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폐허 건물 사진을 찍는 사진가 쇼이치를 중심으로 호텔 살인사건과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악을 이야기하는 일본추리소설 <창백한 잠>.

 

사람의 손길이 끊어진 폐허를 찾아다니며 사진 찍는 사진가. 동이 트기 전, 세상이 온통 푸른빛으로 물드는 시간을 블루월드라고 부른다네요. 동 틀 무렵 군청색의 세계를 담아내고자 하는 사진가 라는 설정이... 아, 그 사진에 뭔가 찍히겠구나 하는 뻔한 설정 짐작하며~

 

도산해서 폐허가 된 호텔 내부 촬영하다가 살해된 여성을 발견합니다. 이 사진가는 한때 탐정 사무소에서 잠깐 일한 전적이 있어 통제할 수 없는 흥미가 솟기 시작하네요. 여성환경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살해된 여성의 이력 상 현재 그 마을에 공항 건설 찬반 대립과 관련한 사건이 아닌가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5년 전 일어난 호텔 화재 사건, 도청 사건, 호텔 살인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하던 위치에 있던 사진가와 호감 관계에 있던 편집자가 크게 다치며 의식불명이 되는 사건도 생기고 원인은 점점 미궁 속에 빠지는데...


 

 

 

공항 건설 찬반 대립이 이 소설의 큰 줄기이긴 합니다. 지역 개발에 얽힌 이권 다툼 속에 부조리한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파고들수록 사건의 축은 공항 건설을 둘러싼 분쟁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무언가가 아닐까... 여러 사건의 의외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었죠. 이 과정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논리겠지만, 그 부조리한 세상이 만드는 범죄,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인간의 내면을 엿보게 됩니다.

 

추리과정에서 사진가의 추리력은 가히 신을 방불케 합니다. 사기 캐릭터예요 ㅋㅋ 그런데 홈즈 같은 추리 실력이기보다는 소설 같은 상상력이 압권입니다. 가노 료이치 작가도 그 점을 분명히 알고 전개하고 있더군요. "그렇게 알게 된 일들 사이를 상상으로 다시 연결하면서도"(p398)라며 자신의 상상에 의존하는 주인공을 만들어냈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요.

 

공항 건설과 관련한 이권 다툼이라는 겉으로 보이는 배경 외에도 소설 속 인물들이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이 하나씩 밝혀지며 사건 해결의 물꼬가 트입니다. 지키고 싶은 삶이란 희망이기도 하면서도 허망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창백한 잠>은 하드보일드 탐정추리소설이라는데 제 취향에는 조금 약한 것 같아요. 무감함은 제대로인데 아주 하~드하지는 않았어요. 의식이 깨어나면 프러포즈 하려고 했던 편집자와의 관계에서 쿨함은 최고조를 달하네요. 상상에 의존하는 탐정추리 쪽이지만 불필요한 감정에 빠지지 않는 무감함은 제대로예요. 상상력에 의존한 추리 쪽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재밌게 읽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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