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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드 카본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88
리처드 K. 모건 지음, 유소영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8월
평점 :
2002년 원작 출간, 2003년 그해 최고의 SF소설에 수여하는 필립 K. 딕 상을 수상했고, 국내에는 2008년 번역 출간된 SF소설 <얼터드 카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진 덕분에 원작소설 읽게 되었습니다. 의식을 저장하고 육체를 교환하는 것이 가능해진 지구를 배경으로 한 <얼터드 카본>. 그동안 이 소설을 몰라본 게 미안할 정도로 읽는 내내 전율이 쫙쫙~!
고향에서 180광년 이상 떨어진 지구에 6주 대여 계약으로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입고 의식이 깬 코바치 다카시. 정예 디지털 군인인 특파부대 출신의 코바치는 지구의 한 권력자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고용되었습니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강제 계약으로 말이죠.
인간이 태어나면 뇌에 끼워 넣는 칩, 스택. 모든 경험 정보를 저장한 한 인간의 영혼과도 같습니다. 스택만 잘 유지하면 새로운 몸에 디지털 상태로 전송할 수 있어 몇 번이고 부활할 수 있습니다. 얼터드 카본(Altered Carbon)은 주요 성분인 탄소로 구성된 인체의 변형된 상태를 뜻하며 기억장치인 스택을 은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신체 대신 스택을 교도소에 감금하는 방식의 저장형으로 형 집행이 이뤄지는 시대입니다. 코바치 역시 한 세기가량 수감되어 있었다가 의식이 깨어난 겁니다. 가장 무서운 일은 영구적 사망입니다. 스택이 파괴되는 겁니다.
코바치를 불러들인 자는 로렌스 뱅크로포트. 자살한 것처럼 처리되었지만 사실은 살해당한 거라며 코바치에게 사건을 반강제적으로 의뢰합니다. 자살이든 살인이든 어쨌든 죽음을 겪었던 사람이 새로운 육체를 입고 코바치에게 수사를 맡깁니다.
지구의 부를 거머쥔 뱅크로포트. 그는 이미 357살로 원격 저장된 스택과 그 자신의 클론도 여러 개씩 갖춘 자입니다. 보증된 영생을 가진 뱅크로프트가 굳이 자살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몸에 붙어 있는 스택을 없애도 죽일 수가 없으니, 원격 저장에 대해 모르는 사람의 짓일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 정도 오래 살면 사람이 변해. 자신을 너무 대단하다 생각하게 된다고. 결국에는 자기가 신이라고 믿게 되지." - 책 속에서
뱅크로프트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오르테가. 인공지능과 같은 뱅크로프트 부류를 노골적으로 싫어합니다. 이 사건을 맡은 코바치를 경계하면서도 은근 뒤치다꺼리를 하게 되는데. 코바치가 지구에서 입은 몸이 바로 오르테가의 동료 경찰이자 연인이었던 라이커의 몸이었던 겁니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이 둘의 관계도 볼만합니다.
사이코패스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성향을 가진 인간들만 모은 특파부대 출신 코바치. 정신 강화 능력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에 영향받는 인간 특유의 모습도 보여주는 코바치. 오히려 뱅크로프트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기도 해요.
저장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프로 청부 살인범에게 협박 받게 되자 뱅크로프트 사건을 덮으려는 자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코바치 입장에선 그가 원해서 이 일에 끼어든 게 아니지만, 이 사건에 점점 자발적으로 끌리게 됩니다.
하드코어 사이버펑크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이 결합한 SF소설 <얼터드 카본>. 잔혹한 폭력 장면과 성 묘사가 곳곳에 있어 R등급 원작소설답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도 청불로 제작되었네요. 맨손 격투 장면은 로마 시대 검투사들의 결투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은 건 있군요 ;;
"침대 표면은 살짝 물결치더니 내 몸무게와 크기에 맞게 변형되어 물처럼 몸을 떠받쳐 주었다." 같은 신기술 장면이 스며든 세상은 놀랍습니다. 우산 없이도 정전기로 비를 막는 장치, 송출 반경에 들어가면 개인 취향저격 영상이 광고로 뜨는 거리의 방송 광고...
그저 눈요깃감만 담은 소설은 아닙니다. 기술 시대에 신이 된 인간의 이면을 담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데우스>에서 경고한 세상을 만난 기분입니다.
진짜 인간의 육체가 기계보다 싼 시대. 인간 생명의 가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신체가 훼손되더라도 돈이 없어 몸을 입지 못하고 스택만 저장해두기도 합니다. 뱅크로프트 같은 부류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된 시대입니다. 바이러스 공격으로 스택이 복구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던 과거의 동료 사건처럼 스택이 중요해진 만큼 스택을 악용하는 사건사고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마련이었습니다.
뱅크로프트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며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 관계. 코바치를 뱅크로프트에게 소개한 레일린 가와하라와의 악연은 후반으로 갈수록 깊어집니다.
양심에 관련된 이유로 가톨릭교도가 죽으면 그대로 저장된 채 다시 불러내지 못하는 상황. 죽어버린 중요 증인이 하필 가톨릭교도라면 사건의 실마리를 놓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바꾸고자 하는 결의안과 뱅크로프트 사건이 연관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코바치. 2권으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사건 해결에 다가섭니다.
가상현실로 고문하는 불편한 장면도 있고, 애잔하게 울컥 감동 주는 장면도 있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 SF소설 <얼터드 카본>. 다른 몸에 의식만 입력하면 영생을 누리는 세상. 하지만 신이 될 수 있는 인간은 우리 모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진보의 대가는 없는 자들을 더 처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드레날린 솟구치는 엔터테인먼트 요소는 시청각으로도 표현 멋지게 했을듯하지만, 소설 특유의 묵직한 서사만큼은 원작소설을 읽어야 제대로 맛볼 수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