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장지 지음, 차혜정 옮김 / 살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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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가 되면 돈을 망태기로 쓸어 담을 수 있다고 들은 터였다."  - 책 속에서

 

 

 

시골 출신 '나' 팡취안은 임신 중인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도시에서 기반을 잡으려 애쓰는 중입니다. 지금은 백수 신세이지만 친척인 스님 아훙 아저씨의 제안으로 절 행사에 참석해 일당을 받는 일을 해봅니다. 아훙 아저씨는 승려 노릇하면 돈을 잘 벌 수 있다며 계속 이 일을 하길 원하지만, 팡취안은 가짜 스님 노릇을 마땅찮게 여깁니다. 돈벌이는 안 되더라도 마음이 떳떳한 일을 하고자 합니다.

 

 

 

우유 배달을 시작으로 신문 배달, 빈병 수집, 불법 삼륜차 영업을 하며 쓰리잡은 기본입니다. 새로운 일을 하나씩 잡을 때마다 그 일을 따내기 위해 쓴 돈도 만만찮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래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니 음식 뇌물을 줘가면서 일감을 따냅니다. 일 따내는 실력을 보니 머리도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데다가 행동력은 5G 급입니다. 실행력 하나는 잽싸네요.

 

아들을 기대했다가 둘째마저도 딸이어서 아들 욕심에 셋째까지 낳습니다. 팡취안은 슬슬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지만 큰 딸이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려면 찬조금을 내야 하는 실정이라 (시골 출신의 팡취안처럼 도시 호적이 없는 경우) 돈이 더 필요한 상태입니다.

 

 

 

이것저것 일은 많이 하는데도 돈은 모아지질 않습니다. 삥 뜯기거나 범칙금으로 나가기도 하는 재수 없는 날이 이어지고, 아내의 수술비까지... 겨우 벌어들이는 돈은 고스란히 나가버립니다.

 

 

 

다시 절 행사에 참석한 팡취안은 불가의 주문 중 가장 긴 주문인 「능엄주」를 낭송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정을 되찾게 됩니다. 셋째가 아들이기를 바랄 때 아들을 낳는다면 남은 생을 불교에 귀의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팡취안. 게다가 결혼할 때 아내에게 평생 일하지 않게 해준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자괴감에 빠졌던 그는 가족을 위해 결국 가짜 승려 노릇을 하려 듭니다. 마침 작은 암자를 물려받게 되는 기막힌 행운이 더해져 순식간에 작은 절의 주지가 됩니다.

 

막상 절을 운영하려니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다단계 판매업자 상술을 구사하는 영업직 역할을 하는 이들도 있어야 합니다. 불교 행사를 열어야 사찰이 먹고산다는 말이 있듯 팡취안은 절을 인수 한 후 바로 큰 행사를 진행하기에 이릅니다.

 

몸은 고단했지만 땀 흘려 돈을 벌었을 때와 달리 이제는 너무 쉽게 돈이 들어와 오히려 떳떳하지 못한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합니다. 가족을 두고 혼자 외딴곳에 와 승려 노릇하니 마음도 심란하고 말이죠. 집으로 돌아가 봤지만 아이들과도 서먹한 상태다 보니 상실감에 사로잡힙니다.

 

 

 

소처럼 일했지만 벌리지 않는 돈. 단물 쪽쪽 빨아먹는 현실을 버텨내기 힘든 그로서는 가족을 위해 그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어정쩡한 가짜 스님 노릇 대신 출가해 정식 스님이 되면 절을 확장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말이죠.

 

가족을 위해 선택한 일이 결국 가족을 버려야 하는 일이 되었으니. 그런데 팡취안으로서는 오히려 그의 재능을 찾아 출가를 한 셈이니 잘 된 일일까요. 아내와 아이들 입장에선 경제적으로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속세의 가족을 위해 속세와 인연을 끊지만 결국 속세의 돈을 벌어들이는 팡취안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긴 힘들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상황에 닥치면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은 선택일지 선뜻 결정하기 힘들군요. 가족밖에 모르던 중국의 흙수저 팡취안의 선택은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오랜만에 중국 소설 읽었는데 은근 재미있어요. 지금까지 읽은 중국 현대 소설 대부분이 꽤 명쾌한 문장에 질질 끌지 않는 편이라 흡인력 아주 좋습니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를 뛰어넘는 최고의 가족 소설이라는 평을 받은 장지 작가의 <출가>. 올해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갑자기 나의 삶이 게임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단계를 통과하면 즉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게임의 난이도도 올라가며 끝이 없이 계속된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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