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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 -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함현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는 '지질하다'를 발음대로 표기한 '찌질함'.
완벽한 사람 없듯 훌륭한 위인들도 포장을 한 겹 벗기면 온갖 허물이 드러납니다. 미사여구로 점철된 위인전보다는 왠지 사람 냄새가 더 물씬 나게 마련인... 맨 얼굴을 드러낸 색다른 인물이야기 <찌질한 위인전>.

<찌질한 위인전>에 등장한 열 한명 인물이야기는 함현식 저자가 <딴지일보>에 연재한 글이라네요.
위대한 인물이라 평가받는 그들의 찌질함에 왠지 고소해 하기도 하고, 찌질함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달픈 삶을 살면 안타까움이 밀려들기도 하고, 그 찌질함을 누르고 자신을 끊임없이 완성시키고자 하는 저력을 발견하면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찌질함은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상황에서 많이 보이는데 빈센트 반 고흐가 대표적으로 떠오릅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보여줬죠. 그저 자신의 작품이 당시 인기가 없어서라는 이유만은 아니었습니다. 빈센트의 삶을 보면 자신의 상처를 감싸고 돌보아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빈센트 역시 온전한 정신 상태를 붙잡기 위해 나름의 싸움을 했습니다. 자기파멸에 대항하는 투쟁을요. 결과적으로는 자살시도 후 수일 내 사망했지만, 스스로 정신을 붙잡으려는 과정은 전혀 느슨하지 않았습니다.

<찌질한 위인전>에는 국내 인물도 제법 다루는데, 특히 한국 근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시인 김수영과 순수한 동심을 가진 화가 이중섭의 삶과 생각은 흥미로웠어요.
김수영 시인은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쓴 그의 시 「죄와 벌」을 보면, 길에서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부인을 우산으로 팬 상황 이후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데... 아는 사람이 그 장면을 봤을까 두렵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산을 버리고 온 게 아깝다는 심중이 드러납니다.
어찌 그런 몹쓸 짓을 하나 싶어 욕이 나오려다가도... 그 상황을 과감히 시로 공개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함현식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인간 김수영이 시인 김수영으로 되는 시점을 짚어주네요. 자기 비하, 자기 폭로에 가까운 시를 보면 시인 김수영이 인간 김수영을 바라보는 눈은 냉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모순을 바라본다는 것, 솔직히 보통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중섭의 경우에는 세상 물정 모르며 나름 순수했던 사람이 성인이 되고, 처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 그 자체로 찌질함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중섭은 스스로 찌질함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사례지만, 저자는 그 찌질함 속에 바로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뭔가가 있지 않았겠냐고 반문합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은 20세기 물리학계 여러 천재 가운데 한 사람인데, 천재를 넘어선 천재로 평가받고 있죠. 하지만 죽은 아내에 대한 순애보와 숱한 여성편력 사이에서 결국 아내의 빈자리만큼은 그가 물리학계에서 보여준 한계를 짓지 않고 도전하는 성격과는 다른 면을 보였습니다. 사실 리처드 파인만 이야기는 이 책에 나온 찌질함 중에서 가장 약한 사례여서 허무하긴 했어요. 강력한 한방을 원하는 독자로서는 겨우 이 정도 찌질함은 눈에 안 차지요.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사례였네요.

홍길동전의 허균. 누이는 허난설헌으로 당시 여류문인으로 유명했죠. 하지만 그 집안은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사회를 꿈꾼 허균이 권력 다툼의 한가운데서 지저분한 음모를 꾸몄다는 것은 아주 놀라웠습니다. 능지처참을 당할 정도로요.

스티브 잡스의 어두운 면은 익히 들어본 분은 아시리라 생각되네요.
이분법적 사고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가 과연 인문학에서 얻은 것은 창의성뿐인가 싶을 정도였어요.

광범위한 찌질함의 세계에서 우리는 수많은 찌질함을 목격하기도 하고 스스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면 숨기려 들거나 반성 없이 반복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위대한 인물들은 균형 조절을 나름하며 그조차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찌질한 위인전>에는 특이하게도 악인으로 알려진 사람도 소개하는데 그 역시 악마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는 점, 그것은 곧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행위의 범주 안에 속하는 것이고, 인류사회에 언제든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악마가 되기까지 몇 가지 변곡점과 내외적 요인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찌질한 위인전>은 무려 간디, 넬슨 만델라도 소개되는데 뛰어난 능력만큼이나 단점과 치부를 가지고 있었던 그들. 왜 그런 찌질함을 보였는지 그들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