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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모자 지음 / 첫눈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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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삶의 조각들 <숨>.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소설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필명 모자 작가의 소설 같은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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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 이름 없이 등장하는 이들.
마을버스 기사, 이별을 겪은 남자, 오피스텔 경비원, 주부 등 작가의 기억 한편에 자리 잡은 그들의 이야기는 평범해 보이는 나와 내 이웃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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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제각각의 빛깔을 띤 이야기.
담담하게 써 내려간 문장이 어떨 땐 버석거리기도, 어떨 땐 울컥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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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줄어들고 누군가의 엄마로 기억되는 일이 잦아졌다. 아직 그녀의 삶을 다 산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엄마가 되었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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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데 이유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라는 말처럼 에세이 <숨>에는 과거의 인물들이 특별한 순서 없이 등장합니다. 문득 떠오르는 계기가 있을 때 자연스레 수면으로 드러난 그와 그녀. 주목받지 않는 삶을 사는 이들. 묻어뒀었지만 잊지는 않았던 그들의,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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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읽는 내내 평범하다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의 인간과 특이한 인간의 차이는 뭘까 싶기도 하고요. 모호한 경계 안에 있는 이들과 바깥에 선 이들을 구별하는 기준은 언제나 자신이니까요.
"겉으로 보기에만 평범하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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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투명해진 기억은 많을 테지만 어떤 기억은 제 마음대로 찾아와 막을 수도 없습니다. 가슴 저릿하게 만들어 놓고 기억 너머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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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기억나는 이름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하게 되는 삶. 그저 잊어버린 척하고 사는 삶. 살다 보면 기억해야 할 이름이 더 많아지는 삶.
편의점, 술집, 노래방... 끊임없이 알바 생활을 하면서 마주친 인연들의 이야기는 팍팍한 삶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라는 대명사 속에 슬며시 숨은 저자의 글도 시련을 달래며 살아온 삶을 느낄 수 있었어요.
너무나도 보잘것없이 평범해서 우울해지는 삶. 희망을 꿈꾸는 것조차 기력 낼 힘이 빠진 삶. 저마다의 이야기에 그만의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힘내자는 다짐도 없습니다. 표지만큼이나 감정을 절제한 에세이 <숨>. 하지만 가난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도 한 조각의 순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어찌 오늘 하루를 또 살고 있는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