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샤를 페로의 잔혹 동화, 푸른 수염을 각색한 로맨스 스릴러 소설 <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푸른 수염 결말을 알고 있어서 결말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란 추측으로 읽어내렸습니다. 푸른 수염 이야기를 전혀 모른 채 읽는 것보다는 어찌 보면 약간 김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세세한 장치들이 묘미였어요.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 이야기는 17세기에 알려졌는데요, 추악한 귀족 푸른 수염이 아내를 맞이하고 유일하게 방 한 군데는 출입을 금지하죠. 그러다 한동안 집을 떠나게 되어 열쇠꾸러미를 아내에게 맡기면서 일은 벌어집니다. 출입이 금지된 방의 열쇠도 있었거든요. 아내가 푸른 수염 몰래 들어가 본 그 방에는 푸른 수염의 전 부인들 시체가 있었던 겁니다. 금지된 방에 출입한 사실을 알게 된 푸른 수염에 의해 아내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 아내의 오빠들이 와서 푸른 수염을 물리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랍니다.


이 이야기를 <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에서는 어떻게 식상하지 않게 전개해 나갈까요~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미국 남부. 노예제도가 있었고 노예해방운동이 지하조직을 통해 서서히 시작되던 시기입니다. 푸른빛이 도는 수염을 가진 버나드는 소피아의 후견인으로 오랫동안 소피아를 지켜보다가, 소피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의 집으로 데려오게 됩니다.

 

 

수도원을 개조한 저택에서 생활하게 되는 소피아.

이름뿐인 상류층에서 진정한 상류층으로 올라선 셈이죠. 그에 걸맞게 더 우아하고 고상해지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호화로운 환경이 과하다고 느끼는 이중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넓은 저택에는 그 화려함에 맞지 않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폐허 건물도 있습니다. 그래, 거기야!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 이야기가 생각나며 그 폐허 건물이 아무래도 수상하군요. 역시나 푸른 수염 버나드는 그곳의 출입을 금하지요.

 

 

 

 

소피아는 그곳에서 버나드의 전 부인들 이야기를 하나둘 알게 됩니다. 무려 4명의 전 부인이 있었네요. 바람나 도망간 첫번 째 부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인들과는 사별했다는군요.


『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 후견인의 부인들이 모두 너무나 최근에 이곳에 살았다는 점과...... 그들의 머리가 모두 붉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 - p78


풍족한 버나드가 결혼에 있어서만큼은 불운을 겪은 모양이라며 소피아는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마음에 안식을 주고 싶은 모성애가 샘솟기도 하고요. 버나드의 행동이나 말 한마디는 소피아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느끼게끔 만듭니다. 달달한 프랑스어를 툭툭 뱉으며 자상한 면모를 보이는 너란 남자 정말~!

 

그런데 문제는 소피아의 호기심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하고 눈빛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제가 다 조마조마하더라고요. 푸른 수염 버나드가 출장을 가게 되면서 받은 열쇠꾸러미. 받자마자 방마다 돌아다니며 딱히 찾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는 없지만 뭔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뭔가 버나드의 전 부인들과 관련된 것을 찾아 나섭니다. 다행히 이때는 출입 금지된 구역은 들어가지 않네요.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죠. 소피아의 호기심은 그저 이곳저곳 탐색하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버나드 몰래 들어간 숲 속에서 만난 목사 기디온과의 인연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라든지, 흑인 노예들을 도와주고 싶은 오지랖 발동까지. 저택에 고립된 듯한 그녀의 처지가 노예들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서이기도 하지요. 게다가 감정기복이 심한 푸른 수염 버나드의 비위를 맞추자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도 지칩니다. 후견인에 대한 환상이 점점 깨지는거죠.

 

 

 

그 와중에 네 부인들의 유령이 언젠가부터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소피아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근함을 느끼며 자매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그녀들이 남긴 물건들에 애착을 보이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곡절 끝에 푸른 수염 버나드와 소피아의 결혼을 앞두고 버나드는 다시 한 번 열쇠꾸러미를 맡기고 집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푸른 수염에게서 받은 이중적인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소피아는 저택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얌전히 떠나지는 못하는군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옮긴이의 말을 읽다가 탁 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는데, <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의 작가는 지극히 심미주의라는 것. 초반 1/3 정도까지는 저택 묘사나 소피아의 감정선을 정말 섬세하게 다루고 있거든요. 19세기 미국 남부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요. 드레스를 입기 위해 코르셋을 조이는 장면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가 떠오르며 당시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로맨스를 폴폴 풍기며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했고요. '매력만 풍기지 말고 좀 적극적으로 다가서란 말이야!'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느린 전개다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그때부터는 막 몰아칩니다. 마지막 1/3은 마지막 페이지가 다가올수록 아쉬울 정도였네요.


인간의 본능 중에서 호기심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픔을 많이 남기지요. 판도라의 상자처럼.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걸 넘어 사람 목숨도 좌지우지하는군요. 우리는 호기심이 불러일으키는 이중적인 면을 감지합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더는 깊게 파고들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것처럼요. 

 

금지된 장소와 열쇠. 푸른 수염 버나드는 소피아에게서 무엇을 원했던 걸까요.

푸른 수염은 그저 다중인격자였던 것일지.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에서는 첫 번째 부인의 죽음에 관해선 이유가 나오지 않는데, <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에서는 첫번 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의 이야기가 더해져 있답니다. 푸른 수염 버나드를 꼭지 돌게 한 원인을 짐작할 수 있죠. 전 솔직히 소피아의 탈출극보다는 푸른 수염의 악마 같은 성격이 나타나게 된 그의 첫 번째 상처에 주목하고 싶네요. 아... 이렇게 적고 보니 버나드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이런 마음이 동정심이자 모성애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는 거구나 싶기도 하는군요. 순간 또 섬뜩해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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