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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 - 죽음을 보는 눈
구사카베 요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겉모습만으로 병명과 생존 여부를 가려내는 천재의사 두 명이 같은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잔인하고 자극적인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잘 읽는 분이라면 취향저격 소설입니다.
구사카베 요 작가는 현직 의사로 평소 의료계 문제를 다룬 소설을 써온 그는 <무통>에서 심신상실에 의한 살인과 몰 인간적인 의료 문제를 다룹니다.
이 책에서 내내 다루는 주요 쟁점은 심신상실자를 보호하는 조항인 형법 제39조입니다. 민, 형사상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자로 취급하는 심신상실. 하지만 범죄자가 이를 악용할 경우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무죄를 보장해 주는 마법의 카드가 되죠.
소설 <무통>에서는 이 법이 언제나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는지, 그리고 심신상실을 판단하는 의사의 정신감정의 한계를 꼬집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있는 일가족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과 거리에서 아이에게 반응해 무작위로 칼을 휘두른 묻지마 사건이 등장하며 심신상실과 관련한 살인 사건을 긴박하게 보여줍니다. 일가족 사건을 맡은 형사는 범인을 잡아도 심신상실자 판명이 나면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없기에 범행 당시 이성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찾는 데 몰두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폭발적인 범죄를 저지를 범인증을 볼 수 있는 천재 의사, 보호시설의 임상심리사와 그녀를 스토커 하는 전 남편, 선천성 무통증을 앓는 한 남자, 일가족 살인사건을 자기가 저질렀다고 고백하는 자폐증 소녀가 얽히고설킵니다.
<무통>은 의사 출신 작가답게 메디컬 스릴러소설의 리얼리티가 살아있어요.
특히 살인을 묘사하는 장면은 미국 드라마 덱스터가 생각날 정도입니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선천성 무통증에 사이코패스 기질이 덱스터보다 100배는 더해진 인물이 한 행동을 담담히 묘사한 10여 페이지는 아마 당분간 잊지 못할 명(?)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가 위험하고 뭐가 안전한지 아픔 없이 판단하기 어려운 선천성 무통증을 앓는 그는 마음의 통증 즉,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 합니다.
구사카베 요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알리고 싶은 생각이 <무통> 책 전반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형사의 말과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스토리나 재미 요소 등에선 나무랄 게 없는 책이지만, 심신상실자 보호 조항의 악용 부분을 다루는 형사의 생각은 조금만 힘을 뺐어도 될 타이밍이 있긴 했었어요. 그 부분만 살짝 아쉽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읽은 소설입니다.
아이들의 소리 없는 비명을 들어야 한다는 임상심리사의 사고방식과 어차피 치료될 사람은 가만 놔둬도 낫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치료되지 않는다며 열심히 애쓰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는 천재 의사의 대립도 생각해 볼만한 주제였습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지켜봐 온 의사들의 기만, 오만함, 그리고 아등바등하는 환자들의 나약함. 그걸 무대로 연출되는 의료 환상. 그런 것들에 신물이 났기 때문입니다." - 책 속에서
조현병을 연기하는 스토커 장면도 소름 끼칠 정도로 강렬했어요.
어떻게 범죄자가 되는지, 악의를 가진 범죄자와 진짜 심신상실자를 구분할 수 있을지 등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두툼한 분량인데도 손 놓지 못하고 밤새 읽었네요. 예전에 메디컬 공포 영화 『아나토미』를 보고 메디컬물에 한때 빠지는 계기가 되었었는데, <무통> 역시 충격 제대로 남기는 소설이었어요. 세고 강한 거 좋아하는 독자라면 흡족할만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