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포복 졸도할만한 유럽소설 읽었네요.

로맨틱 코미디처럼 웃고 울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스웨덴 소설 <오베라는 남자>.

100세 시대에 할아버지라 부르기에는 젊고 아저씨라 부르기에는 어색한 어정쩡한 나이 59세 오베라는 남자의 웃픈 사연을 담은 책입니다.

 

늙은 오빠 오베, 꼬장꼬장한 아우라가 마구 뿜어져 나오네요.

자명종 필요 없이 6시 15분 전에는 눈을 뜨고, 늘 똑같은 패턴으로 동네 한 바퀴 돌며 이상 없는지 시찰하는 일명 원칙주의자 오베.


이 세상에서 싫어하는 게 딱 하나 있다면, 누가 자기를 속이려 하는 것. 특히 '배터리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라는 문구를 최악의 문장으로 꼽지요. 선물용 아이패드를 사면서 키보드도 서비스로 안 준다고 성질을 부리는 에피소드를 보며 배꼽 잡기도 했네요.


어쨌든 철저한 루틴화 생활에 익숙한 만큼 늘 벌어질 일을 예상할 수 있는 삶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오베입니다. 이런 그를 보며 소심하고 결벽증 있는 (미드) 명탐정 몽크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해봤네요.

 

 

남들 눈에는 무뚝뚝하고 답답해 보이는 그도 집에 있을 때 아내에게 조곤조곤 하는 말을 보면,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속내는 다정다감한 면도 나타납니다.


'보고 싶어." 그가 속삭였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봐. 』 - p55


그런데 오베의 아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죽은 사연과 생전 아내와의 추억담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이어집니다.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외로움과 상실감이 묻어나는 글에서는 가슴이 저릿저릿합니다.


『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 - p57

 

 

『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 - p83


문제는 아내를 잃은 오베가 직장마저도 잃게 되고부터입니다.

오베는 아내 곁으로 갈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이제부터 오베의 자살 기도가 시작됩니다.


목매달 줄을 매달 천장 고리를 위해 구멍을 뚫는 것조차 허투루 하지 않는 오베. 천장 정중앙에 구멍을 뚫기 위해 줄자를 동원하고 바닥에는 미드 덱스터처럼 비닐 시트를 깔아둡니다.

 

 

그런데 오베의 자살 기도는 매번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것도 참 어처구니없는 이유로요.

목매달 밧줄이 부실해 끊어지기도 하고 (그 순간에도 오베는 도대체 어떻게 된 세상이 밧줄 하나 제대로 못 만드냐고, 더 이상 품질 따윈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며 구시렁대니 웃음이 빵 터질 수밖에요), 직접 뭐 하나 고칠 줄 모르는 이웃들의 자잘한 도움 요청, 하물며 길고양이까지 그의 자살 기도를 뜻하지 않게 방해합니다.


집 밖에서 얼어 죽을 뻔했던 길고양이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며 고양이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 원래는 자기가 자살하려고 했던 지하철역에서 하필 의식을 잃어 철로에 떨어진 남자를 구하게 된 사건 등 '제발 나 좀 죽게 내버려 둬~~~' 소리칠만한 상황의 연속입니다.

 

 

『 살다보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될지 결정을 내릴 때가 오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기어오르게 놔두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때가. 』- p153


살면서 부조리한 사회에 번번이 쓴맛을 봤던 오베.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권위 앞에서는 그저 나약한 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니까요.

사회성도 없고 까칠한 성격이지만 이웃들과의 소소한 사건을 거치며 점점 만약에 아내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의 반응을 생각하며 행동합니다. 오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아내에게 그는 '별난 슈퍼히어로'였듯 그의 정의감은 담담하게 이웃들을 향합니다.

 

 

『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 - p410


오베가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모든 것이 늘 같은 것.

겉보기와는 달리 그는 누군가와 틀어지거나 더이상 세상에 없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일을 못할 만큼 화가 나는 일을 그의 앞에 떡 갖다 놓는 것이었고요. 그렇다면 화가 나는 일이 더는 없는 상황이 오면 그는 또다시 아내 곁으로 얼른 가려고 행동할까요.......


오베의 웃픈 사연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많은 감동을 안겨 주더라고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오베의 인생을 엿보다 보면 그의 사랑스럼에 폭 빠질 겁니다.  <오베라는 남자> 책이 유럽에서 출간되자마자 왜 그렇게도 히트쳤는지 고개 끄덕여집니다. 늘어지지 않는 스토리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 속에서 웃고 울며 눈물 쏙 빼게 한 재미와 감동 두 가지를 제대로 안겨 준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