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화요란
오카베 에츠 지음, 최나연 옮김 / ㈜소미미디어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 막장드라마도 우리 것과 비슷할까 궁금했는데, 일드 '아름다운 함정' 원작소설 <잔화요란>으로 생생하게 느꼈어요. 드라마에서는 부부, 불륜관계에 치중했다면 원작소설은 한차원 깊게 파고들어 여자어른들의 심리에 집중해 무척 공감하면서, 때로는 버럭대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0대 소녀부터 결혼을 앞두고 퇴사한 여자, 결혼 6년차 커리어우먼, 결혼 24년차 전업주부, 독신녀까지 여러 상황에 놓인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캐릭터들의 특징이 아주 명확해요. 




주인공 격인 인물은 회사 상사와 불륜 관계였다가 그의 아내가 주선한 맞선남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리카입니다.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불륜의 당사자가 되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열렬한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이 계속 이어질거라 생각했지만, 한 순간에 허무하게 끝나는 걸 겪으며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어른 친구에 대한 정의가 와 닿습니다. 이제는 담을 쌓아 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보여도 결코 들어가지 않는 사이. 상대방이 담장 안에 감추고 있는 이상 틈새로 살짝 보이는 일들도 못 본 척하는 일. 어른의 우정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불륜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면서 세상에 남자의 애정 표현만큼 믿을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배우며,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안심과 안정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마흔 넘은 독신녀 마키. 평생 연애하기 위해 평생 일한다는 신조를 가진 그녀는 가벼운 연애만 하며 삽니다. 이해하기 힘든, 아니 제 기준에선 용서하기 힘든 일을 벌이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리카와 결혼할 남자에게까지 마수를 뻗치고, 거기에 또 홀라당 넘어가는 남자를 보면서 욕을 아주 한 바가지 했네요. 하지만 결국 리카의 결혼이 무사히 진행되는 걸 보면서 그동안 쌓아 온 자신감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사고방식이 변하게 되는데 그 과정도 꽤 흥미로웠어요. 결국 자신은 단 한번도 제대로 사람을 사랑해보지도, 사랑받지도 못했다는 것에 혼란스러워합니다. 소설 끝에서 반전을 한 번 안겨주는 인물이라 정말 골때리는 인물이었어요.


결혼 6년차 커리어우먼 이즈미는 남편과 관계가 멀어지면서 결혼 유지와 이혼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아름다운이란 건강한 몸과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 믿으며 외모에 시간과 돈을 크게 들이지 않는 성격인 그녀.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흔한 보통의 인물을 대표하는 것 같아요. 서로에게 무관심한 부부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그녀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두고 냉랭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 이후 행복과 결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리카의 불륜남 아내인 미츠코는 부유한 가정의 딸로 자라면서 기품을 잃지 않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에 목숨 건 여자입니다. 남편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걸 눈치채도 모르는 척 완벽한 아내역을 연기하며 잉꼬부부로 불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그녀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딸 미우인데요. 이 가정이 누리는 행복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 딸인만큼 이 아이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리카, 마키, 이즈미 세 여자가 함께 다니는 서예 교실의 선생님인 50대 독신녀 류코는 이 소설의 키맨 역할을 하는데요. 소설 제목 <잔화요란>이라는 글자의 의미와 남녀 관계에 대해 조언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일품입니다. 아직 다 지지 않고 흐드러지게 피는 꽃을 뜻하는 '잔화요란'. 미련과 불만 때문에 지지 못하는 것이 아닌, 시들기 직전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처럼 빛을 내며 살아내는 용기를 알려줍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어봤냐고 묻는 그녀. 우리는 의심의 갑옷을 입은 채로 남녀관계를 쌓아가는 건 아닌지 묻습니다.


사랑과 결혼, 행복의 정체에 혼란스러워하는 여자들의 성장기를 다룬 <잔화요란>. 상대의 모든 것을 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바치려 했던 애정과는 이제 다른 종류의 애정을 알게 된 리카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저 심심풀이용 막장드라마를 넘어 어른여자로 인생을 살아내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