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일본 대표적인 문학상을 모조리 휩쓰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장르소설의 대가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을만한 영향력 있는 작가로 기대하고 있는 미치오 슈스케. 초반에는 미스터리 '장르소설' 작가로 위엄을 달성하다가 점차 '소설'작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도서관에서도 수상작품코너에 특별히 꽂혀있는 <달과 게>는 그의 작품관에 희망, 치유의 빛이 서리기 시작한 책이었고 신간 <노엘>은 그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탄생'이란 의미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노엘'은 크리스마스를 의미한다. 잔잔하게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캐럴 노엘을 틀고 싶어지는, 긴박함 끝에 달콤하고도 따스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 주는 책 《노엘

 

동화작가 게이스케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가 없는 집,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어머니. 외로움에서 숨통을 트이게 해 준 것은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크리스마스 캐럴 가사를 바탕으로 처음으로 이야기를 썼다. 가난한 집의 아이였던 그는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며 불운한 학창시절을 보내는데 그를 걱정하고 공감해주는 여학생 야요이와의 푸릇푸릇한 인연은 한 줄기 빛이었다. 알 수 없는 어둠을 간직하고 있는 야요이는 게이스케와 죽이 척척 잘 맞아간다. 게이스케가 썼던 동화를 읽고 그림을 그리는 야요이. 그렇게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그들의 첫 그림책이 완성되었다. 동화작가가 된 게이스케가 이야기를 쓰고 화가가 된 야요이가 삽화를 그린다는 꿈을 나누면서 그들의 우정과 사랑은 깊어지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그림보다는 카메라에 흥미를 더 보이기 시작한 야요이의 모습, 야요이의 친구와의 은근한 삼각관계 등 마음의 갈등은 오해를 낳게 되고 그 오해 때문에 결국 야요이의 곁을 떠나는 게이스케.

 

그리고 이어지는 야요이의 시점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괴로움을 잊기 위해 그리기 시작한 그림 덕분에 게이스케와 꿈을 키워 나가던 그 시절, 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게이스케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없어서 그대로 이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그 상황을 들려준다.

 

게이스케와 야요이의 엇갈린 인연.... 진행이 너무 빠른데... 라고 생각하던 순간 전율을 느끼게 해 주는 반전이 이어지고, 그들의 이야기는 리코라는 아이의 장면으로 넘어간다. 부모님의 대화를 훔쳐 듣게 된 리코는 엄마가 배 속의 아기만 예뻐하고 몸이 아픈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는 부모님을 보며 외톨이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러다 게이스케와 야요이의 그림책 <하늘을 나는 보물> 을 읽으며 그림책의 주인공 마코와 가상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 그림책은 결국 리코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다.

 

 『 아무리 싫은 일이 있어도 괜찮다는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뭘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법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 - p158

 

이렇게 가이스케와 야요이의 그림책이 가공의 친구와 작별을 하며 상상을 올바로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되는 리코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다음으로 동화구연 자원봉사자 요자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몇 개월 전 아내와 사별하고 앵무새와 함께 사는 요자와는 아동문학 잡지에 실린 자신이 오랫동안 살던 집 사진 한 장을 보고 인생 마지막의 소원을 현재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부탁한다. 그리운 옛 풍경과도 같은 아내 도키와의 추억인 사흘간 열리는 축제기간 동안 울려 퍼지는 축제 음악을 전화로 부디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자신이 살아온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함을 가진 요자와 할아버지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동화작가 가이스케와 야요이, 동생을 질투하는 마음을 가진 리코, 공허함을 안고 사는 요자와.

외톨이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생긴 따스한 인연은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기적이었다. 이들의 연결고리가 하나둘 드러날 때마다 자극적인 내용 없이도 이렇게 몇 번씩이고 전율감을 느낄 수 있구나 하며 정교하고 세심한 전개에 감탄하게 된다. 책 속의 책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멋진지. 동화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감동을 안겨준다. 제각각인듯한 스토리가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로 완성되는 연작소설을 좋아하는데 이응준 작가의 <밤의 첼로>는 나에게 강렬함과 묵직함을 안겨줬었다면 미치오 슈스케의 <노엘>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배경과도 같은 부드러움을 맛보게 한다.

미치오 슈스케 작가, 흥미로워졌다. <노엘>은 내 기억에 꽤 오래 남을듯한 책이 될 것 같다.

 

 

당신은 '이야기'의 힘을 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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