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올해 영화 개봉을 앞둔, 2015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의 신작이 나왔네요. <오베라는 남자>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표지가 아주 깔맞춤입니다.

두 권 모두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감동소설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오베라는 남자>보다 훨씬 더 제 취향에 맞아 재밌게 읽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젊은 할아버지 오베의 까칠함 속에서 속정을 발견하며 감동 받았던 <오베라는 남자>. 그리고 빨간머리 앤과 말괄량이 삐삐를 닮은 일곱 살 엘사 이야기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두 주인공 모두 '말발'은 알아줘야겠더라고요.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의 독특한 문체가 이번 책에서는 더 무아지경으로 쏟아지더군요. 오베와 엘사가 만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봤네요 ^^

엘사가 사는 작은 아파트 입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요즘은 이웃사촌이란 말이 사라질 정도로 삭막한 세상이죠. 엘사네 아파트 입주민들도 겉으로 보기엔 마찬가지였어요.

일곱 살이란 나이에 비해 '어마무지하게 짜증나게 구는' 엘사와 손녀 사랑이 지극한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 의사였던 할머니는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살짝 기능 장애있는 슈퍼 히어로입니다.

엘사에게 학교에서 나쁜 일이 생기면 그것 대신 기억에 남을만한 사건을 일부러 만드는 할머니. '우라지게'라는 말을 애용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할머니와 그걸 또 따박따박 따져대는 엘사의 조합이 재밌더라고요. 투닥거리면서도 든든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다는 걸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느낄 수 있답니다. 

엘사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꿈속에서 상상의 모험을 즐깁니다. 이야기 속 세상인 깰락말락나라에서는 공주, 괴물, 히어로 등 무궁무진한 캐릭터가 등장해요.

그러던 어느 날, 암에 걸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할머니와 함께해 온 깰락말락나라의 모험은 끝이 납니다. 할머니는 친구 하나 없던 엘사에게 할머니가 지정한 누군가에게 편지를 전달하면 다음 편지가 발견되도록 하는 보물찾기 임무를 남기고 떠났는데요. 임무를 수행하면서 할머니의 깰락말락나라 이야기가 현실 세계로 이어진 느낌을 받는 엘사. '성을 지키라'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는 편지를 남긴 할머니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읽으며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의 톡톡 튀는 사고방식이 어쩜 그리 유쾌발랄한지요. '이야기에는 악당이 있어야 하니 트롤과 용은 미아마스에서 엄청난 취업률을 자랑한다'느니 '옷을 홀딱 벗고 침투성이가 되어 불 꺼진 우표공장을 통과하라는 말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으로' 등 재치있는 글이 가득해요. 번역 맛도 좋았어요.

미워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할머니. 의사 생활을 하던 당시 할머니의 비밀이 한 꺼풀 벗겨지면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엘사. 애증 관계의 이웃들. 그들이 모두 어떻게 얽혔는지 실타래처럼 얽힌 비밀이 밝혀질 때마다 전율이 돋을 정도였네요. 지켜야 하는 무언가를 위해 할머니가 남긴 편지의 비밀을 다룬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피엔드로 끝내기 위한 엘사의 노력에 응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서 어느 순간 잊힌 한때는 슈퍼 히어로였던 그 누군가를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