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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인문학 - 미술과 문학으로 만나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에세이 ㅣ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시리즈
정수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11월
평점 :

중학교부터 본격 실시하는 자유학기제. 진로탐색 외 다양한 프로그램 활동을 하는 자율과정인데 취지대로라면 탐색이라는 것은 곧 '나'를 알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인문학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는 열두 살. 이제 2년만 지나면 열네 살인데 이 책을 보면서 단 2년이란 시간의 갭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꼈어요.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의 레벨 차이가 엄청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한편으론 그 무서운 중2병을 앓는다는 그 시기를 떠올리면 또 수긍되고요.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 세계도 무시무시한 속도라는 걸 실감합니다.
불안과 불만 덩어리로 가득한 아이들에게 그래서 인문학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중2병이라는 굴레만 씌웠지 그 누가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했는지.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인문학>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저자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책과 그림에서 받은 위로와 대답을 공유합니다.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선생님이라는 위치를 잘 살린 책이에요. 관계, 소통, 불안, 소비, 저항, 생태. 여섯 가지 주제를 담은 책과 그림을 함께 보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이겨내는 단단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부모, 옆자리 짝...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음에 관계의 힘듦이 생긴다고 합니다. 획일적인 교육, 성과중심 사회에서 학교와 사회가 원하는 삶에 맞추다 보면 나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남과 비슷하게 맞추려고만 하다 보니 나를 들여다볼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성우의 시 <아직은 연두>와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로 가능성과 열정을 발견하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줄 알게 된다고 하죠. 그 과정의 첫 번째가 바로 나를 찾는 일입니다. 자유학기제를 제대로 활용한 아이들이 얻는 것 역시 참된 '나'일 겁니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 소통. 현재를 부정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는 심리는 과연 속물일까요. 저자는 김승옥의 <무진기행> 책과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그림으로 지금 이 사회의 경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습니다. 경쟁 사회에서 욕구 앞에 당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고 함께 살아가려는 시도는 경쟁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소통은 어떤 모습인지. 내 손안의 SNS는 '남'이 아닌 '나'와 같은 무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우리끼리의 소통일 뿐이라고 합니다. 부끄러운 내면과 마주하는 것. 소통의 출발점으로 제시합니다. 내 삶에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소통의 방법을 고민해보라고 합니다.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삽니다. 자신의 내면과 마주해야만 풀리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죠. 얼마만큼 불안과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의 문제니까요.
소비에 관한 주제는 어떻게 풀어낼까 기대 많았는데 저도 많은 생각거리를 안게 되었어요. 이 시대를 살 자격은 자본의 유무라는 것. 얼마만큼의 자본을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가에 따라 사람대우가 달라지는 시대입니다. 자본의 소유와 소비를 권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간당 얼마라는 가치로만 환산되는 대부분의 '나'는 자존감까지 바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답답하고 묵직한 주제이지만 자본의 유무가 생사까지 판가름 낸 용산 참사를 통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침묵을 강요하는 세상.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침묵하게 된 우리들. 진실을 마주하기 힘들어 되려 외면하고 마는 심리를 언급한 <저항>편은 특히 요즘 우리나라 모습에 비춰 생각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제주 4.3 항쟁, 5.18 민주화 운동의 사례로 두려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나와는 상관없고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역사의 저편으로 넘겨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생태 문제도 짚어줍니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 똑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자연의 일부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이죠. 자연을 이용하기만 하는 우리에게 경고하는 메시지를 새겨 들어야 할 때입니다.
밝고 가벼운 내용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책과 그림들.
지금 나는 왜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책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내 삶에 의문을 느낄 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논술 잡기식 인문 교육이 아니라 한창 고민 많고 불안한 시기의 청소년에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중요성을 알려줘야 합니다. 자기계발이 아닌 자아찾기로서의 인문학을요.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인문학>은 자아찾기의 첫 단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