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짐승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3
신원섭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평점 :
인생의 낙오자들과 그들의 욕망을 들춰 이용해먹는 자.
글쓰는 엔지니어 신원섭 작가의 미스터리소설 <짐승>의 등장인물들은 마음 깊숙이 뒤틀린 욕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여자친구 미셸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오동구. 사랑하는 이의 과오를 덮기 위해 인생을 겁니다. 친구에게 거액을 제안해 시체 처리하러 미셸이 있다는 성환 연립으로 향합니다. 친구는 직장인이지만 빠듯한 생활 때문에 거액이 생긴다는 것에 혹해 돕게 됩니다. 하지만 성환 연립 지하방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성환 연립 반지하에 세 들어 살고 있는 편의점 알바생 장근덕. 젊은 여자가 무언가에 찔려 살해당한 채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방에서 깨어납니다. 전날 마신 술로 필름이 끊겨 기억도 안 나고, 범인으로 몰리기 딱 좋은 상황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무작정 시체를 치워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아무 계획도, 준비도 없이 시신을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생각 외로 힘든 톱질을 하다 몸이 고달프니 이제는 죄스런 마음보다 짜증이 날 지경에 이릅니다.
경악스러울만치 덜떨어진 행동을 일삼는 그들의 행태에 넋 놓는 사이, 도미애와 도미옥 자매의 묵직한 이야기가 소설의 또 다른 축을 이룹니다.
친부모의 사망으로 입양된 자매. 모범생에 우등생인 언니에게 열등감과 박탈감을 느끼며 겉도는 동생. 결국 언니가 모아둔 돈을 훔쳐 집을 나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흐른 후 언니는 결혼도 잘해 사모님 소리를 듣지만 여전히 동생은 밑바닥을 허우적거립니다.
동생을 찾으려고 전직 경찰인 동창에게 의뢰하는 언니. 소아성애자라는 것이 탄로나 불명예로 옷을 벗고 이혼당한 후 폐인 생활을 하던 전직 경찰은 돈을 벌 수 있는 이 일에 뛰어듭니다.
미셸의 전화를 받고 시체 처리하러 간 오동구와 친구. 시신 해체하는 장근덕. 동생의 행방을 찾는 전직 경찰. 그들이 모인 곳은 성환 연립. 오동구와 친구는 장근덕이 같은 편인 줄 알고 훼손된 시신을 함께 처리하기로 하는데.
미셸은 도대체 누구를 죽인 건지, 시신의 정체는 누구인지, 동생은 어디에 있는지. 제각각의 사건이 얽히고설켜 실마리가 보일 즈음 드러나는 진실은 과연.
"망치가 되지 못하면 모루가 되는 게 인생이야." - 책 속에서
인간으로 대해준 유일한 여자에게 복종하듯 홀린 만년 왕따 오동구, 낙오자 오동구 덕분에 안도감을 가지며 사는 친구, 어차피 망한 인생이라며 의욕 없이 사는 장근덕, 허울만 좋고 속은 썩은 전직 경찰.
희망이 없는 비루한 삶을 이어가며 권태와 타성에 길들여진 네 명의 남자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양 저마다의 포부를 가진 그들은 불나방처럼 사건에 엮입니다.
밑바닥을 탈출한 이를 향한 시기, 질투, 분노가 뒤섞인 그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운의 총량은 다르다며, 어떤 이는 아무리 평생 써도 마르지 않는 세상을 탓합니다. 욕심이 생기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소리는 이미 들리지도 않습니다.
서스펜스 추리소설 <짐승>. 지긋지긋한 삶을 떨쳐낼 한방을 기대한 그들의 작태는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뒤틀린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보여줍니다. 통쾌한 복수극이라든지 권선징악 구조의 쾌감을 주는 결말은 아니어서 여운을 남기는 끝맛이랄까요.
"인간이란, 결정적인 순간에 어쩜 저렇게 바로 같은 선택을 할까?" -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