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모리 아키마로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황금가지 블랙로맨스클럽 신간 <이름 없는 나비는 취하지 않아>. 애거스 크리스티 상을 받은 모리 아키마로 작가의 연애미스터리 소설인데요, 미스터리 글자를 빼버려도 될 만큼 기존의 미스터리소설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더라고요. 주인공이 치즈인더트랩의 홍설과 유정 커플의 성격이 살짝 오버랩 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만큼 <이름 없는 나비는 취하지 않아> 책이 생각외로 마음에 들었단 뜻입니다 ^^

 

코믹과 로맨스, 미스터리가 적절하게 섞여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었어요. 청춘의 방황, 자아 찾기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인데도 무겁지 않게 이끌어나가는 모리 아키마로 작가의 글이 만족스러웠어요. 일본 미스터리소설 마니아라면 색다른 맛을 볼 수 있을 테고,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마스다 미리 풍의 달콤담백한 느낌 받을 수 있으니 도전해도 될 만한 책이랍니다. 아역배우 출신 주코가 대학 생활을 하며 겪는 이야기를 보며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해보기도 하고, 지금 20대 청춘 시기를 겪는 독자라면 그 시기에 고민하는 것들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추리연구회 동아리에 들어가려던 주코는 이름이 비슷한 취리연구회로 들어가는 어이없는 상황을 겪습니다.

취리연구회가 하는 일은 바로 술 마시며 취하기.

 

취, 취, 취취취취, 취하면 멋진 이치가 보인다.

취, 취, 취취취연, 마시면 당신도 이치가 보인다.

 

그런데 주조장 집 딸로 자란 주코는 취하지 않는 특이체질이었어요. 물인 줄 알고 매일 마셔댄 물이 술이었거든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마셔온 덕분에 어떤 강한 술에도 취하지 않게 되었죠. 친목이나 교류를 위해서가 아닌, 그저 술을 마시기 위해 마시는 취연. 고주망태 되어 다양한 주사를 부리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악~! 20대 그 시절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더불어 사케 한 잔 음미하고 싶게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청춘은 긴 터널이다. 다들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질 정도로 눈부신 빛을 향해 달리고 있을 터이지만, 터널의 한가운데에서 빛은 보이지 않는다." - 책 속에서

 

<이름 없는 나비는 취하지 않아>는 어느 곳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진정한 자아 확립이 아직 안 된 상태인 모라토리엄 인간상을 주코를 통해 보여줍니다. 아역배우였지만 성장하면서 성인 배우로 진입하지 못하고 연기생활을 그만뒀던 주코. 아역배우였던 것을 숨기려 하고, 평범한 여대생의 모습으로 그 누구에게도 튀지 않으려는 주코의 행동 뒤에는 '아무것도 아닌 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청년기 특유의 위기감과 닮았기도 합니다.

 

 

 

"술이든 뭐든 취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사람은 비틀거리면서 나아갈 수 있어." - 책 속에서

 

술을 마셔야만 취기를 느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취연 동아리 회장 미키지마의 말은 주코의 마음을 두드리네요. 취기를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을 이야기하는 미키지마. 거기에는 연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주코는 미키지마 선배를 흠모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아니 제대로 알아채지도 못합니다. 술에 취하지 않는 주코가 세계에 취하는 법을 알아가는 20대 청춘 성장소설이기도 하네요.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는 분명 미스터리 소설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 미스터리가 말 그대로 '거 참, 미스터리하다~' 정도의 미스터리입니다. 취연 활동 중 생기는 다양한 사건이 그 대상이에요. 술 마시다 실종된 사람이 다음 날 벚나무 아래 죽은 듯 잠자고 있었던 사건, 미키지마 선배의 전 여친 사건 등 이런 에피소드가 쏠쏠한 재미를 주네요.

 

대나무로 짜인 벽을 사이에 두고 눈 내리는 온천을 배경으로 한 결말도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미키지마와 조코가 벽을 두고 같은 하늘을 보는 장면이 영화를 보듯 머릿속에서 상상이 되더라고요. 여전히 인생의 목표가 이거다라는 것은 없지만, 몇 겹의 마음의 옷 중 한 겹은 벗어버린 주코. 좀 더 다양한 세상에 취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미키지마 선배의 숨은 조력이 빛나네요. 담백하고 예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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