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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캐빈 10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이 배에는 살인자가 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단숨에 스릴러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 데뷔작 <인 어 다크, 다크 우드>는 깊은 숲 속 외딴 집에서의 밀실 살인 사건이었다면, 신작 소설 <우먼 인 캐빈 10>은 호화로운 크루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깊은 숲 속과 망망대해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밀실 살인 사건은 그 배경만으로도 긴장감 10퍼센트는 먹고 들어가네요.
크루즈라고 해서 타이타닉 같은 엄청 큰 배는 아니고 큰 요트 수준의 아담하지만 호화로운 크루즈 오로라호. 5성급 호텔의 축소판 같은 오로라호는 노르웨이 피오르 해안을 도는 닷새간의 일정으로 영국에서 출발합니다.
첫 항해 승선이라는 행운을 잡은 여행잡지 기자 로라 블랙록. 그저 그런 밑바닥 기자 인생을 사는 '로'는 이 기회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소설 첫 장면은 중간 즈음에 등장하는 내용을 앞으로 빼놓으면서 오프닝부터 바짝 긴장 모드로 돌입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크루즈 여행 직전 하얀 라텍스 장갑을 낀 의문의 남자에게서 강도를 당하게 되는데요. 저는 소설 끝날 때까지 이 의문의 강도 사건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더군요. 분명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강도 사건 이후 그렇지 않아도 폐소공포증에 불안증이 있던 '로'는 잠시 잠들었다가도 자꾸 비명에 깨는 환청에 시달리는 불면의 밤을 이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라호 승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첫 파티를 위해 몸단장하다가 마스카라를 빌리기 위해 옆방 10호실의 문을 두드린 '로'. 다행히 10호실엔 검은 머리의 젊은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가 마스카라를 빌려주지만...
그날 밤, 10호실 쪽에서 배 밖으로 뭔가 던져진 소리와 함께 피 묻은 난간을 발견한 '로'. 하지만 10호실은 아예 처음부터 빈 선실이었다고 하는데. 게다가 '로'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 여자를 본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 표정, 몸짓이 생생한데 말입니다.
'로'는 분명 범죄 현장을 목격했지만, 약과 알코올로 취한 상태에서 잠들었던 상황 때문에 믿을만한 목격자가 아닌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10호실에 여자가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인 마스카라도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쯤 되니 정말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기자, 사진작가, 투자자들이 탄 오로라호의 첫 번째 항해는 절대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는 상황이죠. 도대체 사라진 검은 머리 여자는 누구인지, 살인 사건을 감추려는 자는 누구인지, 살인 사건이 아니라면 그 여자는 어디에 있는 건지 짐작하기 힘듭니다.
'로'가 이 사건에 집착하는 것은 항해 전 당한 강도의 기억이 크게 작용합니다. "인간의 생명력이 얼마나 하찮은지,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했던 벽이 사실은 얼마나 얇은지를 깨닫는 기분"을 몸소 겪었기 때문이죠. 끔찍한 일을 예감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을 깨달았을 때의 기분이 어떤지 알기에 10호실 여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겁니다.
밀실 추리 소설 특징은 한결같죠. 외부에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 <인 어 다크, 다크 우드>와 마찬가지로 <우먼 인 캐빈 10>에서도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라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도움 청할 길이 없습니다.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그녀 앞에 점점 많은 장애물이 놓입니다.
10호실 여자를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로'의 운명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흥미진진한 편집도 한몫 작용했어요. 닷새간의 항해 스토리 중간중간 항해 일정 이후의 뉴스 기사를 독자에게 보여주며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그도 아니면 오픈 엔딩일지 짐작할 수 없게끔 계속 혼란을 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정통 추리 기법이 들어간 소설은 완벽하게 제 취향은 아니고 가볍게 읽어보는 수준인데요. 전형적인 트릭 소재인 밀실 살인 사건의 경우 영화 <큐브>만큼 잔혹 스타일이면 좋아하는데... 그래서 루스 웨어 작가의 소설은 사실 제 입장에선 살~짝 싱거운 느낌은 있답니다.
하지만 정통 미스터리 추리 기법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정통 추리 기법과 현대 감각이 조화된 내용과 문체에 반할 거예요. 센 거 없이 좀 약해서 아쉽다는 저조차도 중간에 손 놓기 힘들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으니까요. 아, 저와 반대로 너무 잔인한 하드한 스타일 싫어한다면 딱 이 책이 맞을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밀실 추리 소설로 굳힐지, 또 다른 트릭 추리 소설이 나올지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내년 여름에도 꼭 새 소설이 나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