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작가이자 번역가 이윤기가 말하는 글쓰기와 번역에 관한 39편의 에세이 모음집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TV를 보면서도 지적을 계속하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면서 멀쩡히 살아있는 말인 방언이 사전에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이윤기. 그가 말하는 좋은 글쓰기와 번역이란 무엇인지, 우리말의 사용행태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 이 세상에 책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찌 살았을까. 』 - p29

 

이윤기는 어린 시절부터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읽는 족족 암기하는 기인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영어를 배워 헤밍웨이, 오 헨리, 윌리엄 포크너를 읽고 일본어를 배워 미시마 유키오,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읽었단다. 그렇게 책에 푹 빠져 살던 문학소년같은 이미지의 이윤기는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그의 말마따나) 덜커덕! 입선하기도 한다. 하지만 번역의 길로 접어들면서 번역작가의 입지를 세운다.

 

 『 '글 읽기'에 관한 한 나는 황희 정승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하는 생각이 나를 강박한다.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워서 물어본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 p 36-37

 

 

그가 번역을 하며 느꼈던 에피소드들도 허심탐회하게 풀어놓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번역할 때는 원서를 집어 던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정도였다하고, 중역본을 가지고 번역을 했던 책의 오역, 오독에 관한 일화 등...

번역을 할 때 경험의 재해석의 위험성을 알린다. 경험할 때의 세계 인식과 재해석할 때의 세계 인식은 그 층위가 다르게 마련인데, 이 양자를 화해시키는 과정에서 무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열 다섯 살 소년의 경험 해석에 쉰 살 사내의 인식이 개입하는 사태처럼.

  

사전의 언어만 좇지 말고 살아 있는 저잣거리의 말을 찾아야 하는 습관, 번역과정에서 일어나는 언어의 변화가 컴퓨터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언어의 어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는 언어 고고학 여행을 거친 '화학적 변화'여야 한다는 것, 숙어같은 푹 익은 우리말의 중요성도 알려준다.

 

 『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 버리기 때문이다. (중략) 속어 비어에 묻어 있는, 쓴 이의 '껍진껍진한 느낌'까지도 읽어야 하는 것이다. 』 

p81-82

 

 

 『 "비결요? 비결을 묻지 않는 것, 그게 바로 비결이지요."』 - p116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자기 발로 걷는 자가 가장 확실히 걷는다. 외국어 번역 공부에 관련한 글에서 하신 말씀이다.

 

 『 '번역이나 하는 사람'으로는 안 된다. '번역까지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 p121

 

 

제목의 조르바는 그의 번역작인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자유인 조르바다. 살아 펄떡이는 말을 소중히 여기는 분이라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인 조르바를 춤추게 할 만큼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영혼을 담은 글쓰기와 번역의 태도를 의미한다. 글 읽기가 행복한 사람, 땀과 자유의 글쓰기를 갈망하는 이윤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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