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양치기의 편지 - 대자연이 가르쳐준 것들
제임스 리뱅크스 지음, 이수경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양치기라는 단어가 주는 목가적인 분위기만큼이나 사실 너무 잔잔한 분위기의 책은 아닐까 싶었는데, 제임스 리뱅크스 저자의 글이 생각 외로 유쾌해서 무척 즐겁게 읽은 책입니다.

그저 새하얀 양만 떠오르는 수준이었던 제가 이제는 다양한 품종의 양들이 있고, 저마다 독특한 색깔과 생김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나라 목장 형태만 생각하다가 대자연에서 방목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목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배경인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겨우 4만 3,000명의 주민이 있는 곳이지만, 방문 외지인은 연간 1,600만 명에 이 지역에 관한 책도 많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본 그곳 이야기가 아닌 흙을 일구며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관심 밖이었어요.

 

사람들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된' 자연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런 곳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고자 찾거나 도시인의 이상적 공간 역할일 뿐입니다. 저자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들조차 촌구석에선 전혀 이룰게 없다는 식이었고요. 세상에 나가 뭔가 훌륭한 것을 이뤄내는 것이 값진 인생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조부모, 부모 세대가 땀 흘려 일하는 삶을 가치있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옥스퍼드대 출신 양치기, 제임스 리뱅크스의 이야기는 더 값져 보입니다. <영국 양치기의 편지>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땅에 뿌리내려 살아온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에는 내셔널 트러스트 소유의 방목지가 있습니다. 아동문학의 대가 '피터 래빗'의 베아트릭스 포터가 후원한 지역 중 한 곳인데, 이곳은 수 세기 동안 추위와 험한 지형에 익숙해진 지역 토종 허드윅 양만 풀어놓을 수 있다고 해요. 목양견과의 팀워크가 특히 중요한 작업과정을 보니 우리가 익히 알던 양 목장 수준이 아니더라고요.

 

양치기의 첫 번째 규칙 : 내가 우선이 아니라 양과 땅이 우선이다.
두 번째 규칙 : 상황이 항상 내 뜻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규칙 : 그래도 군소리 말고 계속 일한다.


목장의 일상은 건초 만들기, 양털 깎기, 산위의 양 떼 몰아 내려오기 같은 굵직한 일들 외에도 무너진 담장 손보기, 아픈 양 치료하기, 어린 양들 기생충 없애기, 양들 발 씻기기, 생울타리 만들기, 울타리에 몸이 걸린 새끼 양 빼내기, 목양견 씻기기, 양 꼬리 근처에 붙은 똥 딱지 떼내기 등 영국 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맞춰해야 할 소소한 일들이 산더미입니다. 게다가 출산 시즌 때는 멘틀 붕괴쯤은 일상이었습니다. 출산 시기에는 넓디넓은 공원에서 어른 두 명이 갓 태어난 아기와 아장아장 걷는 유아 수백 명을 돌봐야 하는 상황과 비슷할 정도라네요.

 

 

 

 

자연의 사이클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자연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생활방식에 자긍심을 가진 그들의 이야기는 사람과 땅의 관계가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진짜 역사와 문화입니다.

 

<영국 양치기의 편지>에는 3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목장 운영의 실제적인 기술 외에도 이 땅의 주인인 농부로서의 가치관, 세대를 지나며 전해지는 지혜와 경험의 소중함. 이제는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를 중심으로 양치기의 삶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물한 살 때 스스로의 선택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목장 말고 다른 선택지들도 있다는 걸 직접 도전했던 그는 어찌 보면 외도를 한 셈이기도 했지만, 옥스퍼드대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전문 고문위원 프리랜서 일을 부업으로 하면서도 양치기로서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진하게 드러나는 그의 글은 울컥하게 하네요. 

 

 


 

시골의 삶을 막연히 동경하거나 목가적이고 활기찬 시골 풍경만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전통적인 농경 및 목축 시스템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대학에 다니면 중요한 사람이고, 전통 방식에 따라 일하며 살면 관심이나 칭찬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는 물음은 아무런 목적 없이 무조건 도시인으로 살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삶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대자연과 함께 한 양치기 3대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는 <영국 양치기의 편지>. 초짜 양치기에서 인정받는 양치기로 성장하는 과정, 삶과 죽음이 있는 목장 생활 속에서 몸을 움직여 열심히 일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을 사는 이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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