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
헬렌 오이예미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400여 페이지를 읽는 내내 뒤편의 해설을 먼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던 책은 처음이었어요.

정말! 독특한 주제와 구성을 가진 소설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고요. 제 경우에는 읽는 내내 그렇게도 무슨 의미인지 헷갈려 하면서도 결국 마지막 해설을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어나갈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기도 했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생 영국 작가인 헬렌 오이예미는 2013년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지 《그란타 매거진》이 십 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영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에 뽑히기도 한 작가입니다. 소설 《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는 젊은 작가 명성다운 새로운 감각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비틀리고 왜곡된 사랑의 결말을 쓰는 작가 미스터 폭스, 그의 뮤즈이자 허상인 메리 폭스가 나타나 그딴 건 사랑도 아니라며 그들만의 스토리 배틀을 갖게 됩니다.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그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단편처럼 소설 속에 자리 잡고 있답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어느 부분이 소설 속 이야기이고, 어느 부분이 현실인지 머리가 쥐어터질 듯 헷갈리더라고요.

 

『 "픽션의 내용을 가지고 그렇게 민감하게 구니까 웃기잖아. 이게 실제 얘기야? 아니잖아, 왜 그러셔. 그래봤자 하고많은 게임일 뿐이라고." 』 - p15 

 

소설 속 이야기 중에 정신과의사가 된 폭스가 자신의 과거나 기존의 정체성에 대한 기억을 잃은 채, 가족 등의 거주환경을 떠나 방황하거나 예정에 없는 여행을 하는 장애인 '해리성 둔주'를 이야기하는데 반은 깨어있고 반은 꿈을 꾸는 것에 가까운 이 질병이 작가 미스터 폭스 또는 미스터 폭스가 허상이라고 여기는 (저는 처음에 계속 메리가 실제 인물일거라 믿고 읽었답니다) 메리가 그 질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며 엉뚱한 걸 복선으로 삼아 읽기도 했죠 ^^;

 

 

거기에 폭스의 실제 아내 대프니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머리는 더 뒤죽박죽됩니다. 미스터 폭스가 만들어낸 허상인 메리 폭스가 대프니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메리를 보고 느끼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대프니를 보며 도대체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구분조차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둘 이상의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망상인 감응성 정신병이란 말도 소설 속에 나오는데 그런 것이었을까요.

 

『 "메리, 만약 당신이 사람이었다면 난 당신을 데리고 영영 도망쳐버릴 거야." 』 - p271

 

 

결국 옮긴이의 해설로 아리쏭한 이 소설의 정체를 풀어냈습니다.

미스터 폭스는 푸른수염 유형 민담의 원형인 '도둑 심장'에서 파생된 자장가라고 합니다. 부유한 처녀들을 죽이는 미스터 폭스와 그와 결혼할 뻔한 레이디 메리의 이야기라네요. '당신의 정체를 안다'고 그의 집에서 본 것을 다른 이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레이디 메리는 미스터 폭스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설화를 교묘하게 엮어 작가 미스터 폭스의 비틀린 사랑관을 디스하는 메리 폭스, 그 둘의 스토리 배틀이 낳은 여덟 개의 이야기들은 결국 사랑의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폭스의 아내 대프니와의 갈등이 해소되기도 하고요.  

 

『 " 우리는 소설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어요. 우리 자신을 소설 속에 대입 시켜서." 』 - p385

 

 

미스터 폭스 이야기는 너무 심각하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저 그림을 보고 심각하게 읽으면 안 될 책이란 걸 짐작했어야 했는데!!! 머리 싸매며 복선 나올 거야 하며 눈 부라리며 읽다 보니 괴롭기까지 했었지요. 해설을 읽고 제대로 구성 기법을 이해한 후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참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처음엔 어쩜 그렇게도 이해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네요.

 

소설 속 이야기들도 모두 독특하고 재밌었어요. 미스터 폭스와 메리 폭스의 스토리 배틀에 나온 소설 속 이야기 중 「인종차별주의자 내 딸」은 독립적인 단편으로 BBC 내셔덜 단편 어워드 후보에 올렸을 정도라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토리 배틀.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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