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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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톡톡 건드리는 책, 사회비평가이자 페미니스트 나오미 울프의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1991년에 초판이 나왔던 이 책이 오늘날에도 정확히 적용된다는 사실. 여성 혐오 범죄가 심심찮게 행해지는 시대를 살면서 착잡하기도 합니다.

 

페미니즘의 흐름은 1920년 미국 여성 참정권 쟁취를 시작으로 첫 번째 물결 페미니즘을,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루어지면서 사회 문화적 차별 해결을 위한 두 번째 물결 페미니즘을, 그리고 오늘날에는 얼굴과 몸에 직접 제약을 가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세 번째 물결 페미니즘 시기라고 합니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는 바로 세 번째 물결 페미니즘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한 책이라고 해요. 투표를 하고 재산을 소유할 권리는 있는데 내 몸을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저자 나오미 울프는 생물학적 여자보다 사회학적 여성을 염두에 두고 일, 문화, 종교, 섹스, 굶주림, 폭력 6대 영역에서 아름다움의 신화를 파헤칩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아름다움의 신화도 문제 제기하는데 오늘날 남성 미용성형수술 시장의 증가를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앞날을 통찰한 날카로운 눈이 돋보였습니다.


우리는 페미니즘에 거세게 반발해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여성의 진보를 가로막는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환경에서, 아름다움의 신화 속에서 살고 있다. -  책 속에서.

 

 


 

그동안 페미니즘 활동으로 여성의 사고방식이 바뀌자 이제는 아름다움을 무기로 내세웠습니다. 가정일처럼 무보수 노동에 익숙해진 방식은 전문적인 주부 역할, 전문적인 직장인 역할, 전문적인 미인의 역할 모두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성이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투표용지나 로비스트나 플래카드가 아니다.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각이다. - 책 속에서.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아름다움은 보편적이거나 변함없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구조, 경제, 문화가 여성에게 반격을 가할 필요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여성을 가두기에 좋은 사회적 허구라는 거죠. 왜 여성의 의미를 이렇게 정형화된 아름다운 이미지로 고정화시키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줍니다.


 


 

개인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식 자기계발 열풍 시대처럼 모든 것을 개인 탓으로 돌립니다. 흔히 추측하듯 아름다움의 신화가 성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의 많은 사례들을 보니 충격적이었어요. 자신의 본질적 가치조차 확신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 아름다움의 신화는 여성의 자존감을 낮춥니다. 자기 몸값을 과소평가합니다.

 

문학작품, 여성지 속 여성의 아름다움을 사례로 들며 '이상적인' 이미지가 강박적일 정도로 중요해진 문화, 완벽하게 창조된 남성에 비해 여성은 남성의 몸보다 열등하는 종교적 영향, 섹스를 강간으로 그리는 성문화, 여성의 몸을 감옥으로 만드는 다이어트 같은 사회적 방책 등은 여성의 자부심과 유능함을 허물어버리며 내면화된 자기혐오를 부릅니다. 셰릴 샌드버그가 자신의 책 <린 인 / 와이즈베리> 에서 줄곧 이야기한 것처럼 여성은 유난히 유리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성형수술 시대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수술이 아닌 건강한 젊은 여성을 고치고 있습니다. 노화된 주름을 질환이나 병으로 만들면서 건강한 여성을 병들게 하고, 능동적 여성을 수동적으로 만듭니다. 여성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아름다움의 고통을 사소하게 여깁니다. 아름다움을 거부하면 겁쟁이 취급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여성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늙은 남성은 세상을 움직이지만, 늙은 여성은 문화에서 지워진다. - 책 속에서.
 

 


 

이 모든 것은 여성은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현실. '아름다움'의 정의는 인간 역사에서 조금씩 바뀌어왔지만, 그 정의가 밖에서 오는 한 달라질 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가 올 가능성은 정녕 없을까요.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바꿀 개인이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은 생각 외로 많았습니다. 나오미 울프는 스스로를 직접 바라보고, 여성을 삼차원적으로 조명하는 연극과 음악, 영화를 찾아내고, 여성의 전기와 여성의 역사, 세대마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여성 영웅들을 찾아내 끔찍한 '아름다움'의 공백을 메우라고 조언합니다. 우리가 늘 분석의 눈길을 날카롭게 벼리면서 '의식'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한 발 내디딘 겁니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는 여성을 평가하는 요소를 그대로 남성에게 적용해보거나 여성 성형수술을 남성의 그것으로 바꿔 묘사하는 사례도 많은데 충격적일 정도로 신선했어요.

 

사실 책으로 이런 주제를 만나기 전까지는 페미니즘이란 것을 오해하기도 했고 (이 책을 읽어보니 그런 오해조차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낚였던 것), 사회 특유의 문화와 기질은 개인이 바꾸기 힘들다는 무기력에 빠져 관심 밖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본질은 여성과 남성을 구별짓거나 여성이 다른 여성을 미지의 위험의 존재로 보기보다는 건강한 의식을 가진 주체적인 개인으로서의 '나'를 완성해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성이 아름다움을 성과 분리할 때, 자신의 특성과 특색을 찬미할 때, 우리를 분리하지 않고 결합시키는 우리 몸의 즐거움에 접근할 수 있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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