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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평점 :
폭풍 눈물을 흘리게 만든 로맨스소설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는 제2회 교보문고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이에요. 17세기 병자호란 전후 효종 시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역사로맨스 소설입니다.
향 만드는 일을 하는 장인 '향장'을 (요즘으로 치면 조향사) 꿈꾸는 소녀 수연이를 중심으로
첫사랑 단이, 봉림대군 정연과의 인연이 어우러져 가슴 설레면서도 아련한 스토리네요.
『 석가님이 또 한 번 더하지
너와 나와 한 방에 누워서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내 무릎에 올라오면 내 세월이요 너 무릎에 올라오면 너 세월이라 』 - p13
향장이 되고 싶은 수연이 덕분에 수많은 꽃이 등장합니다. 수연이 맡는 공기 냄새도 꽃향기에 비유하며 낭만적인 느낌이 가득하네요. 겨울 공기는 바다색 층꽃풀 향기 같기도, 하얀 수선화 향기와 닮았을 것 같다는 식으로요. 이런 문장이 나올 때마다 그 향기를 직접 느끼고 싶어 코가 움찔거립니다.
각종 향재도 곳곳에 등장하는데 따라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등꽃은 바람 잘 부는 그늘에 나흘간 말리면 찻감이 된다 하고, 호박꽃을 데쳐 고기와 나물을 넣어 쌈으로 먹을 수도 있다니... 이 책을 읽다 보면 꽃차를 마셔보고 싶거나 꽃을 말려 포푸리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고아 출신으로 궁에 들어가 향장이 되고 숙원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수연의 사랑 이야기는 조선 시대 병자호란의 아픔과 함께합니다. 볼모로 청국에서 지내게 되는 몇 년의 세월 속에서 싹튼 봉림대군과의 사랑은 파란만장한 시간을 예견하고 있죠. 궁에 들어가기 전에는 함께 지내던 단이와 가족애 같은 첫사랑을 겪기도 했고요. 단이와의 정도 그렇고 봉림대군과의 사랑도 그렇고... 아픔이 함께하지만 그 아픔에 얽매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수연이의 꼿꼿함을 보며 오히려 제 마음이 더 애절해지더라고요.
『 의식하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거예요. 』 - p138
겉으로만 괜찮은 척할 때도 분명 있었지만, 조선의 조향사 타이틀을 쥔 수연이에게는 그래도 향기라는 것이 삶의 치유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향장의 의무는 향기로 사람들의 기분을 즐겁게 하고, 잊지 못할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 수연이의 마음처럼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치유합니다.
『 내게로 와요. 고단했던 시간 다 이기고. 』 - p252
오래도록 남아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단이와 대군의 향기를 끌어안고 사는 수연의 이야기는 정말 담백했어요. 그러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작가 원망 엄청했네요. 폭풍 눈물 쏟아가며 이럴 줄 알았어~~~하면서. 하지만 독자 뒤통수를 두 번이나 때리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덕분에 책을 덮는 순간에는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묘한 감정만 남더라고요.
한때 향수를 즐겨 썼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당시 좋아했던 향은 제 가슴 속에 남아 있답니다. 그 향수에는 나름의 추억이 있었거든요. 그 향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 추억도 함께하게 됩니다. 수연이도 그래요. 수연이가 맡은 단이의 치자꽃 향과 대군의 알싸한 측백나무 향. 향은 사라져도 그 향을 느꼈던 감정은 고스란히 남게 되지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바친 수연, 단, 대군 정연... 그들의 삶이 향기와 어우러져 정말 멋진 소설이 탄생했어요. 담백한 사랑이야기, 질질 끌지 않고 제법 빠른 전개, 반전의 반전... 읽는 재미를 겸비한 탄탄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