대는 설렘이 섞인 엘라이자의 마음은 달걀을 주는 장면에서 극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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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트릭랜드에게 괴생명체는 열등한 괴물일 뿐입니다. 권력을 존중과 동일시하는 그에게는 괴생명체를 부르는 아가미의 신이라는 호칭조차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통제를 원하고 권위적인 스트릭랜드는 괴생명체에게 손가락을 잃은 후 점점 썩어가는 손가락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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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영화에서 깊이 다루지 않은 스트릭랜드의 아내 레이니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더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한 강박적인 의무감으로 살고 있는 레이니. 빳빳한 앞치마를 두르고 TV 앞에서 다림질하는 전형적인 그 시대 여성상의 표본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는 레이니의 여정도 소설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엘라이자의 친구인 화가 자일스와 동료 젤다의 이야기는 성소수자와 흑인 여성의 삶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학자이자 스파이 호프스테틀러는 이민자 출신 과학자로서 냉전시대의 현실을 안고 있는 자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인물들은 모두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은 이들입니다.
인간이 괴물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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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생명체에게 닥친 위험을 함께 벗어나는 과정에서 엘라이자의 선택은 인간의 도덕관을 내세울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아름답습니다.
엘라이자가 알려준 수화 알파벳으로 대화를 하고 빛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우스 브랑퀴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다는 것, 자존감을 지키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데우스 브랑퀴아만이 들어줬습니다. 지구상에 사는 가장 놀라운 존재가 자신을 순수하게 바라봐 주는 것에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기쁨을 얻는 엘라이자. 엘라이자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형태도 모양도 다양한 사랑을 보여준 <셰이프 오브 워터>.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애써 만들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하는 방식 또한 이토록 신선하네요. 감독이자 작가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영화에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섬세한 감정을 원작소설에서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