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정신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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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추천도서 100선, 청소년 필독 교양도서 <법의 정신>.

논술대비용으로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함께 언급되는 책이어서 공부용으로 읽어내려면 정말 고역일 겁니다. 그런데 교양인문서로 가벼운(?) 마음으로 이번에 읽으니 18세기 인문고전 중에서는 제법 쉽게 읽히는 축에 속하더란 말이죠. 그건 몽테스키외가 일반인도 이해 가능한 용어와 다양한 문체를 사용해서랍니다.

 

 

솔직히 책 소개에 있던 "매혹적인 문체, 빼어난 은유와 상징"이란 문구 때문에 이 책을 읽을 결심을 했거든요. 이 정도로 자랑하는데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어낼 만하겠지 싶어서요. 결과적으론 일독 완료했습니다. 딱히 엄청나게 매혹적이고 빼어나다기보다는 고리타분한 인문고전 그것도 정치철학서 중에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덜 딱딱하긴 했습니다.

 

 

 


 

<법의 정신>은 1749년 몽테스키외 60세 나이에 출판된 책입니다. 무려 20년에 걸친 작업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책은 당시 프랑스에서 판매 금지까지 되었다 합니다. 지금에서 바라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몽테스키외가 살던 프랑스 공화국에 위협될만한 소지가 다분한 내용이 많았거든요. 나중엔 로마에서까지 판금을 먹었죠.

 

 

그는 스스로 서문에서 밝혔는데 왜 <법의 정신>을 썼을까를 염두에 두고 읽기를 권하고 있고, 각 나라 국민은 왜 자기네만의 원칙을 갖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될 거라고 합니다.

 

『 변화를 제안하는 것은 오직 아주 행복하게 태어나 재능을 발휘함으로써 한 국가의 조직 전체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권한이다. 』 - p16

 

 

 

 

지각 능력을 갖춘 인간은 무수한 정념에 사로잡히게 되므로 입법자는 정치법과 국민법을 통해 인간으로서 그가 지켜야 할 의무를 상기시키는 거라고 해요. 신은 종교규범으로, 철학자는 도덕규범을 통해 말하듯 우리에게 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몽테스키외는 국가정체를 크게 공화정체, 군주정체, 전제정체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공화정체는 집단을 이룬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정체와 일부 국민이 주권을 갖는 귀족정체 형태가 있고, 군주정체는 단 한 사람에 의한 통치제이지만 제정된 불변의 법에 따라 다스리며, 전제정체는 통치자가 법과 규칙 없이 자신의 의지와 뜻에 따릅니다.

 

 

 


 

이 세 가지 국가정체를 고대 국가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대입시켜 각 정체의 성격을 알려줍니다. 민주정체에서는 정치적 덕성이 있어야만 정체가 완전해짐을 강조하기도 하고요. 정체마다 법의 성격도 다릅니다. 교육에 관한 법의 경우, 군주정체에서는 명예를, 공화정체에서는 덕성을, 전제정체에서는 두려움을 그 목표로 삼거든요.

그래서 법은 각 정체의 원리와 관련을 맺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법과 이 원리의 관계는 정체를 움직이는 모든 원동력에 긴장감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원리도 거기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고요.

 

 

국민의 명예, 재산, 생명, 자유를 중시해야 하는 법. 그렇기에 훌륭한 입법자는 죄를 벌하기보다 예방하는 일에 힘쓰게 됩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삼권분립 이야기가 등장해요. 입법, 사법, 행정의 결합이 있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이야기합니다.

 

 

정치적 자유는 오직 권력이 남용되지 않을 때만 존재한다고(p132) 했습니다. 그리고 자유국가에서는 자유스러운 영혼을 가졌다고 간주되는 모든 인간이 스스로에 의해 통치되어야 하므로 집단을 이룬 국민이 입법권을 소유해야 할 것(p135)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을 쥔 자는 예외 없이 권력을 남용하고 권력 남용은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되기에 로마, 스파르타, 카르타고가 종국에 망한 이유처럼 입법권이 집행권보다 더 부패할 때는 국가가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합니다.

 

 

『 지식은 사람을 온화하게 만든다. 이성은 사람을 인류애로 이끈다. 인류애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오직 편견뿐이다. 』 - p167

 

 

 

 

법은 풍토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에서는 아시아 특유 문화라든지 섬나라와 대륙의 토질 차이 등 다양한 사례를 들며 법과 풍토성의 관계를 짚어주네요.

 

예를 들어 유럽의 경우에는 강한 민족끼리의 대립이어서 법 지배가 적절히 이뤄졌다면, 아시아는 강한 국민과 약한 국민의 대립으로 피정복자와 정복자 관계가 훨씬 강하게 드러났다는 겁니다. 노예, 지배, 예속 정신이 팽배했다는 거죠. 이렇게 풍토, 관습 등을 분석하고 법과 관계를 연결짓는 부분이 당시에는 신선한 발언이 아니었나 싶어요. 다양한 역사상 사건들을 비교 분석하며 풀어놓기에 그리스, 아테네, 로마, 영국 등 유럽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면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의미를 더 편하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법의 정신> 번역판에는 몽테스키외의 다른 책에서 언급된 부분, 논쟁이 된 부분을 소개하며 이 책을 보충하는 역자 해설이 있어 몽테스키외 사상을 폭넓게 이해하기 좋습니다. 간혹 해설이 오히려 어렵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요.


 

어쨌든 제가 이해한 '법의 정신'은 그 민족의 '일반 정신'을 포함하는 관계 체계라는 것입니다. 민법, 형법, 상법 등 다양한 법을 말할 때마다 풍토, 관습과 연결하고 무엇보다 어떤 정체의 국가냐에 따라 같은 내용의 법도 다른 결과를 낳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예전에 그랬으니 이렇게 해야 한다 식의 경험을 정당화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을 합리적 의미와 연관지어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야 하는지가 <법의 정신>에서 알리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다 읽은 참에 마침 뉴스에서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신뢰를 어기는 배신 정치'라는 말이 앞으로 우스개로 회자할 듯합니다.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란 말이 왜 이렇게 쓰이는지 갸우뚱하게 하네요. 삼권분립을 주장하며 미국 연방헌법 제정과 근대 법치국가의 정치 이론에 영향을 준, 몽테스키외가 말한 법의 정신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일까요.

 

꼭 한번 읽어내고 싶었던 <법의 정신>. 역사 사건을 사례로 들며 이야기하고 있어 제법 재밌는 데다가, "여섯 줄로 네 페이지가 넘는 부연 효과를 낼 수 있는 작가"라며 찬사를 보낸 스탕달의 말처럼 간결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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