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설산 시리즈 <눈보라 체이스>에 이어 읽은 <연애의 행방>.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연애소설이라니 뜬금없다 싶었어요. 뭔가 맹숭맹숭 심심할 것만 같았죠.

 

설렘 가득한 유쾌발랄 <연애의 행방>을 읽고 나면 그런 소리 쏙 들어갑니다. 전적으로 미스터리물 마니아라면 미스터리는 1도 나오지 않는 <연애의 행방>에 호불호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읽는 내내 빵빵 터졌어요.

 

 

 

어느새 환갑을 맞이한 히가시노 게이고. 스노보드 타는 모습이 프로필 사진으로 나오다 보니 여전히 젊은 작가로만 생각됩니다. 하긴. <연애의 행방>을 읽다 보면 삼십 대 작가로 생각될 만큼 무척 젊은 소설입니다. 작가 특유의 간결한 문체가 이번 소설에서 빛을 발휘하네요.

 

 

 

썸 타는 남녀 간의 데이트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 배경은 사토자와 온천스키장입니다. <눈보라 체이스>의 배경이 된 스키장이기도 합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남녀 여덟 명이 등장하는 <연애의 행방>. 도쿄에서 직장생활하는 도시인들입니다. 겨울 스포츠 시즌을 맞이해 스노보드를 즐기는 가운데 싹트는 러브러브. 겔렌데 마법이라 해서 스키장에서 만나면 이성이 실제보다 몇 십 퍼센트쯤 더 멋있어 보이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뻔하게 밀고 당기는 겔렌데 러브 스토리는 아닐까 걱정했는데, 리얼 반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배꼽 잡을 준비해야 합니다.

 

 

 

스노보드 마니아 작가답게 스노보드 용어도 제법 등장합니다. <눈보라 체이스>와 <연애의 행방>을 읽고 나니 '스노보드를 책으로 배웠어요'라는 말이 슬쩍 나올 법도 하네요.

 

 

 

남녀 8인. 그들은 단순히 직장 동료이기도, 비밀연애 중인 관계도 있습니다. 서로가 처음부터 모두를 다 아는 사이는 아닙니다. 약혼녀가 있음에도 바람피운 남자 덕분에 얽히고설켜 나중엔 서로를 다 알게 되긴 하지만요.

 

좋은 관계로 발전할만한 타이밍을 눈앞에 둔 한 남녀. 그들이 탄 곤돌라에 합승하게 된 여자 4인조 중 한 명이 하필 그의 약혼녀인 겁니다. 현장에서 제대로 걸리는 건가요.

 

고글에 페이스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잘 못 알아보는 복장이라 어찌어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싶었건만. 바람피우는 상대 여자와 그의 약혼녀가 고교 동창인 건 또 뭡니까. 약혼자 사진을 보여주려는 장면에서 절묘하게 멈춘 작가의 끊어치기 신공. 결혼 준비가 진행되는 중에 약혼녀를 속이고 독신생활의 마지막 불장난을 지르려 한 남자의 운명은 과연? 이 곤돌라 안에서 약혼녀와 일행이 나눈 대화가 배꼽 잡으니 기대하며 읽어보세요.

 

 

 

한편 도쿄의 호텔에서 일하는 동료 일행 다섯 명의 스토리도 흥미진진합니다. 플레이보이와 비밀연애하느라 애타는 커플, 비밀연애하다 곧 결혼을 앞둔 커플, 그리고 만년 실연남까지. 저마다의 사연이 단편소설처럼 이어집니다.

 

그중 만년 실연남 '히다'와 소설 첫 장면에서 불륜남의 파트너였던 '모모미'의 사랑찾기는 꽤나 장기전입니다. 로맨틱하고, 드라마틱하고, 대반전의 서프라이즈를 충족할만한 프러포즈를 계획했다가 눈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선수를 빼앗긴 만년 실연남. 멘털만큼은 정말 강하네요, 이 남자. 매번 회복은 잽싸게 합니다. 그러다 스키장에서 하는 단체 소개팅인 겔팅에 참석했다 만난 모모미에게 고백했다가 이번에도 거절당한 신세.

 

인성 좋은 히다는 연애 숙맥입니다. 모모미도 히다가 싫은 건 아니지만, 분위기 파악에 서투른 히다에게 두근거리는 마음이 부족해 계속 망설이게 됩니다. 소설 속 다른 이들은 모두 사랑의 결실을 맺었지만 히다와 모모미 둘만큼은 오픈 결말입니다. 독자 좋을 대로 상상해도 그 어느 쪽도 다 괜찮을 만큼 독특한 결말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에 따라 어울리는 색이 다르듯, 나에게 꼭 맞는 색깔을 찾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남녀 여덟 명의 주파수 맞추기 <연애의 행방>. 연애하는 방식, 사랑을 찾는 과정이 다이나믹하면서도 현실적입니다. 누구는 책임이 뒤따르는 결혼을 피하고 싶어 하고, 누구는 연인을 위해 한발 양보하며 맞춰주는 사랑을 하기도 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보여주는 인연 찾기 과정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몽글몽글한 감정이 샘솟습니다.

 

앞서 읽은 <눈보라 체이스>는 조금은 어정쩡한 장르여서 개인적으로는 아예 미스터리가 훅 빠져버린 본격 연애소설 <연애의 행방> 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누구에게나 플러스 요소와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덧셈과 뺄셈을 거쳐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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