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 의도된 선택인가, 어리석은 판단인가! 선택이 만들어낸 어리석음의 역사
제임스 F. 웰스 지음, 박수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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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핏!

너무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 헛된 목표에 대한 고집스러운 집착, 어리석음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음이라는 주제로 역사의 새로운 해석을 한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해봅니다.

 

역사 속 어리석음의 사례를 나열한 수준 정도로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정신이 번쩍. 탐욕, 부패, 권력을 지향하는 한 축으로서 인간의 어리석음은 우리가 흔히 악인이라 평가하는 자들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나폴레옹 등도 이 저자 앞에서는 무참히 깨집니다.

 

 

 

그리스인들의 어리석음은 도시국가와 철학적 사고의 상호작용이라고 합니다. 장점으로 알고 있던 것이 단점으로 작용한 겁니다. 최고의 영예인 동시에 치명적 한계를 가진 거죠. 도시국가는 사고의 정체성 발달을 막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고, 우리가 숭배하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기하학적 사고가 오히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2000년 동안 지속하게 할 정도로 사고를 정지시킨 원인 제공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근원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결국 도덕적 편향으로 이어져 아테네 철학자들이 서양의 어리석음에 기여한 공로는 무척 크다고 평가합니다.

 

이쯤 되니 오올~! 신선한 느낌이 마구 들더라고요. 서양의 피상적인 유치함과 동양의 무기력과 정체를 마구 지적질하질 않나, 어두운 이면을 거침없이 꺼내들며 아주 통쾌할 정도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줍니다.

 

물리적 성공이 지적인 실패에 잠식당한 로마의 어리석음. 특히 호기심을 악덕으로 생각했던 로마 교황청의 신학자들에 의해 분석적 사고는 현실로부터 완전히 유리됩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것은 로마인들의 정신과 지식에 무관심한 태도, 힘의 원천이 너무 다양성화되면 정체성을 와해시킨다는 것을 간과한데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어리석음이 로마와 닮았다고 합니다. 의식적인 계획과 비전 없이 세계를 지배하는 지위에 오른 상황이 유사합니다. 하지만 둘 다 도덕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중세는 기독교의 어리석음으로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통치행위로서 교회가 기능했습니다. 로마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는 낡은 고정관념으로 허상의 제국을 유지하는 것에만 치우쳤습니다. 중세 어리석음의 극치는 정의의 이름으로 약탈, 살육을 감행한 십자군전쟁이 있지요.

 

행동가의 시대 르네상스는 서양의 인식 세계가 중세적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결과물이지만, 역설적으로 탐험, 발명, 치국, 의술, 예술, 전쟁 등에서도 어리석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교회의 후원을 받는 인문주의자들에게서 종교개혁을 바라보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때문에 이제 모두가 잘못된 정보는 얻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구시대적 사상을 보전, 전파하는 힘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은 중세적 삶의 공식적 신앙으로부터 서양의 지성을 해방시킨 계기가 되었지만 자본주의, 민족주의 같은 세속적 종교를 낳습니다. 불관용, 미신, 편협성, 잔인성을 띠게 됩니다.

 

지식의 신학적 기반이 가라앉는 대신 자연현상의 과학적 설명이 떠오른 이성의 시대. 하지만 마녀사냥 등 비이성적으로 전락한 시기입니다. 모두가 거짓말을 선택하고 개선할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성의 시대라기보다는 속박의 시대였죠. 갈릴레오조차 교회 관계자들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계몽주의에도 어리석음이 담겨 있습니다. 세속적 합리주의를 인간사에 적용하며 시작한 계몽주의는 혁명으로 막을 내립니다. 세계를 개선했지만 방종과 탐욕 같은 해악이 등장합니다. 기술적 진보는 가난한 자들의 운명 개선 대신 착취에 활용됩니다. 상식이 정치 논리에 희생되는 부조리의 전형적인 사례로 영국 인지세법, 보스턴 차 사건 등 식민정책의 오류를 듭니다. 한편 나폴레옹의 활약은 권력과 어리석음 사이의 긍정적 상관관계를 보여준 사례이지만, 권력이 커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짐을 짚어줍니다.

 

산업화 시대엔 오히려 시계를 거꾸로 돌려 군주제가 복원되기도 합니다. 기술 발달은 행정, 상업과 관련한 어리석음의 범위를 확대합니다. 산업시대의 모순은 기술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장벽을 세운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효율적이되 윤리적이는 않았습니다.

 

20세기는 인적 자원, 자연환경에 대한 노골적인 착취와 침해 시대입니다. 기술=진보 등식으로 인간은 오만해집니다.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합니다. 당면한 상황과 문제에 부적절한 스키마를 고집하는 것을 뜻하는 어리석음. 학습에 의해 변질된 학습으로 인간 본성에 자기 기만적 측면이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언어적 프레임을 통해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희생양과 변명거리를 찾아내지요.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에서도 이뤄집니다. 전쟁으로 드러난 집단사고의 허점은 진주만의 재앙을 부릅니다. 미국의 외교적, 정치적 어리석음은 쿠바 침공 결정,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거쳐 9.11 참사로 이어집니다.  만사가 잘 굴러간다는 착각은 기술적 오만을 불러 챌린저호, 체르노빌 사건을 야기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을 우주에까지 확대할 것이라는 점이다." - 책 속에서.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는 미신, 종교, 기술, 과학은 우리의 자기파괴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의도된 선택인가, 어리석은 판단인가를 묻는 저자. 우리의 타고난 믿음과 뿌리 깊은 편견이 우리만의 특별한 문화적 맹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에 아직 우리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에덴보다 아마겟돈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으니 서로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말라고 합니다. 선택이 만들어낸 어리석음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보편적 인권, 국제법, 자연환경에 대한 존경심이 구원의 토대가 될 거라며 마무리 짓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대중적 인문교양서이지만 초반은 전문가의 논문 도입부를 읽는 것처럼 낯선 용어가 난무하며 딱딱한 느낌이라 지레 어렵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본문만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도 한몫하고요. 그래도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1장을 넘어서면 역사 속 사례로 흥미진진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어리석음에 집중했고 동양의 어리석음에 관해서는 초반에만 잠깐 언급되는데 동양의 어리석음의 역사도 무척 궁금합니다.

 

인간 보편의 어리석음을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종교 개혁, 이성의 시대, 계몽주의 시대, 산업화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기기만이 심해지면 어리석고 부적응 행동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자기반성 없이는 자기기만의 희생양이 될 뿐이라는 것을 알려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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