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민족 상.하 세트 - 전2권
강태진 글.그림 / 비아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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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진 작가의 조국과 민족. 기사 보고 냉큼 구입했던 책인데 만화책이지만 어두운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데다가 기막힌 반전까지 있는 책입니다.
 

"나는 그냥 내 일을 한 거야! 그 사람들이 간첩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게 내 직업이라고!" - 책 속에서.

 

 

 

때는 1987년. 88올림픽을 앞두고 5공화국 시절 조작된 시국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그것도 가해자 시각에서 말이죠.


반공 표어 수상 상금을 받으러 갔다가 보안사 장실장과 우연히 만난 박도훈. 억울하게 죽은 엄마의 복수를 한답시고 장실장의 꼬드김에 넘어가 당시 정부에게 밉보인 아버지 집안을 제대로 말아먹게 도와준 박도훈이 이 스토리의 주인공입니다. 권력에 탄복한 그는 장실장의 수하로 성장하죠.

 

지금 세대들은 아마 책 속의 이야기가 허구로만 느껴질 겁니다. 제 세대만 해도 반공 포스터, 표어 만들기를 학교에서 열심히 했었고, 간첩 신고 관련한 현수막이나 스티커 같은 게 동네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슈를 위한 간첩 조작이 있었어요. 정부에 쓴소리하는 학생들은 간첩으로 몰아버렸고, 유학생 애들 잡아다 간첩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습니다. 기업을 정치적 돈줄로 이용하는 건 당연하게 여겼던 시절. 그러고 보니 최근 미르·K재단 사건을 보면 퇴보한 이 나라의 모습이 참 할말 없게 만듭니다.

 

"글쎄요... 이런 일일수록 당장을 모면하려는 편법보다는 김회장님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 그 진심의 크기를 보여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 책 속에서

 

 

 

<조국과 민족>에는 고문을 통한 간첩 조작 현장을 적나라하게 밝힙니다. 온갖 고문 기술이 동원되면서 없는 죄도 있게 만드는 모습에 치가 떨립니다. 한국사에 존재했던 이런 일들을 저도 나이 먹어가면서는 솔직히 점점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대학생이란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말이죠. 이 책을 보며 언젠가부터 이런 현대사를 잊고 살고 있단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중간중간 들어간 작가노트에서는 작업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다운된 분위기를 조금 끌어올립니다. 무거운 스토리지만 작가의 유머감각이나 그 시대 웃음 코드를 선사하기도 하고요. 

 

<조국과 민족>에 등장한 사건들은 당시 실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가정 살인 사건을 간첩 사건으로 조작해 국민을 속였던 수지 킴 사건,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 고문 받은 재일 교포의 폭로 등... 이런 일들을 겪고 현재의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만으로 그때를 짐작하는 요즘 세대들은 설마 싶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80년대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영화 <변호인>에서도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벌어졌던 시대입니다.

 

이 책이 단순히 간첩 조작 사건들이 있었다는 수준에서 끝냈다면 기록물 차원의 책일 테지만, 한발 나아가 가해자 시선에서 그들이 한 일을 짚어 보는 점이 독특했어요. 주인공 박도훈이란 인물에게는 민가협에 몸담은 이복 형도 있었고, 사랑하는 여자도 있었습니다. 고정간첩에게 되려 당하기도 하고, 그토록 믿던 조국에게 결국 버림 당하기도 하는 그를 보면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떠오릅니다. 명령에 의해, 맹목적으로 따른 그들의 모습은 독일 나치 아이히만과 같았습니다.

 

이 책의 결말은 영화 한 편을 보는듯한 환상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서스펜스 소설 저리 가할 정도의 기막힌 반전도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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