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넥스트 도어
알렉스 마우드 지음, 이한이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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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어져도 사람들은 - 아무도- 몇 달이고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 책 속에서

 

이웃집 살인마라는 소재는 소외된 현대인들의 단상을 잘 보여주는 소재로 흔히 등장하죠.
서스펜스 소설 <킬러 넥스트 도어 The Killer Next Door> 역시 내 이웃집에 살인마가 살고 있지만 이웃 사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저자 알렉스 마우드는 저널리스트 겸 소설가인데 필명이라고 하네요. 첫 번째 책 <사악한 소녀들>로 2013 에드거상 수상했다니 믿고 볼만한 작가로 등극! <킬러 넥스트 도어>는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보다는 서스펜스의 서늘함과 무심한듯한 문체가 오히려 인상적이었어요.

 

스티븐 킹이 <킬러 넥스트 도어>를 "지옥처럼 무섭다"고 해서 끌린 데다가 배우 제임스 프랭코와 전 여친 아나 오렐리의 주연으로 영화화한다니 더 기대되더라고요. 무서움의 의미가 본성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에 대한 무서움이라면 스티븐 킹의 말처럼 오싹하긴 한데, 공포감보다는 우웩~할만한 묘사가 종종 나옵니다. 비위 약한 분들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읽을만한 수준이었어요.

 

 

 

여섯 명의 임차인들이 사는 작은 아파트.
몇 십 년째 살고 있는 할머니, 소매치기로 버티는 가출 소녀, 이란인 망명 신청자, 하루 종일 음악을 틀어두며 은둔하는 남자, 시민 상담소에서 일하는 참견꾼 남자, 그리고 새로 이사 온 도망자 신세인 여자. 이들은 살갑게 지내는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전혀 모르는 낯선 이들이기도 한 전형적인 이웃 관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섯 이웃들은 따로 살고 있는 집주인 남자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연대하게 되는데요.
평소 악덕 집주인이었던 그의 죽음은 경찰을 부르지 못하는 제각각의 이유로 공모자 신세가 됩니다. 이 장면이 나오기까지 소설 전체의 반 분량을 그들 각자의 상황 묘사에 치중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즈음엔 살인마의 이야기가 끼어듭니다. 지루하게 끄는 듯하다와 흥미롭다의 감정이 반복되다 보니 뭐라 똑 부러지게 말하기 힘든 묘한 느낌이.

 

 

 

떠날까 봐 겁이 나 어쩔 수 없었다며 누군가가 흐느끼며 사과하면서 여자의 얼굴에 씌어진 비닐봉지를 벗기는 장면은 압권이었어요. 그러면서 그 여자만 있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여자가 있고, 침대 아래 가습장치와 소금 알갱이로 채워진 곳을 보여주는데 영화를 보는듯한 시각적인 묘사가 멋지더라고요. 살아생전의 모습과 유사하게 만들려는 강박이 있는 살인마.


맨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네 배수관이 자주 막히는 이유를 독자는 나중에 알게 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이웃들이 불쌍하게 여겨질 지경이랍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이웃들 한 명 한 명의 안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하네요.

 

<킬러 넥스트 도어>는 살인마의 정체를 굳이 숨기려는 구성으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자가 일찌감치 살인마 정체를 짐작하거나 소설의 결말을 예상할 수 있어요. 저는 살인마의 첫 이야기가 나온 순간 이미 소설 첫 장면과 연결해 결말까지 파악해버렸는데도 이 소설이 싱겁게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살인마를 포함한 여섯 명의 삶 하나하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칠십여 년을 그 집에 머문 할머니를 통해서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정말 안정적인 상태일까. 축복이 아니라 '감옥'일수도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경이 돼서야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생각의 노예가 아닐까 하며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잠시 공모자가 되긴 했지만, 서로를 알아가며 진정한 연대의 순간을 맞이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끝까지 낯선 존재로 머문 이웃도 있고요.
 
스포를 최대한 자제한 글이지만 결말의 느낌은 언급하고 싶은데요, 이 책을 덮고서는 살인마보다는 세 여성의 이야기가 더 가슴속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장면이 절로 떠오르더라고요. 생각의 감옥에서 방향을 튼 그녀들. 시원한 해방감이 온몸을 휘감는 기분이었어요.

 

"그들 모두가 희생자이자 구조자에서 공모자로 변하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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