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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 몇 년간 유럽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인공인 황혼라이프 소설 전성시대네요.
프랑스 소설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도 괴팍한 이웃집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어요.
예전엔 사회적 문제로서의 노인의 삶을 그렸다면, 이제는 유쾌한 감정을 좀 더 드러내고 있다고나 할까요.
100세 고령화 시대를 맞아 더 고독해지고 경제적으로 힘든 노인의 삶이 현실이자 미래라면, 요즘 소설에서 그려지는 노인의 삶은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믹함이 더해져 스토리 자체는 가벼워졌지만, 그 가벼움 뒤에는 길어진 노년의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의 페르디낭 할아버지는 가족도 친구도 없는 여든세 살 독거노인입니다.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탓에 온갖 불행이란 불행은 다 자기한테만 온 것 같다며 삶에 그다지 의욕이 없습니다. 엄마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도 너무 빨리 돌아가시고, 평생을 함께한 아내와는 황혼이혼을 하면서 특히 여자와의 인연은 더더욱 없었던 페르디낭 할아버지. 하물며 혼자 살게 되면서 함께 한 반려개도 암컷이었는데 사고로 잃게 되었고요.
하나뿐인 딸과도 관계가 소원한 상태인데, 반려개를 잃고 혼자가 된 페르디낭이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되자, 결국 딸은 아버지에게 양로원 생활을 권유합니다.
아파트 이웃들과도 썩 좋은 관계는 아니었고 혼자 조용히 있고 싶지만, 그렇다고 양로원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페르디낭. 하지만 그를 쫓아내려는 아파트 관리인 노파와의 대립은 스토리의 갈등을 더해가기만 합니다.
무신경하면서 완고한 성격의 페르디낭 할아버지도 나름 수를 쓰긴 쓰는데, 그 과정이 코믹해요.
평화로운 연못에 짓궂게 돌멩이를 던지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페르디낭 할아버지. 이웃 노파들이 싫어할 만한 짓은 다 하고 다니는 모습에서 아이 같은 면을 볼 수도 있어요. 그런 페르디낭에게 조금은 뻔뻔한 어린 여자아이와 활기차게 노년의 삶을 사는 한 할머니가 다가오는데...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를 읽으면서 딱 한군데 정말 분노가 치솟았어요. 아파트 관리인 노파의 악의적인 행동에서 정말 환장 팔짝~ 반려개의 비극, 자살 시도, 양로원행, 살인 누명 등 너무나도 많은 일이 벌어지니 "아니 젠장, 내가 대체 무얼 어쨌다고 인생은 날 이렇게 미워하는 거야?" 한탄할만한 페르디낭 할아버지.
위선과 동정심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꺼리는 페르디낭 할아버지의 마음이 한 편으론 이해도 되고, 친근함과 배려를 사랑의 신호로 착각하기도 하면서 애교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페르디낭 할아버지는 미워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노년의 삶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는지 그 나잇대의 하루를 들여다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누구와 함께 사는 것도 싫고, 사람도 싫은 그는 이제와서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말로는 그저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살 만한 인생.
무엇보다 즐겁게 지내려 노력하는 마음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