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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순 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 - 70대 소녀 엄마와 40대 늙은 아이의 동거 이야기
최정원 지음, 유별남 사진 / 베프북스 / 2015년 8월
평점 :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 단어가 갖는 느낌은
무거워집니다.
걱정, 그리움, 고마움, 사랑,
미안함...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어머니라는 존재에 차곡차곡 한 겹씩 더해져 왔을 테니까요.
에세이 <말순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는 웃음이 나다가도 짠한... 지극히 현실적인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도 70대
어머니와 40대 총각 아들의 동거생활을 말이지요.

떨어져 있다가도 잠시 붙어있으면 그리움은
망각하고 어느새 투닥거리며 만만하게 감정을 쏟아내는 게 가족 관계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가족 간에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건 그 누구에게보다도
야박하고요.
70대 소녀감성 충만한 말순씨와 40대 결혼 안 한 아들.
살가운 성격이라해도 잔잔한 일상의 연속은
되지 않을 터. 포복절도 웃음을 주다가도 코끝이 찡할 정도로 뭉클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라일락꽃 독살
미수사건.
라일락을 좋아하는 소녀감성 충만한 말순씨의
작전인지 이사하는 곳마다 라일락나무가 있는 곳으로 집을 구하는군요. 아파트로
이사하면서도 아파트 입구에 라일락나무 천지.
어느 새벽, 머리가 아파 눈을 떴는데 라일락꽃 한
무더기가 침대맡에 떡 하니 놓여 있어 꽃향기로 미칠 뻔했고, 잠잘 때만이라도 베란다 문은 제발 열지 말라고 할 정도로 기겁한 일도 있었네요.
일명 라일락꽃 독살 미수사건!
이쯤에서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라며 라일락
향기에 투덜거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아들은 조금 더 생각해봅니다.
말순씨에게 라일락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요. 힘든 삶을 살아온 말순씨 인생을 되짚어보며
말순씨에게도 향기로운 꽃향기가 날 수 있다면...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여자로, 아내로, 어머니로...
지금에야 세상 좋아졌지만, 우리
어머니 시대만 해도
여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참아야 하는 게 너무 많았어요.
말순씨는 부잣집 딸로 살아왔지만, 결혼 후
참 힘들게 세상살이를 한 분입니다. 말순씨의 남편인 남자 1호 일랑씨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 특히 힘들게 사셨더라고요. "엄마라는 단어에서 파스 냄새가 날 정도"라고 아들이 말할 정도로 억척같은
힘을 짜내 하루하루를 살아낸 겁니다.

하지만 소녀감성만큼은 가슴 한구석에 고이
담아둔 말순씨.
"밤이 너무 캄캄해 슬프다"고도 하시고, '힘내! 사랑해!' 라고 적힌 꽃화분으로 아들에게 마음을 전하기도
하시고... 주름투성이 몸이 되었다 해서 그 누가
당신을 여자라고 아니 부를 수 있을까...

몸에 있는 수분도 서서히 말라갈 나이,
이젠 빈 우물처럼 눈물이 마른 줄 알았더니 자꾸 눈이 울었다.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서글픔일까? 갈 곳 잃었던 마음을 들켰기 때문일까? 우린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 꿈에서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 마음이 기억하는 한
中
말순씨의 남편 일랑씨는 이미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생전 그렇게도 속썩이던 남편이었지만 40년 세월을
함께하며 미운정도
정이라고 유난히 그리움에 사무칠 때도 있습니다. 아들이 그 빈자리를 완벽히 메꿀 수는
없지만, 아들 나름대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아들과 엄마와의 동거는 부부 일상과 별다를
것도 없었어요.
참견쟁이가 되기도, 잔소리꾼이 되기도,
하트뿅뿅 날리기도 하면서 '함께'라는 의미를 여실히 보여주네요. 언제고
좋은 날만 있지는 않지만 투덜대는 말 속에 담긴 애정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말순씨는 나를 남편으로
생각한다> 에서는 애잔한 스토리도 있지만, 심연의 어둠
수준은 아니고 얼른 가볍게 다시 돌아올 만한 적당한
묵직함으로 분위기를 끌고 갑니다.
말순 씨의 얼굴 주름은 막을 수 없겠지만
마음에 주름 잡히는 말과 행동은 삼가야겠다. 어찌 표현도 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배려 없는 강요만 하겠는가. 이젠 나도 말순 씨에게
시원하고 뭉친 곳을 풀어줄 파스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 - 칼로 물베기 中

오로지 누군가에게 주는 삶을 산
어머니.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의
든든한
'빽'입니다. 마음 힘든 일이 생길 때는 어머니의 존재감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고요.
가슴 속에 말할 수
없는 아픈 사연을 꾹꾹 눌러 담고서도... 자식에게마저도 져 주는
어머니.
<말순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는 부부간에도 애증이 교차하듯 어머니와의 동거생활
속에 툭툭
튀어나오는 귀찮고 번거롭고 짜증나는 순간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엿볼 수 있네요.
어머니의 마음과
아들의 마음이 함께
물들며 행복한 중독을 일으킵니다.
감동 에세이 <말순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를 읽다 보면 그간의 언행을 반성하느라 마음이 뻐근해질 겁니다. 더불어
어머니와의 추억을 오래도록 끌어가고 싶다는 바람도 절실해지고요. 내
머릿속의
아니... 내 가슴속의 지우개인 양 이런 애틋한
마음을 가졌다가도
어느 순간 또 철부지가 되기도 하지만요.
오늘은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