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스반테 페보 지음, 김명주 옮김 / 부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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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발견을 함과 동시에 그동안의 통념을 깨뜨리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현생인류가 되었다, 혹은 유럽인의 조상이다는 방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몸속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간의 관계가 새롭게 정의되었습니다.

고생인류 DNA 연구자 스반테 페보에 의해 공방이 일단락된 이 사건을 다룬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이 책은 네안데르탈인의 DNA 연구 과정을 스반테 페보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어,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발표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요.

 



왜 네안데르탈인일까.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며, 멸종한 다른 형태의 인류입니다. 멸종한 형태의 인류와 우리가 무엇이 다르길래... 그들은 멸종했고, 우리는 문화혁명을 이루어내고 있는 걸까요. 즉,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 현생인류를 인간답게 만든 본질을 묻는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 연구의 중요성이 담겨 있습니다.


스반테 페보는 세계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 서열 해독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는 이후 진행될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의 핵 DNA 연구보다 앞선 연구였는데요, 그 결과가 참 놀라웠습니다. 전 세계 현생인류 어떤 인간에게서도 본 적이 없는 변화들을 가진 DNA 서열을 발견했고, 유럽인의 조상이라고 믿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오늘날 유럽에 사는 어떤 집단과도 특별한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 연구 결과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인류학 연구 분야에서 10년 넘게 벌어졌던 싸움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고, 우주 탐사 역사의 달착륙과 같은 사건이라고 하니 그제야 이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라는 걸 인지하게 되더라고요.


 



 

스반테 페보의 DNA 관심은 30년 전쯤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발동 걸렸습니다.

고대 DNA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그의 행동은 인류의 기원을 밝히고자 하는 목표 때문입니다. 현생인류의 생물학적 기원을 밝혀 인류 역사를 쓰고 싶었던 겁니다. 그의 표현으로 치면 "진화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것"이라 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에 어떤 변종들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보며 고대 인류의 DNA 서열에 나타나는 변이를 조사함으로써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잡는다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DNA를 잡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영화 <쥐라기 공원>의 폐해가 여기서 나타난. 호박 속에 갇힌 모기의 DNA를 너무 쉽게 추출하는 걸 봐서인지 DNA를 회수하는 게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네요. 특히 현대인의 DNA에 오염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동안 숱하게 매체를 통해 알려진 대부분 연구결과가 사실은 오류투성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는 제대로 된 연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려 한 사람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DNA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해결 과정도 상세히 다뤄 이후 다양한 연구 분야에 응용되게끔 길을 깔아 준 사람입니다.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는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든 변화들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전체 게놈서열 중 단 0.003%로 시작했는데, 뼈 한 조각에서 얻을 수 있는 DNA양이 100%가 아니라 겨우 4%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미생물 등의 DNA나 현대 DNA 오염 등이다 보니 정말 지루한 과정일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막힐 때마다 그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처음에는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라고 해요. 익숙하지 않은 기술에 대한 거부, 반발 작용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은 묘안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더라고요. 뼈 한 조각에서 얻을 수 있는 DNA 양이 겨우 4%만 실제 있는 게 아니라 해독 과정의 기술만 높이면 20%가 나오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물관에 뼈가 있어도 실제 DNA 존재를 기대할만한 보존상태의 뼈는 극히 낮은 데다가 그나마 있는 DNA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든 수준의 기술력이었지만, 기술혁명의 시대와 맞물려 과학발견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기술의 발달로 DNA 염기 서열을 알아내 DNA 정보를 책처럼 읽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온 거죠. 이론과 기술이 함께 움직일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걸 생생하게 목격하게 됩니다.


 



 

네안데르탈인 연구 결과 네안데르탈인이 비아프리카인에게 작게나마 유전적 기여를 했다는 증거가 나오게 됩니다. 유전자 이동의 의미는 이종교배로 생식능력 있는 자손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죠. 예를 들어 북극곰과 회색곰이 만나면 자손 생산이 가능하지만 다른 환경에 적응되어 있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유럽인뿐만 아니라 아시아계까지 비아프리카인 모두에게 비슷한 비율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전달된 이 수치는 그동안의 이론을 수정해야 할 결과였습니다.


이제 이 결과를, 오용될 여지를 최소화하고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하느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사실 네안데르탈인 개념은 무식하고 힘만 센 사람을 비꼬듯 표현할 때 사용할 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릴 만한 일이 생겼을 때는 세상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니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팀은 독립적인 추가 증거들을 찾는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특별한 반란 없이 패러다임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 게놈 논문 발표 이전에, 연구 과정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연구가 꽤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어요. 시베리아 남부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아주 작은 뼈를 분석하면서 데니소바 개체는 현생인류도 네안데르탈인도 아닌 완전히 다른 인류 집단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게다가 데니소바인 게놈 분석 결과 이들 역시 네안데르탈인처럼 그들의 작은 일부가 아직 오늘날의 사람들 안에 살아있다는 것. 특히 파푸아뉴기니인에게 4.8% 유전자 이동을 확인했으니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와 합쳐서 약 7%가 초기 형태의 인류에게서 유전자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왜 멸종했고, 우리는 왜 살아남았는가를 풀기 위한 길을 제시한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

최근에 읽었던 <생명 그 자체> 책에서는 우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으니, 뼈가 남아있는 인류의 기원을 찾는... 지구 역사 안에서도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은 사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 만만하게 보기도 했네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DNA가 많이 남겨진 뼈를 찾는 과정에서 박물관과의 협업, 경쟁자들과의 눈치싸움, 발표를 어느 과학전문지에 할 것인가 선택하는 문제 등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다양한 문제를 솔직히 다루고 있어 그 생생함은 최고였어요.

낯선 과학용어가 많았지만, 한 파트 끝날 즈음 딱 궁금하게 만드는 문장을 집어넣어 추리소설 읽는 것처럼 중간에 손 놓지 못했던 책이었습니다. 어떤 위기가 닥치고 그걸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독자로서는 흥미진진했어요. 아주 내밀한 사생활도 풀어놓고 있는 걸 보면 문화적 차이도 확연히 느꼈고요.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는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직계 조상인 완전한 현생인류의 생물학적 기원을 연구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해부학적으로 현재의 인간과 뚜렷하게 다른 모습을 한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정보를 통해 멸종한 그들과 확연히 다른 역사를 만들고 있는 현생인류의 무엇이 인간답게 만든 본질인가를 찾는 여정입니다. 스반테 페보 팀이 밝힌 게놈 정보가 앞으로의 다른 연구에 도구로 이용될 테니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든 변화들이 무엇인지는 하나씩 밝혀지겠죠. 근데 그걸 완벽히 밝혀내게 된다면, 현 인류는 멸종하고 새로운 인류 탄생의 날을 초래할 것만 같은 SF소설 같은 공상도 하게 됩니다. 그건 좀 오싹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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