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의 사노 요코 작가 에세이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책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사노 요코 작가의 첫 에세이집인데다가 40대라는 나이에서 볼 수 있는 나름 젊은 감성이 담긴 글이었어요. 2010년 암으로 사망 이후 국내 출간된 에세이가 많아서인지 그동안은 사노 요코 할머니가 바라본 인생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그녀의 유년 시절 에피소드를 많이 만날 수 있답니다.

 

감성적이다가도 철학적 사유가 느껴지고 그러다 가끔은 방정맞은 경험까지.

이번 책에서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지긋한 나이대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여유는 덜하지만, 한편 불안과 고민이 뒤섞인 40대의 이미지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노 요코 작가는 4차원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낯선 거리에 내리는 눈은> 편에서는 외국 생활할 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던 한 가지가 남자의 뒷목이었다고 합니다. 볼 때마다 움찔했다니.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도 재미있어요. 처음으로 선명하게 '행복'을 자각한 때는 일곱 살의 어느 날 떡을 배 터지게 먹었을 때였다고 하면서 음식이 행복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한편 친구의 실연을 함께 아파하면서 "미친 듯이 날뛰는 식욕이 슬픔의 깊이"가 되는 위로의 음식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꽃은 아름다운 걸까요> 편에서는 흔히 말하는 꽃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들려줍니다.

창포를 보다가 무서워했는데, 요염한 창포가 모여있을수록 꽃밭이 고요해지더라는 그 느낌이 섬뜩했다고 해요. 하나의 존재가 수없이 모여 있을 때 정적도 깊어진다며 오싹하게 받아들인 그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고, 부족한 점을 덮지 않으며 돌직구 화법으로 유명한 사노 요코의 입담이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에세이집의 원제는 목차 중 하나인 <내 고양이들아, 용서해줘>였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제목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가 이 에세이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랑 더 잘 맞는 제목이었어요.

사노 요코 작가의 대표작 <100만 번 산 고양이> 그림책 때문에 고양이를 무척 사랑하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어렸을 땐 정말 싫어했었다고 합니다. 키울 생각도 전혀 안 했다가 아들이 너무 좋아해서 키우기 시작한 거더라고요. 게다가 그녀가 어렸을 때 오빠와 함께 벌였던 장난도 있었고, 못생긴 고양이는 무시하고... 고양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겠더군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책에서 고백하는 어린 시절부터의 에피소드는 어른이 된 사노 요코를 만든 바탕이 된 것들입니다. 왜 개방적인 여자가 되었는지, 왜 말이 많아졌는지. 자각 없이 허물어버리기도 했던 유년시절의 경험들은 타고난 기질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녀를 변화시켰습니다. 남들은 성장이니 뭐니 할 텐데 그녀는 이번에도 반항적인 뉘앙스를 풍기더군요.

 

 

 

어쩌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어서 하고 있을 뿐이라며 인생의 테마 같은 건 없었다고 하는 사노 요코. 그러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고민해봅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일, 여자로서의 인생 등 현재의 나를 만든 것들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조금은 독특한 사고방식과 화법이 매력적인 사노 요코 작가의 까칠한 끼가 가장 강하게 나타난 에세이집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묵직하면서도 무겁지는 않아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쏙 든 에세이집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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