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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남녀
나혁진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7월
평점 :
드라마 '추리의 여왕' 최강희, 권상우 케미 못지않은 환상 콤비를 만날 수 있는 탐정 추리 소설 <낙원남녀>.
안전과 위험의 경계선이 갈리는 육체적으로 약한 여자들의 현실, 공들여 가꾼 가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층간 소음, 주차 시비, 험담 등의 문제를 점점 분노 폭발이란 형태로 나타나는 현실입니다. <낙원남녀>는 평범한 이웃에게 숨은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 소설입니다.
다짜고짜 피해자를 찾아와 덥석 함께 범인을 잡자고 매달리는 미궁 사건 전문 탐정 강마로.
학원 강사 유지혜의 시선으로 진행하는 <낙원남녀>는 묻지마 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나' 유지혜는 아파트 후문에서 칼을 맞는 사건을 겪었습니다. 당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데다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현재는 학원 강사로 일하는 중입니다.
그날 이후 아파트 후문 쪽으로는 발걸음도 하지 않고 정문으로만 다니는 '나'. 여전히 어두운 밤길은 두렵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흠칫흠칫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듯 심각한 배경 상황을 깔고 가지만 로코 추리극답게 간간이 튀어나오는 코미디에 빵빵 터지기도 합니다. 밤길에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맞닥뜨리며 변태로 오해하는 상황에서 온통 검은색 일색인 옷차림으로 '나'를 쫓아온 탐정 강마로까지 합세. 앞 변태, 뒤 스토커 상황이 연출되며 심란한 상황에서도 웃게 만드는 글발!
그렇게 어이없는 첫 만남 이후 멈춰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로 '나'를 설득하는 탐정 강마로에게 넘어가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살인 미수 사건의 피해자로서 그와 함께 사건을 파헤치게 됩니다.
게다가 묻지마 사건 이전에 같은 낙원 아파트 여성이 교살된 사건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피해자 모두 낙원 아파트 봉사단체 회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살인 사건과 미수에 그친 '나'의 사건을 묶어 해결해나가게 됩니다.
서울대 박사과정 로봇 공학자라 소개한 탐정 강마로. 이미 한 차례 살인 사건을 해결한 전적도 있어 '나'는 그를 믿어봅니다.우리나라에 사립 탐정 이야기는 뭔가 아직 어색하지만, 신직업융성안에 사립탐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정부 공인 직업군이 아닐 뿐입니다. 강마로는 대한민국 사립탐정 1호가 되기 위해 수련 중이라 밝힙니다.
어쨌든 아직은 수사권이 없는 탐정이기에 사건 담당 형사 몰래 정보를 수집하느라 애씁니다. '나'의 취조 수준이 출중해 담당 형사가 역으로 신문당하는 장면도 빵 터지네요. 형사는 민간인이 괜히 나서지 말라고 조언하지만 강마로와 '나'에게 먹혀들 리가 없습니다.
원래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막장인 법입니다. - 책 속에서
낙원아파트 봉사단체 회원은 회장까지 모두 여덟 명. 피해자 '나'와 살해된 최순자 씨를 제외한 여섯 명을 용의자로 두고 그들의 동기와 알리바이를 조사합니다. 사소하지만 두 피해자의 연결고리를 파악해나가려 합니다. 최순자 씨는 구제불능의 음험한 소문꾼이었던터라 모든 이들이 일정 부분 살의를 품을 만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용의자들을 하나둘 만나면서 드러나는 비밀. 다들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낙원아파트 봉사단체 회원 중에는 드라마 작가도 있는데, 강마로의 추리에 심취하면서도 우리나라 현실에서 추리극은 뻔하고 작위적인 것일 뿐이라며 현실과 상상의 한계를 그어버립니다. 사실 이 부분은 외국 추리극에 비해 한국 추리극이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라 묘하게 납득되더라고요.
강마로와 함께 용의자들을 면담하면서 나온 결론은 누군가는 너무 알리바이가 확실한 상태고, 누군가는 의심 덩어리 상태라는 것. 누구는 범죄 동기가 있는 것 같고, 누구는 그렇지 않고. 최순자 교살 사건과 '나'의 사건을 한데 엮어 살피다 보니 막히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덜떨어진 촌극 같은 상황만 연출하던 강마로. 오히려 '나'보다 추리 실력이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찌 보면 날카롭다가도 너무 순진해서 대책 없는 낙관론자 같아 보이고. 약에 쓰려고 해도 쓸 데가 없는 탐정 오타쿠일 뿐인지. 그러던 중 우연히 밝혀진 강마로의 비밀은 '나'와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버리는데.
공군 대령으로 예편한 낙원아파트 봉사단체 회장, 드라마 작가, 음대 교수, 30대 부부, 가수 지망생인 용의자들. 범인은 누구? 왜? 어떻게?를 하나하나 밝혀내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영화 <범죄의 여왕> 이미지가 오버랩되기도 했어요.
<낙원남녀>는 소설 속 용의자 중 한 사람인 드라마 작가의 말처럼 작위적이기보다는 어떤 계기로 사건을 해결하는지 연결고리가 매끄럽게 다뤄져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독자에게 들려줄 때 생각보다 긴 시간을 소모해 살짝 지루할 뻔했어요. 그 부분 빼고는 결말까지 로코 추리극의 면모를 보여줘 즐겁게 읽어냈습니다.
작가님 다른 책은 뭐가 있을까 살펴보니 편집자 출신 나혁진 작가는 영화화 진행중인 <브라더> 원작소설 작가로군요. 추리소설 전문 작가로서의 행보 눈여겨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